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어떻게 그렇게 까지 할 수 있어요?

매일 새벽 출근하는 아버지에 대한 단상

by 보보

아버지는 돌 같은 분이다.

누가 뭐라던 동요하지 않는 단단한 사람.

너는 짖어라 나는 내갈길 간다, 그게 직장에서의 아버지 모습이었다.

어린 나는 몰랐다 아버지가 매일 새벽 홀로 기도하고 있었다는 것을.

어머니를 위해, 나를 위해, 오빠를 위해, 동생을 위해.

그럼 생각한다. 아버지를 위한 기도는 누가 드리나?

그건 우리 가족의 몫이겠지.

작은 신장임에도 온몸에 힘이 바짝 들어가 단단한 아버지의 모습은 출정을 앞둔 장군 같다.


작년 가을, 나의 여름휴가 계획에 아버지는 연차를 쓰고 처음으로 새벽 일을 쉬었다.

거의 처음이 아닐까? 아버지가 연차를 내시고 새벽에 안 일어날 수 있었던 날이.

지금까지는 연차를 낸 날에도 새벽에 꼭 잠깐 출근해 일을 보고 오셔야 했다.

새벽 4시가 넘으면 울리는 알람소리, 뒤척이는 어머니.

거실에 미리 꺼내둔 옷으로 갈아입고 뒤따라 들리는 현관문 닫히는 소리는 과장 조금 보태 고양이 발자국 소리만큼 조용하다.


그러니까 아버지가 새벽에 깨지 않는 날은 일주일 남짓 여름휴가기간과 연말 하루뿐이었다.

20년 언저리 세월 동안 어찌 감내할 수 있었던 건지 나는 감히 이해할 수 없다.

정확한 상황은 기억나지 않지만 늘 하시던 그 말은 생각난다.


“아빠 철인 28호 아니가!”


아빠, 아빠는 어떻게 그렇게 강해?

어떻게 그렇게 까지 할 수 있어?


아버지의 뒷모습과 늘어난 그림자를 바라볼 때면 그 그림자만큼 아버지가 커 보인다.


처음으로 양해를 구해 새벽을 온전히 쉴 수 있었다.

여행에서 돌아오던 날 아버지가 수줍은 미소를 지으며 내게 말했다.


“딸 덕분에 연차 쓰고 새벽에도 쉬어보네.”


어머니도 20년 넘게 연차 내고 새벽에 안 나가기는 처음이라고 말하셨다.

그 말을 들은 난 웃고 있었지만 동시에 슬픈 기분도 들었다.

아버지의 긴긴 노고가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기 때문이다.

새벽에 늦잠-따지고 보면 그렇게 늦잠도 아니지만-을 잤다고

헐레벌떡 뛰쳐나가다 다리를 접지르거나

계단을 급하게 내려가다가 넘어질 뻔 했다거나 한 일들 말이다.


웃프다.

누가 처음 만든 건지, 뛰어난 관찰력과 통찰이 담긴 모순적인 단어.

가장 희망이 필요한 사람은 절망 속에 있는 사람이라는 모순처럼

슬픔은 때론 웃음과 함께 드러나기도 한다.



아버지는 돌 같은 분이다.

삶이라는 파도에 온몸을 던지는 돌.

데굴데굴 굴러 모난 곳 없이 둥그레진 몽돌.

하지만 반짝이며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돌.

그래서 주머니에 넣어가고 싶어지는 돌.


작년 크리스마스이브 산타분장을 한 외국인 아저씨가 아이들에게 선물을 나눠주는 이벤트를 하고 있었다.

짧은 쉬는 시간 그가 빨간 산타복에 풍성한 가짜 흰 수염을 단 채 누군가와 영상통화를 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아빠 산타 됐어!”


다른 아이들은 파란 눈의 외국인 산타를 보고 울었지만, 아이는 제 아빠를 알아보고 까르르 넘어간다. 잠깐이지만 훔쳐본 타인의 일상이 무척 따뜻하게 느껴졌다. 당장 나의 아빠가 보고 싶어질 정도로 말이다.


아버지는 이미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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