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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하 Apr 05. 2023

찬란하지 않아도 괜찮아.

학습만화도 괜찮아.

국민학교 3학년과 4학년은 담임선생님이 같은 분이셨다. 시험시간 전  담임선생님께서 친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만화방 가서 박하 좀 데려와 시험 치게"  반항적이거나 말썽을 피우는 아이는 아니었다. 등교하는 길에 만화방이 있고 만화를 보느라 시간이 흐른 것뿐이었다. 번번이. 중학교 입학시험 마지막 세대였다. 육 학년 때는 같은 반아이들 다섯 명이  담임선생님 댁에서 밤늦도록 과외를 했다. 과외는  밤 11시에 마쳤다. 그 시간에도 만화방은 문이 열려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나를 기다렸던 것 같다. 항상 나밖에 없었으니까. 하필 선생님댁과 우리 집 중간쯤 위치에 만화방이 있었다.


학교 마치고 만화방에 가 있으면 유리문틈사이로 눈을 대고 나를 찾는 스파이들의 소곤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만화에 집중하면서도 그 소리가 다 들렸다. 여동생이 명이나 있어서 억울했다. 저것들 아니면 엄마한테 혼나지 않을 텐데. 엄마는 막냇동생 기저귀를 내 눈앞에 보여주며 "니가 또 만화를 보면 엄마는 저걸로 목매달아 죽을 다"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안다. 아무리 혼을 내도 아이들은 게임을 한다. 아무리 막아도 학습만화가 줄글책보다 재미있다.


사 년 전 '말하기 독서법'의 존경하는 '김소영'작가님을 만나서 학습만화에 대해 물었다. "학습만화는 독서가 아닙니다. 엔터테인먼트영역이에요"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아이가 학습만화 '와이'만 볼 때였다. 그러다 깨달았다. 나는 학습만화도 아니고 순정만화만 팠는데도 문해력에 문제가 없었다. 친구들이 선생님 설명보다 내가 말하는 게 더 이해가 잘된다고 했다. 만화는 그림이지만  대사가 있다. 대사는 언어로 이루어져 있다. 수업도 빠지고 만화만 봤는데 국민학교 년 동안 남녀합반에서는 부반장. 여자반만 했을 땐 반장을 했다. 성적순이었다.  전교부회장도 했다. 회장은 남학생이 부회장은 여학생이 하던 시절이었다.  


나는 아직도 만화를 즐겨 본다. 삶에 영향력을 끼치는 웹툰도 있다. "찬란하지 않아도 괜찮아"는 몇 년 전 종결된 웹툰이다. 연극으로도 나온 것으로 안다.  


주인공은 '이찬란' 이름과 다른 삶을 살고 있다. 어린 시절 가난과 가정폭력, 학대, 억압의 환경에서 자랐다. 장점은 고통을 잘 참는다. 단점은 고통을 참기만 한다. 학과에서 별명은 L사 무표정과 냉철한 토론으로 모두를 얼어붙게 하니까. 대학생이 되었지만 알바로 하루하루를 힘겹게 버티는 중이다. 실수로 들어간 연극부동아리실에서 만난 부원들의 진심과 따뜻함에 서서히 스며든다. 자신도 누군가를 웃게 하고 위로가 될 수 있는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매회, 대사 하나하나가 마음에 와닿았다. 주제는 무거웠지만 상처가 치유되는 과정이 따뜻했다. 아이에게 보여줄 웹툰으로 다. 조금 더 있다가 단행본으로 보여줄 예정이다.


국민학교 졸업 후 사십 년여 만에 동기회가 열렸다. 꼭 참석해 달라는 개인적으로 연락하는 몇몇의 부탁으로 내키지 않았으나 나갔다. 남학생들이 많았고 여학생들이 몇 명 왔는데 내가 보고 싶고 궁금해서 참석했다고 했다. 그날 만남을 시작으로 동기밴드도 만들고 카페도 만들어졌다.


 만남에는 오지 않았던 학년때 우리 반의 반장이었던 남자애가 일대일을 걸었다. 의사가 되어있었다. 일 학년 때 찍은 내 사진을 간직하고 있다고 보여주었다. 담임선생님이 찍어주신 사진이었다.

이만하면 나는 '찬란한' 시절을 육십 년도 넘게 누리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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