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일, 토마토소스에 각종 야채와 계란이 들어간 샥슈카와 피자가 유명한 식당을 찾았다. 처음 먹어보는 샥슈카라는 음식과 갓 구운 화덕피자들에 들뜬 어머니는 내 덕에 호강한다고 말했다. 아버지도 입에 맞으셨는지 샥슈카를 담은 그릇을 마지막까지 빵으로 긁어 드셨다. 아침 일찍 부지런히 움직인 보람이 있었다.
피자를 먹으며 곰곰이 생각했다. 호강이란 뭘까? 어머니는 내가 무언가를 해드릴 때마다 호강한다고 하시는데 ‘이런 게?’싶은 것들도 종종 있다.
호강의 사전적 의미는 ‘호화롭고 편안한 삶을 누리다’이다. 그리고 호화는 ‘사치스럽고 화려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사전적 의미로 보면 내가 해드린 것 중 절반, 아니 3분의 2는 그리 사치스럽고 화려하지 못하다. 그래서 민망한 것이다.
어머니에게 있어 호강은 국내든 해외든 여행을 가거나 맛있는 음식을 먹고, 목도리 선물을 받거나 마트 장을 대신 봐드리는 것 같은 것들이다.
행복은 빈도라고 했던가? 어머니의 ‘호강’은 풍선에 바람 넣듯 작고 소소한 행복들이 들어가 만들어진 것이다.
어머니는 센서라도 단 듯 계절에 따른 자연의 변화도 금방 알아채신다. 동지가 지난 어느 저녁, 식탁에 앉아 이야기하던 중 창밖을 보던 어머니가 말했다.
“해가 조금 길어졌네. 전에는 이 시간이면 캄캄했는데 말이야.”
벽에 걸린 시계를 올려다보니 5시 반을 가리키고 있다.
“그러게 아직 푸르스름하네.”
“원래 동지를 기점으로 점점 길어지거든.”
무엇이든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다. 이런 게 순간을 붙잡아둔다는 게 아닐까? 순간을 소중히 할 줄 알기에 행복도 느낄 수 있다. 풍요로운 삶은 그런 것들로 만들어진다. 우연히 올려다 본 하늘에서 분홍에 물결치는 노을을 발견하고, 우연히 들어간 카페의 커피가 맛있고, 사계절을 함께하는 그런 것들 말이다.
시인의 재능은 자두를 보고도 감동할 줄 아는 것이라는데, 이렇게 일상을 글로 즐겁게 쓸 수 있는 것도 어머니의 영향이 없지 않아 있다. 산책의 즐거움과 유익함 그리고 들꽃의 아름다움을 내게 가르쳐 준 이가 바로 우리 어머니다. 이 가르침과 배움은 아마 평생 계속될 테지. 숨결이 바람 될 때까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