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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하 Mar 14. 2023

슬램덩크

아이가 농구를 시작했다.

사위가 갑자기 농구에 관심을 가진다. 아이  농구아카데미를 알아보더니 신설반에 자리 하나가 비었다고 한다.  아빠와  영화'슬램덩크'를 보고 온 아이는 무조건 농구를 하겠다고 한다.


알아보니, 수업시작이 밤 8시 30분이다. 평소 10분 남짓 걸리는 곳인데  셔틀을 타는  순서가 제일 마지막이라 차에서 보내는 시간이  왕복 한 시간이다.  다녀와 씻고 나면 밤 11시가 훌쩍 넘어간다. 아이의 수면시간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에게는 무척 난감한 사안이다. 허나 아이의 일로 모처럼 일선에서 활약한 사위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다른 길도 열리지 않겠는가.  내일의 구름을 끌어다 오늘 의 해을 가리고 싶지는 않다. 물론 대표님께 셔틀 10분 거리 가까운 센터 자리를 간곡하게 부탁해 놓았다.  


셔틀 시간을 물어보던 딸이 사위에게 "너무 늦으니까 셔틀 태우지 말고 직접 가서 데려와"라고 했다. 딸과 사위, 내가 있는 단체톡방에서 일어난 일이다. 즉답이 올라온다. "그냥 그만두라 할게" 무심한 문장이나 딸과 나는 안다. '나이스한지랄'임을,  모든 지랄을 피할 수도 없고 모든 지랄과 싸울 수도 없다. 급히 딸에게 톡을 보낸다. 달래라!


 지혜로운 딸은 바로 댓글을 올린다. "극단적이고 ㅋㅋㅋ" 삐진 마음을 녹이는 딸만의 유머처방이다.  나도 어시스트를 날린다. "리나가 얼마나 기대하는데"  쐐기를 박는다. " 리나 편에 카드 보낼까?"   사위는 농구수업 첫날 아이를 데려가 지켜보고 "리나가 농구에 소질이 있어요"라며 기분이 좋아 보인다. 선생님이 보낸 농구수업 영상을 꼬박꼬박 단톡에  올려준다.


외손녀가 태어나고 출근한 딸과 사위에게 보내던 사진을 어느 날부터는 딸에게만 준다. 사위에게는 딸이 추려서 보내주는 것 같다.  매일 아기의 사진을 찍고, 공유하고  반응하는 것에 사위는 낯설어 보였다. 아기를 데리고 외출하는 날, 기다리는 내게 사진 한 장 보내주지 않았다.


딸의 상견례날 한정식집에서 식사를 하고  사돈어른이 카메라를 들고 나왔다. 아름다운 정원을 배경으로 우리 가족의 사진을 찍어주셨다. 옆에서 사부인이 눈을 흘기는 것 같았다. 딸의 결혼식 후 사부인과 종종 만난다. 사부인에게는 친손녀이고 게는 외손녀인 아기를 보러 주로 우리 집에 오신다. 첫날은 설거지하는 내 옆에 서서 고무장갑 끼는 것을 보고 오백 번쯤 이야기하고 가셨다. 본인은 답답해서 고무장갑을 못 낀다고, 그래서 웃으며 끝까지 끼고 했다. 둘째 날은 아기를 재우고 집안일하는 내게, 아기가 놀 때 업고 일하고 아기가 잘 때는 같이 자야 한다고 천 번쯤 이야기하고 가셨다.


며칠 전 우리 집에 오셨다. 김밥을 만들어 먹으면서 사이좋게 사부인은 아들 욕을 하고 나는 딸 흉을 봤다. 사 오신 망고를 직접 깎다가 과도가 안 든다고 놀라서 주방과 거실을 왔다 갔다 하며 세상 어이없는 표정으로 이마트 가면 칼 가는 게  몇천 원 안 한다고 사라고 신신당부하고 가셨다. 아직 안 샀다.


사위도, 사부인도, 나도, 내 딸도 가정마다 문화가 다르고 개인의 고유한 서사가 있으니 각자 각자 피어난 대로 모여서 아름답게 살 수 있다.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조금 더 어른이니 어른답게 살지는 않겠다. 신나게 살아야지. 오늘도 결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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