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가 앗아간 것
치매가 온 할머니는 점점 웃는 일이 줄어들더니 이제는 손녀인 나를 보아도 웃어주지 않게 됐다. 올해 할머니의 생신을 맞아 찾아간 우리 식구에 예의 잘 왔다는 인사치레의 말도 하지 않는다. 그저 묻는 말에 ‘으응’하고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다.
치아가 없어 음식을 씹기 어려운 할머니를 위해 부드럽고 달달한 고구마 케이크를 골라 사왔다. 케이크를 사려 들렀던 첫 번째 가게에서는 고구마 케이크의 재고가 없어 다른 곳을 찾아가는 수고를 들여야 했지만 번거롭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주섬주섬 포장 박스에서 케이크를 꺼내 위에 올려두고는 커다란 빨간 초 하나를 꽂았다. 같이 동봉된 성냥개비로 초에 불을 붙여 할머니에게 내밀며 말했다.
“할머니 생신 축하드려요!”
생신이라 케이크를 사 왔노라고 큰 소리로 여러 번 되뇌었다. 이 케이크가 할머니 자신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한 것이라는 걸 알 수 있도록 말이다. 그러자 양쪽 입 꼬리가 귀에 걸릴 듯 말려 올라가고 감길 듯 말 듯 눈이 접혔다. 1년 만인가? 너무 오랜만에 본 할머니의 미소와 그 순수함에 우리 모두 전염이라도 된 것처럼 웃었다. 작은 방 안에 웃음소리가 가득 차는 순간이었다.
연약한 노인의 입김에도 촛불은 쉽게 꺼졌다. 찰나였다. 주름이 자글자글 져 하회탈 같은 팔자주름이 깊게 새겨진 얼굴이 촛불이 꺼짐과 동시에 사라졌다. 붉었던 얼굴에 다시 그늘이 졌다. 언제 그랬냐는 듯 무표정한 얼굴, 그 얼굴을 계속 들여다봤다. 언제 다시 웃을지도 모르니까.
93세, 할머니의 인생은 길었을 터인데 한 순간의 찰나처럼 느껴졌다. 나름 장수하셨다고 할 수 있을 연세였다. 그런데도 손녀의 입장에서 본 할머니의 생은 짧게만 느껴졌다. 그건 아마 죽음이 가까워지고 나서야 내가 그녀를 알게 되었기 때문이겠지.
덧없이 짧은 인생이라는 말이 있다. ‘덧없이’에는 ‘알지 못하는 가운데 지나가는 시간이 매우 빠르게.’라는 뜻이 있다. 할머니의 인생도 덧없이 짧았을까? 할머니의 삶이 어땠는지 본인에게 직접 물어보고 싶었지만, 묻고 싶은 것들이 생겼을 땐 더 이상 대화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시골 바닷가 마을, 남편을 집어삼킨 바다 곁에서 두 아이를 먼저 보내고 한 아이는 입양을 보내야 했던 할머니의 시간이 짧았을 리가. 그저 빨리 가기를 바라지 않았을까. 감정이 절제된 그녀의 얼굴을 어떻게든 읽어내 보려 바라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