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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하 Mar 19. 2023

내 팔은 내가 흔든다.

엄마의 유산

 왼쪽팔이 아프다. 밥도, 청소도  문제없는데  뒤로 돌리는 게 안된다. 시간이 가면 낫겠지, 가볍게 넘겼는데  조금씩 더 불편해진다. 이러다 등이라도 가려우면 큰일이다. 재혼은 미처 생각도 못했. 바빠서.


나이 들면서 엄마를 닮아간다. 무심히 보다가 깜 놀랄 정도로 얼굴이 닮아있을 때가 있다. 입맛도 닮아간다. 싫어하던 참외를 먹고, 백앙금이 든 상투과자는 찾아가서 사다 먹는다. 김밥은 자주 해 먹는다.  우리 칠 남매는 한해에 서너 명 같 국민학교를 다녔다. 소풍날 새벽같이 일어난 엄마는 김밥집만큼 많은 김밥과 초밥을 만들어 도시락을 싸주셨다. 나는 초밥만 먹고 김밥은 버리고 왔다. 엄마가 참외와 상투과자, 김밥을 좋아하는 것을 내가 딸들을 낳아 키우고, 엄마가  할머니가 되어서야 알게 되었다.  

 

평생을 학자로 살다가 돌아가신 아버지는 젊어 한때 사업을 하셨다. 개발하는 제품마다 성공을 해서 외국으로 판로를 넓혔다. 수출을 장려하던 정권에서 기업훈장과 대통령표창도 여러 번 받았다. 공장 규모가 커져서 종업원수도 늘어났다. 당시는 각지에서 일하러 온 사람들에게 숙식을 제공했다. 기숙사에 밥 하는 사람이 따로 있었지만 하나에서 열까지  엄마손이 필요다. 아버지가 사업가로 성공하는 만큼 엄마는 더 바빠졌다. 그 시절 급한 회사자금을 구하러 종종걸음 치는 엄마를 자주 보았다.


김장철에는 내 키보다  큰 고무대야가 나왔다. 수도나 고무장갑이 없던 시절이었다. 석유곤로에 물을 끓여 손을 녹여가면서, 맨손으로 배추 삼백포기를 자르고 소금을 쳐서 고무대야에 절였다. 밤새 숨을 죽여 새벽이 되면 뒤집었다. 뒤집은 배추는 또 하루를 더 절이고 씻었다. 배추가 많으니 물 빼는 시간도 하루, 양념을 발라 김치통에 넣고 뒷설거지까지 꼬박 하루가 또 걸렸다. 김치속도 시간을 들여 정성을 다해 만들었다. 갈치, 조기등 온갖 생선을 넣고 고소하라고 땅콩까지 갈아 넣었다. 지금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는 맛난 김치였다.  


가까운 친척은 물론 먼 친척들도 우리 집으로 모였다. 엄마는 회사에 적당한 자리를 내어주어 정착하게 했다. 식구가 딸린 사람은 집을 구해서 살게 하고, 혼기가 찬 처녀. 총각은 거래처 사람과 결혼시켰다. 우리 집을 구심점으로 집성촌처럼 모여 살았다.  아버지 사업이 망하자 친척들은 왔던 순서대로 떠나갔다. 원망과 폭언을 퍼붓기도 했다. 한밤중 잠든 우리 방에 신발을 신은채 난입해 돈을 요구하는 친척도 있었다. 아버지는 피해 있었고  엄마는 그 모든 것을  담담하게 겪어냈다.  


이란,  안개 낀 산길을 헤매는 것 같은 순간이 온다. 열심히 걷기만 해선 안된다. 옳은 방향을 찾아내지 않으면  어디로 흘러가게 될지 모른다.  엄마는 현명한 사람이었다. 아직 어린 칠 남매와 어리숙한 남편을 단단하게 보듬고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그 길을 걸어서 나왔다.


나는 연비가 낮은 사람이다. 쉽게 지치고, 눈앞의 것에  매혹되었다. 엄마가 되고  아이가 자라 또 아이를 낳았다. 무수한 힘든 시간이 지나가고 오히려 자신이 강한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나를 주저앉히지 않고 일어서게 한 힘은 어디서 온 것일까.  우리 엄마가 말했다. "내 팔은 내가 흔든다"  나는 내 생각보다 더 많이 엄마를 닮은 맏딸이었다.


 병원을 갔다. 팔이 아프면 엄마 말씀을 못 따르니까.  아픈 건 팔인데 어깨에 염증이 있다는 진단이 나왔다. 정확다. 어깨주사를 맞고 물리치료를 받으니 아픈 게 덜하다. 마음이 하는 소리를 듣는 것도 중요하지만 몸이 하는 말도 잘 들어야겠다.  계속 '내 팔은 내가 흔들어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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