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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하 Jan 29. 2023

J

김리안박사님은요.하버드 우등생에다 얼굴은 장기용, 몸매도 장기용

 -안녕하시요-  J가 왔다.  설날이라 차려입은 감색의 철릭한복이 박보검보다 멋지다. J가 우리 집에 오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있다. J의 집에는 여러 종류의 자동차와 오토바이가 있지만 우리 집에는 오직 자동차 한 대가 있다. J는 이 자동차를 무척 사랑해서 들어오면서 그것부터 확인한다. 어메리칸 스타일인 J는 집안에서도 신발을 신는다. 우리 집에도 J의 신발이 여러 켤레 준비되어 있다.  J는 자동차에서 신발을 꺼내어 신은 다음 활동을 시작한다. 관찰력이 뛰어난 J는 모든 사물을 유심히 관찰하고 고대로 따라 한다. J의 집이 이사하는 날,  J를 따라다니다가 힘에 부쳐서 앉은자리에서 조금 이동을 했는데 다녀온 다음날 받은 동영상에는 바닥에 앉아서 엉덩이로 밀고 다니는 J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J의 아빠는 양치할 때 헛구역질을 하는데 그것을 따라 하는 바람에 욕실 문을 잠그고 숨어서 양치를 한다.  J는 문화센터를 다니는데 선생님을 오래도록 관찰하더니 어느 날부터는 수업할 때 선생님 앞에 서서 동작을 고대로 따라 한다. 보조교사로 부족함이 없다. 간혹 새로운 동작이 나오면 충분히 관찰하고 또다시 따라 한다.


 J가 엄마뱃속에 있을 때 초음파를 보던 의사 선생님이 " 이 부분이 머리예요 머리카락이 길어서 휘날리네요" 하셨다. 역시 태어난 아기의 머리카락이 검고 길었다. 아기의 풍성한 머리카락에 한이 맺힌 외할머니인 내 마음이 얼마나 흐뭇했던지 머릿속으로 부드러운 웨이브를 만들기도, 묶기도 했다. J의 머리가 자라지 않는다. 아니, 도리어 짧아지고 있다. 우리는 치밀하게 분석을 하여 결론을 내렸다. 머리카락이 자라는 것보다 머리통이 크는 속도가 더 빨라서 머리가 짧아지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J의 엄마가 보내오는 사진 중에서  머리가 무등산 수박처럼 길쭉해 보이는 사진을 잘 살펴보면 일반적인 머리의 사이즈가 어디까지 인지, 거기서부터 더 자라난 부분이 얼마만큼인지 확연히 보인다. J의 뛰어난 언어능력과 모방능력, 창의력이 그 부분에 저장되는 것으로 추측된다.



 J의 엄마가 물건을 집다 놓쳐서 발에 떨어뜨리는 바람에 자신도 모르게  "아이C아파" 라고 말해버렸다. 놀라서 얼른 J의 눈치를 살피니 별다른 반응이 없어서 안심하고 넘어갔는데  며칠 후 J의 입에서 -아이C아파-가 나왔다. 놀라는 부모의 반응에 J는 재미있다고 느낀 것 같다. 하루에도 여러 번 말한다. 부모는 다른 것으로 관심을 돌리고 못 들은 척 반응하지 않았다. 그러나 한동안 안 쓰면 잊을 거라는 생각은 경기도오산이었다. 그냥 따라한 말이 아니었다. 상황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쓰는 말임이 곧 밝혀졌다. 못마땅하거나 뜻대로 안 되거나 하면 -아이C- 를 쓰는데 표정까지 사악하게 찡그리거나 짜증을 내었다. 게다가 곧 '아파'는 빼버리고 -아이C- 만 쓰는 것이다.  인정 안 할 도리가 없었다.  진정한 J

 

J의 엄마는 결혼하고 팔 년째 아기가 없었다. 사 년은 신혼을 즐겼다. 시도만 하면 바로 임신이 될 것으로 믿었던 딸부부는 결국 난임병원을 다니게 되었다. 병원을 다녀오면 얼굴과 몸이 퉁퉁 부어 회복이 되지 않았다. 착상이 되지 않았다. 병원과 의사에 따라 원인도 바뀌고 처방도 달라졌다. 딸의 몸이 점점 망가지는 게 눈에 보였다.  " 좀 쉬고 몸이 회복되면 다시 시작해" "엄마 내 나이가 몇 살인데" 말하는 내게 화를 냈다.  차수가 거듭될수록 딸의 배는 피멍으로 온전한 구석이 없었다. 착상만 되면 다 되는 줄 알았는데 어렵게 착상이 되어 기뻐했다가 실패하는 일도 생겼다. 험관 사 년이 지나는 동안  딸과 사위는 몸과 마음이 만신창이가 되어갔다. 그래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기어이 냉동된 배아로 건강한 아기를 품에 안았다.


임신기간이 제일 행복했다고 딸은 말한다. 밥도 잘 먹었고 입덧도 심하지 않았다. 만삭사진의 딸은 아름답고 행복해 보인다. 좋아하던 매운 음식은 딱 끊고 맥주 한잔도 마시지 않았다. 제왕절개를 하기로 결정하고 날짜를 받았다. 받은 날짜와 시간에 수술을 못하는 경우가 있다고 해서 마지막까지 긴장했다. 코로나시국이라 병원도 조리원도 사위만 들어갈 수 있었다. 무사히 제왕 하고 조리원 가서 아기 안은 사진도 보내왔다.


조리원 퇴소 이틀을 앞두고 갑작스러운 출혈이 시작되었다. 딸은 구급차에 실려 큰 병원으로 갔다. 엊그제 아기 낳은 산모는 음압병실에서 추위에 떨며 아무런 배려나 보호도 받지 못한 채 끔찍한 처치를 받았다. 가보지 못하니 별생각이 다 들어 애간장이 타들어갔다. 사위 혼자서 정말 고생했다. 중환자실로 옮긴 딸과  다음날 통화를 할 수 있었다. 제 몸상태는 안중에 없이 부모 없이 혼자 남은 아기 걱정에 울고 있었다. 아기는 엄마가 없는 줄 아는 듯 계속 울었다. 조리원에서 보내는 원격사진 속의 아기얼굴은 이틀사이에 딱지와 진물로 뒤덮여 보고 있기도 힘들었다. 산후조리하러 친정에 왔다. 피부에 딱지가 생긴 아기를 선뜻 보여주지 않는다. 아기를 꼭 끌어안은 채 "엄마 아기가 못생겼는데 진짜 귀여워"라는 말만 자꾸 한다. "고생했다." 안아주는데 눈물이 쏟아졌다. 너를 열 달 품었다 낳았을 때 '이 아기도 자라서 나처럼 또 이런 고통을 겪겠구나'하는 생각으로 가슴이 미어졌다. '가여운 것 너도 이제 진짜 엄마가 되었구나.'


-안녕하시요-  걷기 시작하면서 아기는 길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인사를 한다. 공손하게 고개까지 숙이는데 숙일 때 앞사람은 지나가고 고개를 들 때는 뒤의 사람이다. "아가 어디 가니?" 그 모습이 귀여워 지나가던 할아버지가 말을 붙인다. -우리 엄마 밥 사러 가시요- 바로 옆에 손잡고 가는 아빠가 있어도 -엄마밥-이다.  초인종 소리가 나면 -엄마밥 왔시요- 폴짝폴짝 뛴다. 아기에게 밥은 소중한 것의 이름이다. 아침에 눈을 뜨면서 -마싰는밥을 먹고시퍼요- 먹으면서도 -너무 맛있다- 감탄이 계속된다. 딸은 아기의 삼시 세 끼니에 더할 나위 없는 정성을 들인다. 이유식부터 아기가 26개월이 접어든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집 밖의 밥을 먹인 적이 없다. 집안일을 알아서 다 해주는 사위의공이 다. 여행을 갈 때 보면 아기의 밥 관련 짐만 산더미다.



 J는 차려놓은 제사상을 보고 활짝 웃더니 신이 나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생일축하합니다아- 어른들이 절을 하는 틈새에서 엉덩이를 하늘로 치켜들고 바닥에 철퍼덕 누워서 생일축하 노래를 연신 불렀다. 어른들이 생일축하노래를 소리 높여 같이 부르고 나서야 J가 제사 초를 불어서 껐다. 남편은 아들을 원했다. 아들을 데리고 목욕탕에 가는 게 소원이라고도 했다. 문디지랄 J의 엄마인 둘째 딸을 낳았을 때는 '또 딸'이라고 병원에도 오지 않았다. 제삿밥이넘어가나?  제사상에 놓인 영정사진을 보니 어쩐지 웃고 있는 듯해서 얄밉다.

 

딸은 모유수유 중이다.  단유를 해야 되지 않을까 싶던 차에 <이소라작가님의 단유경험담>을 접했다. 참으로 지혜롭다. <한 달 전부터 아기와 달력을 같이 보면서 동그라미 친 날을 가리키며 '엄마쮸쮸가 아파서 이날이 되면 병원에 가야 한다.' 매일 이야기하고 체크한 날 병원 다녀왔다며 뽀로로밴드를 붙여놓고 '이제 못 먹는다'라고 하니까 울기는 했어도 더 이상 먹지는 않았다>고 했다. 딸에게 이야기했다. J에게 시도를 했단다. "엄마쮸쮸가 아파서.."  시작하자마자 J딸의 입을 때리면서  -그런 말을 하지 마아- 하며 화를 냈다.  말도 다 못하고 얻어맞기만 했다.  26개월에 접어든 J의  단유가 앞으로도 녹록하지는 않을 것 같다.


엄마에게 오는 길이 오래 걸렸지만 꼭 올 것이라 믿고 기다렸던 아기에게, 딸은 오늘도 기도한다. "김리안박사님은요 건강하고요 성실하고요 지혜롭고요. 얼굴은 장기용, 몸매도 장기용..."  엄마에게 오는 길이 멀었지만 마침내 찾아온 기특한 아기는 매일 매시간 고백한다. "엄마 너무 예뻐요 너무사랑하요"


i love you through and through. yesterday, today, and tomorrow, too.


 포기하지 않은, 모든 사랑은 남는 장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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