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다닐 적에 나는 커닝을 한 적이 있다. 커닝은 분명해서는 안 되는 것이지만 많은 학생들이 그 유혹에 빠진다. 저마다 커닝의 이유가 다르겠지만, 나의 경우에는 높은 점수를 받지 않으면 엄마에게 혼날 것이라는 두려움이 컸기 때문이었다. 평소 엄마로부터 “공부 좀 해라!”라며 공부하지 않는다고 혼이 났었으니 시험 점수가 낮으면 분명 크게 혼날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그렇게 커닝을 한 이후 점수가 꽤 높게 나왔지만 내 점수를 본 엄마는 별말이 없으셨다. 그게 의아하게 느껴졌다. 엄마는 높은 점수를 바란 게 아니었던 걸까? 이후 다음 시험은 커닝을 하지 못했다. 처음에는 너무 불안했지만 시험 문제 하나하나 읽어나가며 풀다 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어렵지 않게 풀 수 있었다. 그리고 난 70점대의 점수를 받았다. 비록 좋은 점수는 아니었지만 스스로 풀었다는 사실에 뿌듯함을 느꼈다. 커닝으로 좋은 점수를 받았을 때보다도 좋았다.
100점에 가까운 점수보다 70점이 더 기분 좋을 수 있다니 놀랍지 않은가? 문제는 이 점수를 엄마에게도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었다. 낮은 점수에 실망하시고 혼낼 거라고만 생각했다. 결과를 먼저 말하자면 난 혼나지 않았다. 70점을 맞았을 때나 높은 점수를 받았을 때나 엄마의 반응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엄마가 나를 혼냈던 이유는 정말 내가 공부 안 하고 놀기만 해서였다는 사실을 말이다. 낮은 점수라도 내 세상은 무너지지 않았다.
엄마가 내게 바란 건 100점짜리 점수가 아니라 노력하는 모습이었다는 것을 깨닫고 나니 스스로가 부끄러웠다. 커닝으로 100점을 받아봤자 엄마는 하나도 기쁘지 않으셨을 것이다. 내가 스스로 노력해 얻은 것이 아니니 말이다. 그 뒤로 좋은 점수를 받아야 한다는 부담감에서 벗어난 나는 조금씩 공부하려 노력하기 시작했다. 남과 나를 속이면서까지 가지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것을 이젠 알고 있으니까. 내게 의미를 가질 수 있는 건 정직하게 내가 만든 것뿐이고, 그게 내 몫이다. 이때 배운 태도는 지금까지도 내게 남아있다. 그리고 정직함은 나의 장점이 되었다. 정직하고 솔직한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나는 사랑한다.
만약 누군가 스스로를 사랑할 수 있는 방법을 묻는 다면 그중 하나를 정직이라 답할 것이다. 앞으로도 난 거짓 없는 삶을 살아갈 것이다. 그리고 내가 배운 것처럼 미래 나의 자녀에게도 가르쳐주고 싶다. 스스로에게 떳떳한 삶을 살아야 인생이 더 즐거워진다고 말이다.
거짓과 부정은 다른 누구도 아닌 스스로를 병들게 한다. 정직은 타인을 위한 것이 될 수도 있지만 가장 좋은 것은 본인이다. 거짓은 그 거짓에 나를 맞춰야 하지만 정직은 그 어느 것에도 얽매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