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을 안 마시면 무슨 재미로 살아?

술을 안 마시는 사람의 평생 숙제

by 보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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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술을 못 마십니다. 최근에는 건강을 생각해 커피를 비롯한 모든 카페인도 끊었습니다. 좋아했던 여행도 이제는 거의 하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 저는 무슨 재미로 사느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 사람입니다.”


10월 17일 서울에서 ‘2024 포니정 혁신상’ 시상식에서 한 수상 소감 중 일부분이다. 오랫동안 저의 글을 읽어주신 독자님들은 예상 가능하실 텐데, 이 글을 쓰게 된 계기가 된 문장은 ‘다시 말해 저는 무슨 재미로 사느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 사람입니다.’이다. 20대 초반 갑작스레 뇌전증이라는 병을 얻고 술을 마실 수 없게 됐다. 그렇다 보니 곤란한 상황에 종종 처하게 된다. 친구들과의 모임에서는 술을 시키게 되더라도 자연스레 음료를 같이 주문한다. 말 그대로 기호식품으로써 마실 거면 마시고 안 마신다면 마는 분위기다. 하지만 사회에서는 납득시키는 것부터 쉽지 않다. 다른 걸 좋아한다고 말하는 데에도 용기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술을 안 마시는 이유를 설명하는 건 안 마시는 사람에게 평생의 숙제다.


가치관과 취향이 다양한 만큼 좋아하는 것도 하고 싶은 것도 다른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인데 미디어에서는 모두가 같은 것을 즐기는 모습만 보여준다. 술, 여행 따위 말이다. 중년의 남자들이 모여 카페에서 모임을 갖는다고 하면 신기하게 생각한다. 물론 술은 두루 통하는 매개체로서 오랫동안 사랑받아 왔기에 주류가 된 것도 이해된다. 하지만 주류라고 해서 다른 것 위에 있는 건 아니다. 당연히 같은 걸 좋아할 것이라 생각하는 게 아니라 다른 걸 좋아할 수도 있고 그걸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상호 존중의 문화가 우리 사회에 뿌리내리기를.


아버지의 고등학교 교과서에서 읽은 최재서 작가님의 말마따나 우리는 아직 젊어 잘 살았느니 못 살았느니 인생을 회고할 필요는 없다. 술이 없어 재미없는 인생이라 판단하기에는 아직 너무 어리다는 것이다. 살아가다 보면, 나를 즐겁게 하는 것들이 무수히 많다는 걸 알게 된다. 나의 20대 초반은 술을 마시는 사람이었지만, 30대가 된 지금과 비교하면 지금이 더 즐겁다.


퇴근하고 읽는 책 한 줄, 한 페이지가 몸의 피로를 잊게 한다는 것을 안다. 눈으로 읽은 글은 머리를 한 번 훑고 심장에 가닿는다. 가끔은 손으로 직접 문장을 따라 쓰기도 한다. 글을 써내려 갈 때면 더 나은 생각을 하게 되며 성장하는 기분이 든다. 좋아하는 류의 커피가 있고, 그걸 맛있게 하는 집을 다시 찾는다.


친구들과는 어떻게 노냐고? 이젠 술을 즐기던 친구들도 몸의 리듬이 망가지는 것이 싫다며 자연스레 술을 찾지 않게 됐다. 최근 오랜만에 대학 친구들과 만났는데 아무도 술을 마시지 않았다. 저녁으로 소고기에 된장술밥까지 맛있게 먹고 우리가 향한 곳은 배스킨라빈스였다. 보통의 일반 매장과 달리 매실이라 던 지 딸기바나나, 얼그레이 그린티 같은 처음 보는 맛이 많아 우리는 아이처럼 아이스크림 쇼케이스에 옹기종기 다다닥 붙었다. 샘플러라고 4가지 맛을 조금씩 담아 먹을 수 있는 게 있는데, 이걸 3개 시켜서 겹치는 걸 제외하고 거의 9종류를 맛봤다. 음, 너무 철없어 보이나? 그렇지만 매장 안에는 가족단위뿐만 아니라 중장년층 모임도 많았다. 그러니까 아이스크림을 즐기는 데는 나이가 없다.



“대신 걷는 것을 좋아합니다. 아무리 읽어도 다 따라잡을 수 없을 만큼 쏟아져 나오는 좋은 책들을 놓치지 않고 읽으려고 시도하지만 읽은 책들만큼이나 아직 못 읽은 책들이 함께 꽂혀 있는 저의 책장을 좋아합니다. 사랑하는 가족과 다정한 친구들과 웃음과 농담을 나누는 하루하루를 좋아합니다. 그렇게 담담한 일상 속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쓰고 싶은 소설을 마음속에서 굴리는 시간입니다.”


- ‘2024 포니정 혁신상’ 한강 수상소감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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