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이야기
버튼을 누른 대로
어김없이 순종하는 이 기계에게
자유의지를 줄 수 있다면
아마도 처음으로
문이 열리지 않던 날
조금은 당황하겠지만
수리공을 부르진 않을 거야
계단을 내려가며
생각해 보겠지
매일 똑같은 움직임에
하루쯤 싫증이 났을 수도 있고
어제 내가 무심하게 올라타고 내린
순간을 기억하고 있을 수도 있지
버튼에 반응하지 않은
그 부재의 순간,
내 마음에는 존재의 순간이
되어 있겠지
어떤 날은
버튼을 누르지도 않았는데
내가 올 줄 알고
미리 문을 활짝 열어젖히는 모습에
한바탕 웃으며
하루를 시작하게 될지도 모르지
자유의지에 대해
아마도 생물과 무생물까지 포함하여
제 명령을 눈에 보이게 잘 수행하는
존재 중 하나가 엘리베이터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아파트 10층에 살면서 내려가기 위한
버튼을 누르면 어김없이 다가와 문을
엽니다. 그리고 1층까지 성실히 데려다
주죠. 물론 올라갈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루의 시작과 퇴근 후 마무리되는
그 순간을 엘리베이터는 성실히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지요.
사실 성경을 보다 보면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자유의지에 대한
설명이기도 합니다.
'하필 왜 선악과를 만드셔서 사람이
죄를 짓게 하셨나?'
라는 의문의 출발이기도 하고요.
이 성실한 엘리베이터가 왜 내겐
조금도 감흥을 주지 않을까라는
엉뚱한 생각을 하다가
‘자유의지’라는 단어를 떠올렸습니다.
만약 엘리베이터가 자유의지를 가진다면?
곧 기계가 아니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꽤나 흥미 있는 상상이었습니다.
그가 나의 명령을 거부할 수 있는
자유를 가지는 순간, 역설적이게도
저는 그와 사귈 수 있게 되는 것이지요.
물론 완전한 멀어짐도 감수해야겠지만,
자유의지란 건 그를 생각하게 하고
또 걱정도 하게 하고
나를 웃음 짓게 하는 모든 관계의
시작을 나타내는 단어라는 것을
새삼 생각해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