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내가 보는 세상

by 초린

엄마와 내가 보는 세상은 많이 닮아 있는 걸 확인했다.

최근에 엄마가 신혼집에 찾아왔다.

올해 처음 콩국수를 시켜 먹고, 뜨거운 햇빛을 뚫고 커피 한잔을 하러 갔다.


커피를 시키고 기다리고 있던 와중,

옆 테이블에 70대 정도로 보이는 여자분이

테이블에 엎드려 계셨다.


사람도 죽이는 더위라 속으로 온열질환이라도 걸리신 건가 하며

또 내 불안을 건드리고 있었다.

언젠가 티브이에서 지병이 있으신 할아버지가 응급실을 직접 찾아오셨는데

오랜 시간 기다리다 그 자리에서 사망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물론 알아차리기는 어려운 상황이었을 것이다.

누구를 책망하기보단, 한 사람이라도 관심을 가져줬더라면

최소한 병원에서 치료도 받지 못하고 사망하는 일은 없지 않았을까 싶었다.


그런 상황이 내게도 오진 않을까

혹여나 당연히 피곤해서 엎드렸다 생각한 것이

환자는 아니었을까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길에 누워있는 사람을 봐도,

술에 취해 자는 게 대부분일 테지만

왠지 모르게 심장마비라도 걸려 쓰러진 건 아닌지 생각하게 된다.

아직까진 그런 일이 있지는 않았지만

늘 내 마음속엔 언제나 그 버튼이 기다리고 있다.


여하튼 입 밖으로 그 마음을 꺼내지는 않았다.

괜한 나의 불안이 작동한 거라고 나 자신을 가라앉히고 있었다.

그런데 웬걸, 엄마는 그분을 보자마자

"저분 왜 엎드려 있지?"

"어디 아프신 거 아니야?"

하시는 것이다.


'그런가?' 하는 걱정과 동시에,

엎드려계시는 분이 상체를 일으키는 순간 안도감과

이렇게 엄마와 내가 보는 세상이 닮아있다는 것에 웃음이 났다.


생각보다 세상은 그리 뉴스처럼 사건 사고가 일어나지 않는다.

이 사실을 나 자신에게 타일러야 했고, 또 엄마에게 큰소리로 타일러야 했다.

사실은 나와 같은 생각에 너무 놀랐지만

나는 아니었다는 듯이 말이다.


이 불안은 대대로 내려오기 마련이다.

잘 간수하지 않으면 언제든 소리소문 없이

조금만 건드리면 큰 소리를 내며 시끄럽게 하는 경적이 되어버린다.

엄마의 불안증이 나에게도 작은 불안이 되어버린 것처럼.

아기를 갖게 된다면 이 불안이 닮지 않게 잘 간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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