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못러의 살벌한 자기 객관화

꿈이 야무지구나

by 초린

돌고 돌아 만족스러운 직무를 선택하기까지 비교적 오래 걸린 사람으로서 열심히 자기계발하고 직무를 연마하면 탄탄한 경력을 쌓으며 늦은 취업이지만 고속 승진하는 원대한 꿈을 꾸었던 시절이 있었다.(얼마 되지 않았다ㅋ)


유튜브에 나오는 자수성가한 사람들처럼 하루를 나흘같이 쓰고 배움을 멀리하지 않으며 몰입하여 일을 쳐내면 내 욕망 가득한 상상은 현실이 될지도 모를 일이라고.


현실은 나에게 꿈이 야무지다 말한다. 생각 자체는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생각에 비해 내 초라한 행동거지가 문제인 것이다. 내 야무진 생각과는 다르게 그저 업무 시간만 때우고 퇴근시간만 오매불망 기다리는 도비로 전락한 것은 입사 후 그리 오래지 않은 시간에 일어났다.


1. 몰입은 개뿔 이렇게 산만한 사람이 어딨 나요?

내가 상상한 이상적인 모습은 해야 하는 일을 최대한의 몰입을 통해 최소한의 시간으로 결과물을 내미는 것이었다. 생산성을 높이는 방법에 대한 이론은 빠삭해서 출근하자마자 시간대 별로 (보통 오전, 오후) 목표를 세우고 세운대로 일을 쳐내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늘 내 행동은 계획과는 다르게 흘러간다.

너무도 산만하다!!!!!! 요즘 현대인의 고충이라곤 하지만 적어도 이 회사에서는 내가 제일가는 산만러? 인 사실은 아주 자명하다. 한 가지의 일을 막 시작하려 하다가도 다른 일이 생각나서 잠시 확인하다, 이내 폰을 집어 들고 카톡을 하고 있는 나를 보자니 한숨이 푹푹 나오는 것이다.


어떤 숙주가 내 뇌를 조종하는 기분을 아는가.

머리로는 지금 당장 휴대폰을 내려놓고 몰입을 해야 해! 혹은 지금 이 일을 할 때가 아니야! 하면서도 나는 끝까지 폰을 들여다보거나 다른 잡다한 일을 하다 오전시간이 그대로 끝나버리는 것이다. 그렇게 또 업무가 밀려나간다. 아.. 고속승진은 차치하고 일이라도 제대로 끝내면 다행이게?


2. 집중이 뭐예요? 헤드뱅뱅! 내가 이 구역의 헤비메탈러

졸고 난 후 현타온 내모습 같다

곧게 허리를 펴고 타자기를 타닥타닥 두드리며 업무를 하는 모습, 이 또한 내가 상상한 멋진 직장인의 모습이다. 오전 시간은 그렇다 치고 점심시간만 지나면 나는 점점 말라간다. 허리는 구부정해지고 등은 힘없이 의자 등받이에 딱 달라붙는다. 마치 어디라도 기대지 않으면 쓰러질 것 같다. 눈은 반쯤 감겨 그 마저 떠보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안쓰럽기 짝이 없다. 만약 (날 숨겨주는) 모니터라도 없었다면 이 모습을 본 건너편 사람은 바로 잠이 깼을지도 모른다. 흉측해서..


바로 몇 시간 전 유체이탈을 경험했다. 머리를 이리저리 흔들며 졸고 있는 내 모습이 눈 감은 채로 그려졌다. 깨고 싶어도 깨지지 않는 그런 감옥에 갇혀 이 구역의 헤비메탈러가 된 내 모습.. 조금 졸다 깰 만도 한데 나는 한동안 그렇게 머리를 공중에서 돌려대고 있었다.


다 마음가짐에서 나온다 하였는가. 입사 초 내 패기는 다 어딜 가고 이제는 따뜻하면 잠이 오고 배부르면 잠이 오는 본능에 충실한 도비가 되었다. 마음만은 나도 멋있는 일잘러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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