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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하 Apr 10. 2023

김리안박사님은요.

다정도 병이련가

 작은딸이 지난주 목, 금요일. 이번주 목, 금요일 이틀씩만 아기를 봐달라고 했다. 태어나 28개월이 되는 동안 엄마와 떨어진 적이 한 번도 없는 아기다. 영리해서 말귀를 다 알아들을 뿐 아니라 언어발달이 특별한 아기다.  딸이 아기에게 며칠을 두고 이야기를 한 모양이다. '목요일과 금요일은 할머니랑 놀고 있으면 엄마가 일하고 오겠다'라고. 아기의 허락이 떨어졌다. 사위가 수요일에 데리러 왔다. 가서 보니 주머니 속에  '음식물쓰레기카드'가 들어있다. "언니야 너거 이제 음쓰 못 버린다. 엄마가 음쓰 카드 들고 우리 집에 왔다." 두 딸들은 엄마를 놀릴 일이 생겨 즐겁다.


목요일은 아기부모가 아침 열 시 반에 나갔다. 아침밥을 먹이고 엄마가 화장하는 옆에서 같이 화장도 톡톡했다. 아기는 어린이집 가서 카드 찍고 하이파이브만 하고 온다. 엄마랑 할머니랑손 잡고 어린이집 다녀와서  엄마가 나가니 아기 기분이 나쁘지 않다. 그런데 자꾸 밖으로 나가 자고 한다. 4월이 되어 겨울 동안 꺼졌던 분수가 나오는 것을 본 아기의 말이 "우와 얼마만의 분수야"였다. 분수를 사랑하는 아기는 한참 서서 분수를 지켜보더니 발걸음을 돌린다. 따라가니 상가건물을 돌아나가서 아파트 밖으로 나갔다. 비가 온 뒤 아파트바닥 도  도로도 온통 연분홍 꽃잎으로 뒤덮여 있다. 올려다보니 벌써 지고 있는 꽃잎들이 소리 없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언제 활짝 폈던가. 가장 아름다웠던 순간은 짧고 흔적 없이 지나가 버리는 것일까.


도로의 차를 구경하는 아기

차를 좋아해 도로를 바라보고 서있는 아기의 모습에 울컥해졌다. 자꾸 '가여워라 내 새끼'가 나온다. 막상 아기는 늠름하게 잘 있는데 할머니는 그것까지 애처롭고 엄마는 '아기 사진 제발 좀 달라'라고 분리불안을 호소한다. 딸은 아기의 밥과 국, 나물반찬, 고기를 꺼내 덥히거나 끓이면 바로 먹일 수 있게 줄지어놓고 간식도 종류대로 쌓아놓고 과일도 아기 먹기 좋게 썰어 통마다 담아놓았다. 메뉴를 선정하는 것은 아기 권한이라 물어보면 된다. "랴니 뭐 먹을 거야?" 초이스 하는 대로 대령하면 된다. 딱 한번 메뉴에 없던 만둣국을 주문해서 딸에게 sos를 보내니 육수 내놓은 거 있으니 냉동실만두 꺼내서 끓이면 된다고 해서 바로 해결되었다.


두 번째 외출이다. 길바닥에 담배꽁초가 눈에 띈다. 담배꽁초를 처음 본 아기는 신기하다. 찾다 보니 여기저기 담배꽁초가 많이 보인다. 아파트와 멀어질수록 담배가 많아지고 아파트로 들어설수록 보이지 않는다. 집에 들어가기 전 급하게 하나 피우고 발로 비벼 끄고 들어가는 걸까? 모양이 온전한 담배보다는 바닥에 문질러 찌그러진 모양이 많다. 직장인들의 고달픔을 담배꽁초가 말해주는 것 같다. 문방구 앞에 세워진 장난감 자판기도 한참 만져보고 문방구 들어가 레드빠방이도 하나 사서 들어왔다. 이제 낮잠시간이다.

신발을 좋아하는 아기는 나갈 때마다 신발도 바꾸어 신는다.

12시에서 1시 사이에 낮잠을 자는 아기가 잠이 들지 않는다. 침대에 누웠다 일어나기를 되풀이한다. 할 수 없이 거실에 이불을 펴고 누워서 뒹굴뒹굴 놀았다. 놀다 지쳐 잠이든 아기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평온하다. 평소 낮잠시간이 3시간쯤 되는 아기가 1시간 만에 눈을 뜬다. 모든 상황을 다 이해한다는 듯 엄마를 찾지도 말하지도 않는다. 심지어 엄마의 영상전화도 잠시 이야기하다 끊어버린다. 딸 둘이 성인이 되고 결심했다. '아이는 강하게 키워야지'. 내 아이들이 불편하지 않게 행복한 환경을 만들려고 노력하고 살았다. 행복은 마음에 좋지만 그 마음을 키우는 건 슬픔이라던지, 부족함이라는 것을 알기 전이었다. 강하게 키우자 마음은 먹었으나 타고난 기질은 바뀌지 않음을 느낀다. 다정도 병이련가,  태연히 잘 노는 아기가 어째서 가여워 눈물이 날 일인가.


엄마가 오자 아기는 오늘일을 고하느라 바쁘다. "바콰한머니가 만둣국을 끓여줘서 리안이 가 다 먹었어." "부유베리는 바콰한머니가 다 뺏아먹었어." "바콰한머니가 손톱으로 이렇게 긁었어"하며 손톱으로 복숭아뼈 부분을 긁는 시늉을 한다. "바콰한머니가 담배꼰초피우고 아저씨가 담배 피웠어." 저렇게 말을 잘하고 다 일러바치니 내일은 블루베리도 안 뺏아먹고 복숭아뼈를 긁지도 말고 담배꽁초도 멀리해야겠다 결심했다.


"요고 한머니 다 머거" 하는데 차마 못 먹음. 또 다 뺏아먹었다고 덮어씌울라고.


둘째 날 어렵게 낮잠을 청한 아기는 1시간 반을 자고 울면서 깼다. 그동안 참았던 설움이 폭발한 듯 꺼이꺼이 목놓아 울었다. 엄마가 도망가지 않았음을 알리기 위해 영상통화를 했다. 엄마를 본 아기는 더 심하게 울었다. 아기와 엄마와 할머니가 함께 뚝뚝 눈물을 흘리며 우는 장면이 딸의 폰에 캡처가 되어 단톡방에 회자되었다. 우는 아기를 달래어 담배꽁초를 찾으러 밖으로 나갔다. 한번 본거, 한번 들은 거, 다 기억해 반드시 다시 말하고 흉내 내는 아기는 나가고 들어올 때 가족이 신을 신발, 입을 옷, 안경까지 지정해 주고 지켜보다가 시키는 대로 안 하면 "오노우" 분노한다.  


이번주도 수요일에 가서 목, 금요일 아기와 둘만의 시간을 보내야 한다. 딸이 아기에게 계속 읍소를 하고는 있는데 아직 허락을 못 받은 것 같다. "목요일, 금요일 할머니랑 놀고 있으면 엄마가 일하고 올게"  "안돼 엄마 나가면 랴니 울 거야" 말은 그렇게 하면서 내가 입었던 파자마를 옷걸이에 못 걸게 한다. 놓아두었던 국민대문위에 고대로 두라고 한다. 오늘 아침에는 '바콰한머니가 왜케 빨리 안 오'냐고 짜증도 냈다.


2020년 12월이 한 일중 가장 장한 일은 이 작은생명을 태어나게 한 일이다. 이 작고 소중한 아기는 행복하지 않기가 정말 어렵다.  아기를 향한 모든 눈길에 사랑만이 가득하다.  허락한다면 아기가 처음으로 하는 모든 것을 보고, 듣고, 지켜보고 싶다. 사랑해 아가 태어나주어서 고마워 언제나 너를 축복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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