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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린 Jun 03. 2024

당근 거래한 고객에게서 부고장이 왔다.


내 당근 판매 내역에는 대부분 엄마의 식물들로 가득 차있다. 작년이던가 재작년까지는 하루마다 새로운 식물들을 데려오더니, 갑자기 무슨 마음에선지 베란다에 있는 식물들을 싹 정리하고 싶다 했다.


전적으로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는 나로서는 반가운 이야기였다.정리를 한다고 했지만 아직도 많이 남아있는 화분들을 식물과 함께 처분하고 있었다. 내 계정으로 식물을 올리지만 가끔 거래는 엄마도 도와줄 때가 있다.


스케줄이 맞다거나, 아무래도 엄마 물건이니 엄마도 아예 손발 벗고 편히 있을 수는 없으리라. 올해 2월쯤 갑자기 두 분에게 화분+식물을 사겠다고 연락이 왔었다. 한 분은 올린 물건들 중 3개를 사신다 했고, 한 분은 1개만 산다고 했다.


엄마는 바리바리 정성스레 화분을 포장해서 나섰고, 1타 2 피라 하는 것이 올바른 단어인지는 모르겠으나, 같은 시간과 장소에서 한 번에 거래를 성사시켰다. 그런데 그중 한 분이 엄마에게 대화를 요청하셨다.


이 식물을 잘 키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고 싶다고 하셨다. 엄마는 길가에 우뚝 서서 알려주다, 그분께서 요 앞 카페에서 커피 한잔 하면서 이야기를 하자고 제안했고 거절이 힘든 엄마는 그대로 그 카페에서 1시간 내내 식물 키우는 방법으로 시작해 그분의 가정사부터 건강이슈까지 듣게 되었다 했다. 나이 공개부터 직장, 자녀정보 그리고 암환자라는 것까지.


엄마는 1시간까지 대화할 줄 몰랐다 했다. 그저 구매하신 식물을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 묻고 싶어 그런 줄 알았다고 했는데, 중간에 그냥 일어서기 힘들어 이야기를 하다 보니 1시간이 지났다고 했다. 가끔 그럴 때가 있다 오히려 나를 모르는 존재가 더 힘이 될 때 말이다.


모든 걸 아는 지인이나 가족보다 나를 몰라서 그냥 객관적으로 봐주는 사람에게 이야기를 터놓는 게 더 마음이 놓이는 그런 날, 아마 그분에게 그날이 그런날이지 않았을까 싶었다. 그 이후로 다시 한번 당근앱으로 메시지가 왔다.


잘 키우고 싶은데 웃자라는 것 같다며 원인을 물으셨었다.

이미 내 손을 떠난 화분이라지만 누군가에게 가서도 잘 컸으면 좋겠어서 어깨너머로 배운 지식들을 별건 아니지만 말씀드렸다. 담백하게 끝난 대화지만 내 본분은 다 했다 생각했다.


그렇게 잘 키우시겠거니 했는데 며칠 전 엄마에게 부고문자가 왔다.(그날, 그분은 엄마의 연락처까지 여쭤보셨고 거절 못하는 엄마는 그대로 알려주셨다) 아프신 분은 오늘 괜찮다가도 하루아침에 확 나빠져버리곤 한다는 게 와닿았다.


어떤 인연으로 엄마와 그리고 나와 인연을 맺게 된 진 모르겠지만 괜스레 마음이 아팠다. 삼가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는 짧은 문장으로 속마음을 대신한다.


중고 거래가 맺어준 가벼울지 모를 인연에게서 죽음과 삶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된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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