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뭐 먹고 싶어?" 주말에 모이면 딸들은 늘 묻는다. 딱히 먹고 싶은 게 없다. 외식을 안 좋아하기도 한다. 20년 전쯤 신사동에 가로수길을 대표하는 맛집 부첼라가 있었다. 안쪽 골목에 위치한 작은 가게였는데 직접 만든 치아바타의 말랑말랑한 담백함이 최고였다. 부드러운 치아바타에 신선한 야채와 네 가지의 다른 종류 치즈를 넣어 만든 '까뜨르세종샐러드'를 먹는 순간 앞으로 더 이상의 샐러드맛을 볼 수는 없을 거라는 느낌이 왔다. 네 가지 다른 맛의 치즈와 올리브가 넉넉하게 들어있어 끝까지 풍미를 잃지 않고 먹을 수 있었다.
까르뜨세종샐러드
매일유업에서 부첼라의 지분을 매입한다는 뉴스가 나왔다. 부산신세계 백화점에도 분점이 생겼다. 나는 친구들에게 "너희 먹어보면 놀랄 것이다" 큰소리치고 데려갔다. 막상 먹어보고 아무도 놀라지 않아서 더 놀랐다. "비싼 돈 주고 왜 이런 것을 먹는지 모르겠다"라고도 했다. 아무래도 중년의 아줌마들은 밥을 먹어야 하는 것 같았다. 신사동 부첼라가 없어졌다. 겨우 찾아낸 현대백화점 안의 부첼라에서 마지막 식사를 한 뒤로 더 이상 서울에서 부첼라를 만날 수 없었다. 대기업의 인수 후 재료를 아끼다 맛이 달라졌다는 소문도 있었는데 진위는 알 수가 없다. 지금도 부첼라로 검색하면 없어진 것을 아쉬워하는 글만 올라온다.
딸이 "엄마 부산밀면 먹으러 갈까?" 한다. 고향이 부산인 나는'부산밀면'이란 말에 맘이 동한다. "영업시간 잘 알아봐" " 브레이크타임이 2시 반이래" 딸은 네이버에서 캡처한 것을 내 폰에 보낸다. 주차장에 도착했는데 왠지 느낌이 썰렁하다. 가게문도 닫혀있다. 장사하는 집의 외관이 아니다. 간판에 적힌 번호로 전화를 했다. 지난 9월에 문 닫았단다. 코로나막바지에 더 이상 못 버티고 손을 든 모양이다. 신선하고 좋은 재료와 훌륭한 맛으로 언제나 웨이팅이 있던 가게였다. 꼭 재기하시기를 바란다.
점심시간은 한참 지나 모두 배가 고팠다. "엄마 '오*리' 먹으러 갈까?" 그때 생각이 났다. 얼마 전에 딸과 이야기하면서 지나가는 말로 '밀면'과 '오*리찌개'는 한 번씩 먹을만하다고 말했다. 시그니처메뉴가 '짜장면'과 '김치찌개' 다. 가족 모두가 찬성했다. 도착하니 역시 웨이팅이 길다. 와본 지 3년은 넘은 것 같다. 식당 안의 구조가 변하고 느낌도 달라졌다. 1층입구에 면을 뽑는 수타실 안이 보여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는데 없어졌다. 김치찌개는 2층에서 먹을 수 있었는데 아예 막아놓고 1층만 영업을 한다.
짜장면이 먼저 나왔다. 비주얼이 전과 다르다. 윤기 나는 탱탱한 면발에 굵은 감자와 커다란 양파덩어리가 입맛을 돋우던 예전의 모습과 다르다. 역시 맛도 달라졌다. 한참 있다 김치찌개가 나왔다. 예전에는 큼직큼직하게 썰은 쫀득한 육질의 고기에 새콤한 묵은지가 들어있는 국물이 맑은 찌개였는데 오늘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김치찌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