입덧보다 힘든 임신 초기 증상: 주체할 수 없는 이질감

40년의 주체성이 붕괴되던 날, 내 몸 안의 전쟁

by 데이지

임신 14주 4일 차.


8주 동안 나를 지독하게 괴롭혔던 입덧에서 조금씩 멀어지고 있음을 느낀다. 하지만 나에겐 입덧보다 훨씬 더 참기 힘든 초기 증상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씻어낼 수 없는 ‘지독한 찝찝함’이었다.
임신 초기, 나의 일상은 완전히 붕괴되었다. 하루 15시간 이상 잠에 취해 있어야 했고, 하던 일은 모두 멈췄다. 먹고, 자고, 배설하고, 생각하는 모든 일련의 일상이 무너지면서 내 몸에 대한 엄청난 불쾌감이 찾아왔다. 주변 임산부 선배들과 이야기를 나눠봐도 도통 공유하기 어려운 감정이었다. 도대체 왜 나만 내 몸에 대해 이토록 씻어내지 못할 찝찝함을 느끼는 것일까.


‘배 나오기 전’에 시작된 자기 혐오


흔히 임산부의 자기 혐오는 배가 나오고 살이 붙는 임신 중기 이후에 시작된다고들 한다. 하지만 나는 달랐다. 배가 나오기도 전인 초기부터 내 몸에 대한 거부감을 느꼈다. 입덧이 시작됨과 동시에 평소의 생활 패턴이 호르몬에 의해 완전히 무너졌을 때, 증상은 가장 심각했다.


남편을 포함해 누군가가 내 손을 잡는 것조차 불쾌했다. 거울 속의 나를 마주하는 것이 싫었고, 심지어 의사들이 임산부에게 금기시 하는 목욕탕에서 때를 득득 벗겨내봐도 게운하지 않았다.

임신 중기가 되어 호르몬의 영향에서 조금씩 벗어나 비로소 ‘생각’이라는 걸 할 수 있게 되었을 때, 나는 이 찝찝함의 원인을 추적하기 시작했다.


내 몸이라는 하나의 영토를 둔 두 자아의 충돌


임신 초기에 내가 느낀 '찝찝함'은 아무리 검색해도 나오지 않아 애를 먹었다. 공부 끝에 찾아낸 해답은 바로 ‘두 자아의 충돌’이었다. 실제 우리 안에는 여러 자아가 공존한다. 직장에서 프로페셔널한 나, 연인 앞의 나, 친구들 앞의 나는 우리 모두 조금씩 다르다. 평소에는 이 여러 자아가 내 몸이라는 영토에서 평화롭게 동거하지만, 거대한 사건이 터지면 갈등은 시작된다.


나에게 그 사건은 마흔에 찾아온 첫 임신이었다. 임신을 계획했고 테스트기에 두 줄을 확인하는 순간의 그 전율을 기억한다. 진정한 여자가 되었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하지만, 그때까지만해도 호르몬이 내 몸과 일상을 어떻게 극단적으로 변형시킬지는 단 1%도 상상하지 못했다. 내가 경험한 입덧은 “급체한 상태로 온종일 배멀미를 하는 상태”였고, 이것이 한 달 넘게 지속되자 40년간 유지해온 주체성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임신이라는 호르몬 폭격으로 주체성이 붕괴되었을 때, 내 안의 두 자아는 격렬하게 싸우기 시작했다.


디자인된 무력화, 그리고 저항


생물학적으로 여성의 몸은 임신과 동시에 면역력을 낮추도록 설계되어 있다. 태아는 남편의 DNA가 절반 섞인 ‘외부 생명체’이기에, 내 몸의 면역 체계가 이를 공격하지 못하도록 태아를 지키기 위해서 만든 전략이다.


아무일도 하지 않아도, 아무리 오래 누워 잠을 자도, 배터리가 늘 10%인 채로 시작되는 날들이 몇 주간 지속되자, 40년을 지켜온 나의 주된 자아가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임신 전까지 유지해온 ‘이상적인 나'와, 아기를 잉태하기 위해 무력해진 ‘생물학적인 몸’ 사이의 불편한 동거.

씻어도 사라지지 않던 찝찝함의 정체는 바로 이 두 자아의 갈등이었다.


종전 선언, 그리고 성장


갈등은 임신 호르몬(HCG) 수치가 안정기에 도달한다는 12주쯤 잦아들었다. 하루 6시간만 자도 다음 날 배터리가 70%는 충전된 것 같은 기분으로 눈을 떴다. 식욕이 점점 돌아오고 산책, 카페 가기, 독서와 글쓰기 같은 소소한 일상이 가능해지면서 과거의 나를 비슷하게 흉내낼 수 있을 때, 내 안의 전쟁은 종결되었다.


우리는 흔히 내가 내 몸의 주인이라 믿지만, 임신은 내 오만을 겸손으로 바꾸었다. 내 안에는 한 명의 나만 사는 것이 아니었다. 청결을 고집하는 자아, 유능함을 증명하려는 자아, 그리고 종족 번식을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하는 원시적인 자아가 내 몸이라는 좁은 방에서 격렬하게 다투고 있었다.


임신 초기의 씻어도 씻겨내지 못한 그 지독한 찝찝함은, 내 안의 수많은 ‘나’들이 서로를 인정하기 위해 치러야 했던 실존적인 성장통이었다.


내가 엄마가 되기 위해서 겪어야 했던, 첫 성장통이였던 셈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임신 초기 자기혐오감, 찝찝함, 불쾌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