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초를 떠올리면 그 일이 생각난다. 좋은 일을 했지만 좋지 않았던. 아버지와 둘이 외출 후 돌아오는 길이었다. 집 근처에 다다랐을 즈음 학생들이 모여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가까이서 보니 남학생 둘이 싸우고 있는 것이 아닌가? 작은 학생이 덩치가 큰 학생에게 일방적으로 당하는 것으로 보였다. 아빠가 무슨 일이냐며 창문을 내리자 학생 무리에 있던 한 여자 아이가 다가와 말했다.
“도와주세요. 좀 말려주세요.”
아빠는 곧장 차에서 내려 싸우는 두 학생을 떨어트리려고 했다. 하지만 덩치가 큰 학생은 계속해서 주먹을 휘둘렀고 그대로 아버지의 얼굴을 가격했다. 여전히 차에 타고 있던 난 놀랐지만 그저 보는 것밖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이때는 이미 경찰에도 신고한 상태였다. 주먹에 맞은 아빠는 아랑곳 않고 덩치가 큰 학생을 제압하는데 집중했다. 주먹이 아빠의 얼굴을 스치는 것을 보고 있자니 내 다리가 다 후들거렸다. 서있었다면 아마 주저앉았을지도 모른다.
뒤늦게 달려온 다른 분의 도움으로 덩치가 큰 학생을 완전히 제압할 수 있었고 조금 뒤 경찰이 와 상황은 마무리되었다. 경찰은 아빠가 맞은 부위를 사진으로 찍어갔지만 그 뒤로 연락 온 것은 없었다. 아빠의 광대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크게 부풀어 올랐다. 마음이 너무 좋지 않았다. 그 학생들이 미웠다. 왜 자신들의 친구라면서도 나서서 말리는 애가 하나도 없었을까.
애꿎은 우리 아빠만 맞은 뒤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으니 가슴이 답답했다. 맞은 곳이 광대 쪽이다 보니 머리가 아플 정도였다고 한다. 아빠는 며칠 두통을 앓았다. 다행히 시간이 지나며 두통도 볼의 멍도 점차 사라져 갔다. 이래서 요즘엔 애들 싸움에 끼어들면 안 된다고 하나보다. 잘못했다가는 오히려 도우려는 쪽이 폭행죄를 뒤집어쓸 수도 있고, 말리는 과정에서 부상을 당하더라도 아무런 피해보상도 받을 수 없으니까.
하지만 아빠는 또다시 이런 일이 생기더라도 달려가실 것이다. 내가 아무리 하지 말라 해도 말이다. 내가 지켜봐 온 아빠는 그런 분이다. 사실 사람이라면 누구든 도움을 필요로 하는 상황에 닥쳤을 때 상대를 도우려 할 것이다. 나 또한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보면 그냥 지나치기 힘드니까. 떠올려 보라, 무거운 과일 리어카를 끌고 가던 중 과일을 바닥에 흘린 할머니를. 그 옆을 그냥 지나치기란 쉽지 않다.
이때의 일로 내가 느낀 것은 남을 돕는다는 게 정말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위기의 순간 행동하는 사람들을 의인이라 칭하고 박수를 보내는 이유도 그에 있지 않을까. 자신 또한 위험에 처할 수 있지만 기꺼이 나서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옛날 일본의 지하철 선로에 떨어진 취객을 구하기 위해 뛰어든 한국 청년 이수현 씨 이야기는 아마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2001년 신오쿠보역, 그는 가장 먼저 뛰어들어 선로에 추락한 일본인을 구했지만 자신은 빠져나오지 못했다. 그로부터 약 21년이 지났지만 일본에서는 여전히 그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며 추모하고 있다.
위험에 처한 사람을 돕는 일에는 위험이 따른다. 그것을 알기에 그 행위에 대한 숭고함을 더 깊이 되새길 수 있다. 우리 주변이나 텔레비전 뉴스에는 수많은 의인들이 있다. 그분들에게 감사함을 느끼며 한편으로는 아직 세상은 살만하구나 느낀다. 살만한 세상을 만드는 것은 결국 사람, 그리고 사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