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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글을 쓰게 하는 힘에 대하여

나의 열렬한 응원자

by 보보

어머니는 늘 내가 글을 올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어땠노라 감상을 꼭 말씀해 주신다.

이번에도 <네잎클로버를 닮은 사람>을 올린 뒤 어머니가 조심스레 내게 말했다.


“영아는 엄마 안 닮아서 다행이다.”

“왜?”

“엄마는 성격이 안 좋잖아.”

“아니야 엄마 닮았어! 엄마는 상황이 안 좋아서 그랬던 거지. 엄마 성격 좋아.”


문득 초여름이면 늘 만들어주시던 어머니의 비빔국수가 떠올라 썼던 <여름을 잘 보내기 위한 기도>를 올린 날에는 이렇게 말했다.


“다들 비빔국수가 먹고 싶은가 보다 하하”


<먼저 받은 듯 주는 마음에 대하여>를 썼을 땐 출근하는 시간이었는데 카톡이 왔다.


“영아 글이 감동

울 딸이 이리 컸나 싶네

이젠 시집을 가야 하는데~ㅎㅎ”


마지막 문장만 빼면 완벽했겠지만, 어찌 됐든 어머니를 존경하는 나의 마음을 쓴 그 글이 어머니의 마음에 가닿았다는 사실이 감사했다.


글은 벽에 대고 하는 일방적 대화가 아니라 상대방을 생각하며 던지는 말이며 소통의 방법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 나이기에 매번 글을 올릴 때마다 하는 어머니와의 대화가 낯간지러우면서도 즐겁다.


내가 글에 사용하는 꽃과 풍경 사진은 주로 어머니가 찍은 사진인 경우가 많은데, 그녀의 사진에는 정직하고 순수하게 마주하는 시선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이런 구도에서 이렇게 찍으면 사람들이 더 좋아하겠지? 멋있다고 생각하겠지? 가 아닌, 그저 그 순간 거기에 있는 그것이 조화롭고 좋았기에 찍은 것이었다.


내가 쓰고 싶은 글도 마찬가지다. 멋이나 허세를 부리려 온갖 미사여구가 가득한 글이 아닌 진심으로 우려낸 가벼우면서도 깊이가 느껴지는 그런 글을 쓰고 싶다.


나의 첫 원고료는 유산균 음료였다. 브런치를 시작하고 얼마 안 되었을 때의 일이었다. 처음 기고 제안이 왔을 때 내적 비명을 질렀더랬다. 내 글을 잡지에 싣고 싶다니 너무 감사했다. ‘처음’은 언제나 설레는 법이지 않은가? 첫 지면 데뷔였다.


메일에는 원고료 대신의 ‘소정의 상품’이라고 쓰여 있었다. 원고료에 대한 기대가 없었다면 거짓이겠지만, 그래도 제안을 주셨던 기자님의 말 한마디로 이미 그 값은 충분했다.


‘많은 사람들에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라는 정중한 부탁은 나보다도 나의 글을 가치 있게 생각해 주는 듯했다. 거기서 이미 끝났다. 할 마음 가득이었다. 글쓰기를 전문적으로 배워본 적도 없는 사람의 글을 믿고 실어주신다는 데 감사할 따름이다.


기존의 글을 잡지로 읽기 좋게 정돈하고 정리해 나가며 한 발짝 성장하는 기분이었다. 무엇이든 안 하는 것보다 하는 게 낫다는 나의 지론은 이번에도 통한 것이다.


그 뒤로 나는 쓰고 싶은 글감이 떠오를 때마다 주저 없이 써 내려갔다. 그게 벌써 60편이 되었다. 그때의 원고료는 소정의 상품이 다가 아니었다. ‘원고료’에는 글을 쓰고 싶게 하는 힘도 함께 들어있었다.


그다음은 무려 원고료가 10만 원인 제안이었다. 소정의 상품에서 그다음 단계로 올라간 것이다. 또 한 번 내적 비명을 질렀다. 남에게 자랑할 만한 정도는 아니었기에 혼자 기쁨을 만끽한 게 다였지만 그래도 좋았다.


지금은 그 카테고리가 없어진 듯하지만, 화장품 브랜드에서 젊은 여성들의 에세이를 정기적으로 업로드하고 있었다. 그는 제시하는 주제에 맞는 글을 써달라고 했고 나는 흔쾌히 수락했다. 내가 써놓은 글이 아닌 상대방이 요청하는 주제에 맞는 새로운 글을 쓰는 작업은 무척 흥미롭고 즐거웠다. 그동안은 주제어를 두고 쓰는 게 아닌 쓰고 싶은 게 생기면 그때그때 쓰는 방식의 글쓰기를 해왔으니 말이다.


일주일 내내 밤이며 낮이며 하나의 원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전혀 힘들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도파민이 너무 많이 돌아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였다. 그만큼 글을 쓰는 동안 행복했다. 제안을 주시며 했던 ‘저희가 추구하는 일상 속 자연스러운 일상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말은 내게 있어 엄청난 칭찬이었다. 내가 추구하는 글쓰기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와 같은 화려한 명화도 많지만 그와 반대로 소박한 일상을 그린 경우도 많다. 장 바티스트 시메옹 샤르댕은 <요리 도구, 냄비와 프라이팬, 달걀 세 개>를 그렸고, 칼 라르손은 <숙제를 하는 에스뵈욘>을, 칼 슈피츠베크는 <가난한 시인>이라는 작품을 그렸다. ‘우리가 색을 가지고 그림을 그린다고 누가 말했는가. 우리는 색을 사용하지만 감정을 가지고 그림을 그린다.’라는 샤르댕의 말을 인용하여 말하자면 글을 쓰는 행위도 마찬가지라 생각한다. 생각하고 느끼는 것들을 활자로 표현해 내는 것이 작가다.


나는 늘 빚지고 있다. 내 글을 읽어주는 수많은 알 수 없는 사람들로부터, 그리고 가장 가까이서 응원해 주는 나의 어머니, 아버지로부터 말이다. 그 빚을 갚을 수 있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내가 계속 꿈을 꾸는 것이며 글을 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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