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정구지김치를 담갔다. 서울에선 부추로 불린다. 딸들은 일단 삼겹살과 부추를 먹는 것에 의견을 일치하고 마무리는 비빔면과 너구리가 경합했다. 작은딸은 정구지 사진이라도 보여달라고 읍소 중이다. 중, 고등 시절 아빠와 남은 부추김치를 놓고 젓가락 쟁탈전을 벌이던 아이다.
딸들과의 대화
결혼하고 팔 년 만에 마당 있는 집으로 옮겼다. 이사하고 남편이 제일 먼저 한 일은 땡초(청량초) 모종을 사 와서 심은 것이다. 화단 한쪽을 차지한 파릇한 연초록색의 이파리들이 보였다. 어느 날은 지지대가 세워져 있고, 며칠 있다 보니 빨간색 줄도 둘러져 있었다. 금줄인가? 자식 키울 때도 안 보이던 정성을 쏟더니, 첫 수확하는 날은 심본 심마니가 따로 없었다. 아이들은 어렸고 나는 매운 것을 못 먹었다. 딱 이때 까지였다. 남편 혼자만의 취향놀이로 좋았던 것이. 성취경험을 한 남편은 자기 효능감이 넘쳤다. 다음 도전은 정구지(부추)였다.
남편의 술안주 취향은 기이하다. 중국집에서는, 요리에 손도 대지 않고 짜장을 안주로 해서 마신다. 고깃집에서 안주는 양파다. 횟집은 그 비싼 회를 두고 기어이 막장과 마신다. 진짜막장이다 친지들이 식사를 권하면 한결같은 대답이 돌아온다. '집에 가서 우리 마누라 밥을 먹어야 해서' 그래서 못 먹는다는 거다. 술자리가 1차로 끝나는 일은 없으니 집에 가서 밥을 먹는 경우는 거의 없다. 정년퇴임한 시아버지가 시골고향에서 양조장을 시작하셨다. 때 맞추어 멀쩡한 직장을 때려치운 남편이 당분간 양조장에 투입되었다. 전화로 듣는 남편목소리가 적성을 찾은 듯했다. 직접 목격한 남편의 일과는 이러했다. 갓 나온 막걸리를 트럭에 싣고 배달을 나간다. 시골길을 달리다가 갑자기 차를 세운다. 막걸리를 한병 집어 마개를 따서 벌꺽 벌컥 마신다. 주변 아무 집이나 거침없이 들어간다. 모두 들일을 나가, 활짝 열려있는 부엌에서 굵은소금을 찾아 한알을 입에 툭 털어 넣는다. 막걸리 안주는 왕소금이었다. 그런 남편이 유일하게 잘 먹는 것이 부추김치였다.
퇴근하고 왔는데 주방 싱크대 위에 뭔가 거대한 녹색이 보였다. 뿌리째 뽑혀 뻘흙이 묻어있는 부추였다. 마루와 주방바닥에 떨어져 있는 흙들이 이동경로를 설명해 주었다. 옷도 못 갈아입고 선채로 부추를 씻었다. 부추는 싱싱할 때 바로 씻지 않으면 금방 물러져 손에 붙어 잘 떨어지지 않는다. 산더미 같았던 부추는 김치를 담가놓으면 숨이 죽어 푹 가라앉는다. 며칠 지나지 않아 또 주방에 녹색덩어리가 놓여있다. 나를 골탕 먹이려고 부추를 심는 것 같았다. 흙이라도 씻어놓으라고 고함을 질렀다. 그 후부터는 나름 씻겨진 부추가 물방울을 흘리며 놓여있었다. 부추는 베어내도 금방 쑥쑥 자라는 식물임을 알게 되었다. 왜 저렇게 집착을 하고 먹는지, 동의보감에는 이런 효능이 적혀있다고 한다. 정력증진. 뭐, 그닥.
이번엔 파김치가 더 맛나다는 리뷰가 있다.
결혼하고 첫 번째 외식이 매운 회국수였다. 스테이크를 먹고 싶었던 나는, 번잡한 시내를 걸어가며 수프는 어떤 걸 먹을까 고민하고 있었다. 남편이 어느 식당으로 쓱 들어가길래 따라갔다. 매운 회국수로 유명한 집이었다. 탁자마다 주전자채 놓인 뜨거운 멸치육수가 있었고, 찌그러진 양푼에 담긴 매운 회국수가 나왔다. 서러움에 눈물이 났다. 매운걸 못 먹는 줄 뻔히 알면서. 남편은 만족한 표정으로 후루룩 쩝쩝 먹고 있었다. '이게 결혼생활이고, 저런 게 남편이면 이번생은 망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두 번째 외식은 돼지국밥이었다. 비위가 약한 나는 돼지고기 특유의 냄새에 앉아있기도 힘들었다. 돼지국밥에는 반찬으로 부추겉절이가 나온다. 소문난 집일수록 당장 밭으로 살아서 돌아갈 만큼 싱싱한 부추를 볼 수 있다. 남편은 뜨거운 국밥 뚝배기에 부추겉절이를 그릇째 털어 넣어서 먹는다. 몇 년을 같이 살다 보니 돼지국밥은 먹을 수 있게 되었다. 남편은 "우리 마누라가 돼지국밥을 한 그릇 다 먹었다"라고 동네방네 자랑을 하고 다녔다. 참,자랑이다.
혀가 마비되는 매운 회국수의 위용
88년 서울올림픽이 시작되자 남편은 거실 텔레비전을 떼다 베란다에 놓았다. 마당에 사람들을 모아놓고 올림픽응원전을 벌였다. 떠들썩한 환호가 연일 계속되었다. 집에 들어가기가 힘들었다. 나는 좀 새침해서 사람들과 쉽게 친해지는 사람이 아니었다. 마당에 모인, 처음 보는 남편의 지인들이 내가 '돼지국밥을 한 그릇 뚝딱하는' 거, '앙꼬빵을 중간 앙꼬 부분만 쏙 빼먹는' 거, '남편에게 지랄용천을 가라고 했다'는 것 등을 다 알고 있었다.
남편이 '친구가 일하러 가는데 같이 김천과 대천을 다녀와도 되냐'라고 했다. 어차피 갈 거면서 허락을 구하는 척하는 거다. "김천이고 대천이고 지랄용천을 해." 내 입장에서는 농담도 유머도 아닌 진심으로 하는 '욕'인데 남편은 그런 말을 농담으로 알아듣는 독특한 뇌구조를 가졌다. 혼자 좋아하면 다행인데 내 말을 토씨하나 안 빠뜨리고 사람들에게 광고하고 다닌 결과다.
이른 죽음이 주는 유일한 보상은 젊음이라고 했다. 동갑부부였던 우리는 시간이 흐를수록 나이차가 많아진다. 같이 살 때도 억울했는데 죽어서까지도 억울하게 만든다.
평생을 소년의 마음으로 살다 간 사람, 남편은 죽는 날까지 자신의 세계관을 굳건하게 지켜낸사람이다. 덕분이다. 당신과 같이 산 세월이 모두 우여곡절이라 그게 다 내게는 서사가 되었어. 만나서 참 좋았어, 당신. 다시는 보지 말자.
부추전도 맛났다. 오징어를 가늘게 채 썰어 넣고 짜지 않게 간을 해 올리브유로 구웠다. 초딩 외손녀도, 27개월인 외손주도 같이 먹을 수 있었다. 이번 남편 기제사엔 부추전을 올릴까 생각 중이다.
밀가루물을 되직한 농도로 만들어 부추를 넣고 소금으로 간을 한다. 청량초를 어슷하고 얇게 썰어 넣는다. 버무린 부추를 뜨겁게 달군 프라이팬에 올린다. 치익 소리가 나면서 부추가 겹치는 부분이 없게 골고루 잘 펴야 한다. 노릇하니 잘 익으면 뒤집는다. 이제부터다. 손바닥으로 뜨거운 부추전을 빈틈없이 꼭꼭 누른다. 종이장 같이 얇게 만드는 게 핵심이다. 부추전이 바싹, 노릇노릇 익으면 꺼낸다. 시골 할머니의 정구지(부추) 전은 이렇게 탄생된다. 밀가루만 넣은 부추전의 놀라운 맛에 깜짝 놀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