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하 Jan 23. 2023

일 년에 두 번가는 성당

내 큰 탓입니까

일 년에 두 번. 설날과 추석 위령미사에 참석하기 위해 성당에 간다. 명절 당일 오전 9시와 11시 두 번만 열리는 특별미사이다. 성전으로 들어서면 미리 신청해 놓은, 돌아가신 분들의 이름이 적힌 병풍이 놓여 있고 그 앞에 음식상이 차려져 있다. 입당성가를 시작으로 위령미사가 시작된다. 오늘 신부님은 지난 추석의 신부님이 아니다. 얼굴은 기억못 하지만 강론이 다르다. 헤어디자이너가 얼굴은 기억 못 해도 머리를 만지는 순간 내 손님인지 아닌지 아는 것과 같다. 추석 강론은 재미가 없었다.  신부님 놓은 론에 몇 가지 키워드뽑아, AI에게 력하고 글을 쓰게 해 나온 글을  부님이 쓴 글과 비교했는데, AI의 글이 훨씬 좋았지만 공감이나 소통은 신부님 글이 나은 것 같아 이걸로 강론을 하겠다고 하셨다. 다음번에  AI가 적은 대로 한번 읽어주겠다고 하신다. 이런 강론이 좋다. 청중이 쉽게 알아듣고 재미있지만  유의미한 메시지가 들어있다.


내가 들어본 중 제일은 우리신부님의 강론이다. 우리신부님은 가톨릭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다가 오신 분이었는데 신부복의 로만카라가 그분을 위해 만든 옷처럼 어울렸다. 영혼 아 보이는 우리신부님께 육 개월간 교리공부를 했다. 신부님은 민간인교육이 처음이셨고 나는 성당이 처음이었다.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못 듣던 "우리신부님" 소리를 듣는 게  좋다고 하셨다. 당시 여동생이 뇌출혈로 쓰러져 중환자실에 있었고, 사업상 재판이 진행 중이었으며, 딸의 결혼준비도 하고 있었다. 경상도굿은 한꺼번에 한다더니 교리공부까지 굿판에 들어왔다. 독실한 가톨릭신자이던 내 친구가 '가톨릭다이제스트'를 일 년 넘게 보내왔다. 얇고 가벼운 작은 책 안에 사랑이 넘치는 고운 글들이 들어있었다.  발행인인 정용철 님의 시와 글이 참 좋았다. 성당을 안 갈 도리가 없었다. 내 인생의 가장 치열했던 순간에  순서도 절차도 모르면서 절절하게 기도했고  공부했다.  우리신부님은 수업할 때 내 진지한 눈빛에 힘을 얻으셨다는 좋은 말씀도 해주셨다.  


신부님이 고민상담을 하셨다. 교리반 중 한 분사랑한다는 고백편지를 여러 번 보낸다고 어떻게 해야 되느냐고 물으셨다.  반짝이는  미모가  눈에 띄던 교리반동기다. 당황했다.  뭐라고 대답을 못 짧은 시간에 두 젊음, 신앙,  사제의 길이 어쩔 도리가 없이 가엾고 아프게 전해. 닷없는 뚱한 농담이 나왔다.  "신부님, 남자는 블루투스라  가까이 있는 여자를 좋아하고 여자는 와이파이라 제일 쎈놈을 좋아한대요." 어쩌라고미친  지금 생각하면 더 부끄럽기 때문에 잊고 산다.  얼마 후 우리신부님은 그림 같은, 바닷가의   작은 성당으로 옮겨가셨다.  가끔 신부님 생각이 나면 카톡 프로필을 찾아본다. 길냥이 사진이 올려져 있다. 농업과 생명에 대한 사랑이 넘치시는 분. 선량하고 강직한 우리신부님 사제의 길이 힘든 길이겠으나 힘들지만은 않기를 기도한다. 세월이 하수상할 때는 정치이야기를 아닌 듯 슬쩍 올리신다. 


성당으로 인도한 친구는 딸들의 피아노선생님이었다. 같은 초등학교의 학부모이기도 했는데 샘이 동네 비슷한 엄마들을 모아서 모임을 만들었다. 우리는 매일 만났다. 이 집 저 집 돌아가면서 밥도 먹고 화투도 쳤는데 모두 화투를 처음 만져본 엄마들이라 자려고 누우면 천정에 화투패가 어른거리게 재미있다고 했다. 피아노샘을 지금은 안 만난다. 사업을 하던 남편 덕분에 경매를 당했던 적이 있었다. 급히 돈 되는  큰 물건들을 정리했는데  피아노샘의 언니가 피아노를 가져갔다. "필요할 때 언제든지 돌려주겠다"는 고마운 말과 함께  피아노값으로 팔십만 원을 주었다. 삼십 년도 훨씬 전 일이다.

 

잊고 살다가 십 년여 전 딸들이 결혼을 하고 작은딸이 아빠가 사준 피아노를 꼭 가지고 오고 싶다고 했다. 작은딸은 피아노와 함께한 아빠추억이 많다.  피아노샘을 통해 연락을 했다. 못주겠다는 답이 왔다.  어쩌겠는가 서운했지만 넘어갔다. 몇 달 지나 집 도배를 한다고 피아노를 가져가라고 했다. 고마움을 전하고 얼마를 드려야 되겠냐 하니 샘이 "그때 백만 원을 주었으니 백만 원을 달라"라고 했다. 두말없이 돈을 보내고 피아노가 왔는데 상태가 피아노쓰레기였다. 담배냄새에 쩔어있는 데다 조율이 힘들 정도로 망가져있었다. 의자 속에는 맥락 없는 온갖 잡동사니가 뒤엉켜져 있었다. 상태를 미처 몰랐던 딸이 신혼집은 좁고 이사계획이 있어 피아노를 시댁으로 보내면서 "엄마친구가 보관했다가 보낸 것"이라고 말씀드렸다고 한다. 인이 훌륭하신 딸의 시부모님은 사부인의 친구가 보내온 찌든 때와 담배냄새를 없앤다고 조용히 오래 고생하셨다. 조율도 여러 번 했다. 그 과정에서 마음이 많이 상해서 연락을 안 하게 되었다. 어쩌다 보니 성당도 안 가게 되었다.


"만나려면 인정해야 합니다." 미사 전 읽은 주보에 올려진 말씀의 제목이다.  "내 마음 같지 않는 게 사람 마음이다"로 시작한 말씀은 "내 생각과 다른 사람의 생각이 같지 않음을 인정하는 데에서 시작해야 한다"로 끝났다. 어쩌라고하필  미사 내내 마음이 복잡하다. 신부님 강론이 끝나고 차례대로 앞에 나가서 영령에게 가루향을 피우고 묵념했다. 향 태우는 연기가 스탠드글라스를 통과한 여러 색의 빛과 어우러져 아름답고 신비하다. 지금 내 마음이 꼭 저 연기처럼 스멀스멀 여러 색깔로 움직인다.



'내 탓이오 내 탓이오 내 큰 탓이로소이다.' 참회기도를 할 때에는 피아노샘과 화해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가  미사가 끝나 집으로 돌아오면서 내가 뭘 잘못했다고, 화해할 생각을 했다는 것에 울분이 솟구쳤다. 왜 설날이 일요일이란 말인가. 원망이 날짜로 넘어갔다. 일요일이 아니었음 주보가 없었을 테고 주보의 그 말씀을 볼일도 없었을 텐데. 이 잉간은 왜 나보다 먼저 죽어서 위령미사를 다니게 하는지. 아니, 그전에 왜 경매 같은 게 들어오게 해서 피아노를 남의 집에 주게 만들었는지 원망이 남편에게 넘어갔다. 생전의 남편은 늘 큰소리쳤다. 자기 인생에서 제일 잘한 일이 나와 결혼한 일이라고. 나는? 글쎄.



                                                                                                                  

작가의 이전글 오늘도 평화로운 당근 나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