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면교사(反面敎師)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원하든 원치 않든 다양한 사람을 만나게 된다. 내게 호의적인 좋은 사람만 있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는데 그 비율이 반반이다. 정확히 5대 5는 아니고 6대 4 정도? 좋음이 6이라 생각하고 싶다. 좋지 않았던 관계를 떠올려보면 그들을 통해 배운 것도 있더라. ‘이런 사람은 되지 말아야겠다.’의 ‘이런’이다. 그게 나의 삶의 철학을 형성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크게 두 가지 사건을 통해 내가 지향하는 가치관을 소개 하고자 한다.
돈통에 들어있어야 할 일정 금액이 모자란 적이 있었다. 상사는 당연히 제대로 체크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나를 나무랐다. 그거 하나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 이 난리를 치게 만드냐며 말이다. CCTV를 돌려봐야 된다니 어쩌니 묘하게 들뜬 목소리로 말하던 그는 오래 지나지 않아 돌려봤고 어째서인지 입을 꾹 다물었다. 알고 보니 그가 다른 일로 일부 현금을 빼가고는 깜빡 잊고 장부에 기록하지 않은 것이었다. 그렇다, 그렇게 애타게 찾던 범인은 그 자신이었던 것이다.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며 나를 나무라던 그는 사과하기는커녕 웃었다. 마치 재미있는 잠깐의 해프닝이었다는 듯. 그게 그답다며 어깨를 으쓱하고 넘겼지만 지켜보던 이들 중 몇몇은 내게 다가와 대신 화를 내며 위로해 주었다.
“사람을 그렇게 몰아세우더니 어떻게 한 마디 사과도 없데?”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그분의 말에 사회초년생이었던 당시의 난 큰 위로가 되었더랬다. 나를 몰아세우던 상사를 보며 생각했다. 나는 그런 사람이 되지 않아야 겠다고. 어떤 문제 상황이 발생했을 때 섣불리 판단하기보다 실수를 수습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기다려주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말이다.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세워두고 손가락질하며 공론화하지 않을 것이다. 타인의 인격을 깎아내리는 행동은 스스로를 깎아내리는 거더라. 그런 건 이상향(Utopia) 아니냐고 해도 좋다. 이상향을 향해 걷는 걸음걸음이 이상향에 닿지는 못하더라도 가깝게는 해주니까. 우리 모두가 노력한다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어느 날 복도를 지나던 중 과장이 내게 들으란 듯 혼잣말했다.
“그렇게 안 봤는데 말이야, 사람이 참 간사해?”
알고 보니 내가 자신의 잘못을 팀장에게 일러바쳤다고 오해해 생긴 상황이었다. 당연하게도 당시의 난 그의 혼잣말에 아무 대응도 할 수 없었다. 앞서 걷던 그의 얼굴이 어떤 표정인지조차 알 수 없었다. 일러바친 범인이 나일 것이라 확신하는 이유는 아마 내가 그와 일을 같이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일 테다. 하지만 그가 간과하고 있던 사실이 하나 있다. 이미 많은 이들이 그가 행하던 잘못된 행태에 대해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걸 그 자신만 몰랐다. 결국 그의 잘못이 돌고 돌아 스스로를 친 것이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그런 일을 겪었음에도 생각보다 기분이 나쁘다거나 화가 나지 않았다. 그냥 조금 어이가 없을 뿐, 오히려 묘한 해방감마저 일었다. 별다른 이유 없이 내가 싫은 사람이라면 눈치 보는 게 다 무슨 소용이겠는가? 내가 뭘 하든 싫을 텐데. 그래서 오해를 그냥 오해로 두기로 결심했다. 아마 그는 오해로 뒤엉킨 실타래로 평생을 살아갈 테지만.
해명을 위해 나서는 때는 소중한 사람을 지키기 위해서가 될 것이다. 때론 오해를 오해인 채로 두는 것 또한 용기더라.
* 인물 특정을 피하기 위한 조금의 각색이 들어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