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년 1월, 작년의 일이다. 친구가 한 달 살기를 하러 제주도에 갔을 적에 잠깐 놀러 간 적이 있다. 돈이 없어 2박 3일 정도밖에 머물지 못했지만 많은 아름다운 것들을 느끼고 돌아왔다. 우도봉에 오르기도 하고 밤에는 천백고지에 올라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만 같은 수억의 별들을 두 눈에 담기도 했다. 그때의 밤하늘은 우리가 우주에 있다고 느끼게 해 주었다.
제주 여행 일정 중 우리는 예쁘기로 유명한 청춘 부부라는 카페를 갔다. 예쁘기만 할 뿐만 아니라 특별한 게 있었는데 이곳에서 엽서를 쓸 수 있다는 것이었다. 청춘 부부 카페의 사진이 있는 예쁜 엽서에 편지를 쓰면 지금은 모르겠으나 당시에는 모든 엽서를 월말에 일괄 보내주었다. 이런 소소한 이벤트를 좋아하는 우린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각자 펜과 엽서를 챙겨 열심히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누구에게 쓸까 고민하던 우리는 미래의 나에게 쓰기로 결정했다.
당시에 정말 진지하게 폼을 잡고 쓴 건 아니었다. 여행 중의 들뜨고 가벼운 마음으로 솔직하고 직설적으로 쓴 편지였다. 연말이 다가와 마음이 싱숭생숭해서 일까? 올해 갑자기 그 편지가 생각났다. 과거의 나는 미래의 나에게 무슨 말을 했었지. 21년 당시 여행을 하고 돌아와 읽었을 땐 쓴 날로부터 몇 주 지나지 않았었기에 크게 와닿지는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1년이 훨씬 지났기에 그때보다 더 ‘미래의 나’에 걸맞지 않을까?
과거의 나는 미래의 나에게 무슨 말을 했을까? 두근두근 설레는 마음 반 걱정스러운 마음 반으로 봉투에서 편지를 꺼냈다. 걱정되었던 이유는 과거 나의 기대에 지금의 내가 못 미칠까 봐였다. 그런데 쓸데없는 걱정이었나 보다. 과거의 나는 미래의 나에게 믿음과 확신을 가지고 응원하고 있었다. 잊고 있었다. 불안하면서도 패기 있던 과거의 나를.
아래는 제주도의 내가 미래의 나에게 보내는 편지다.
안녕? 나는 지금 제주도 여행 첫날이야! 너무 들뜨고 즐거워. 갑자기 우리 모두 휴대폰 배터리가 영 퍼센트가 되어서 급하게 청춘 부부 카페에 왔어. 그래도 즐겁게 사진도 많이 찍고 행복한 오후를 보내고 있어.
평소에는 글 쓰는 생각하고 쫓기느라 정신없지? 뒤처지는 것 같고 앞으로 어떻게 먹고살까 막막하고 그렇겠지…. 그래도 네 노력하는 모습이 나는 너무 좋아! 더 나아지고 있고 포기하지 말았으면 해. 나는 네가 좋거든. 난 네가 멋있다고 생각해. 제주도에서 돌아가서도 열심히 잘하고 있을 거라 믿어. 고마워.
길지 않고 내용도 단순하지만 솔직한 마음을 꾹꾹 눌러썼다. 실컷 응원하는 말을 썼다가 민망한지 급하게 마무리하는 것도 웃겼다. 사실 편지에 썼던 글은 당시 내가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이 아니었을까? 글을 쓴다는 게 당장 성장이나 성과가 눈에 보이는 게 아니다 보니 내가 어디쯤에 있는지조차 알기 어렵다. 그래서 막막한 느낌을 받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그럼에도 다른 무엇보다 좋아하니까 계속할 수 있었다.
내가 내 편이라는 건 생각보다 큰 힘이 된다. 질책하는 것이 필요할 때도 있지만 하고자 하는 일에 확신이 없고 힘들다고 느낄 땐 내가 내편이 되어 응원해주자. 내가 나를 응원하는 것이 시작하는 용기를 준다.
블레이크의 시에 ‘하나의 작은 꽃을 만드는 데도 오랜 세월의 노력이 필요하다’라는 말이 있다. 수많은 꽃이 그렇듯 개화 시기는 저마다 다르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스스로를 꽃피우려면 포기 않고 노력하는 자세 그리고 시간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