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아이가 4학년이라 4학년 교과서로 완전학습을 해본 적이 있다. 국어, 수학, 사회, 과학 네 과목이었다. 내가 생각하는 교과서중의 베스트는 단연 국어다. 공부하면서 감탄이 나왔다. 우리 아이들의 정서지능개발 교재로써 최고였다. 아이들이 어디에서 이런 양질의 배려와 소통의 언어를 배우겠는가. 지난 수요일 아이의 학급에서 공개수업이 있었다. 반아이들의 활동을 지켜보면서 작년 완전학습을 하면서 국어교과서를 만났을 때의 감동이 되살아난 좋은 시간이었다.
아이의 담임선생님은 참 좋으신 분이다. 어떤 사건이나 특별한 일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느낌이 그랬다. 아이의 지나가는 말 한마디나 알림장의 작은 흔적으로도 유추할 수 있었다. 해마다 학년초에 아이에게 꼭 말해준다. 우리 리나는 담임복이 있어서 학년마다 좋은 선생님을 만난다고. 아이는 전화번호가 공개된 선생님과는 소통을 하고 지낸다. 유치원선생님과는 만나서 스케이트도 같이 타는 사이다. 스승의 날에는 꽃 한 송이지만 지난 담임선생님께도 꼭 갖다 드리고 인사를 한다.
오 학년인 아이의 반은 전체 인원이 27명이다. 과밀까지는 아니지만 꽤 많은 인원이다. 공개수업에 참관하는 학부모수가 학급아이의 숫자를 넘어선걸 보니 양부모가 오신 집도 꽤 되는 것 같다. 딸이 가니까 나는 빠지려고 했는데 아이가 할머니 꼭 와야 된다고 해서 우리도 두 명을 보탰다.
학급아이들이 모둠별로 나누어 활동을 했는데 전체 여섯 모둠이었다. 각각의 모둠에 리더를 정해 리더가 이야기를 만들고 이야기에 맞추어 모둠원들이 배역을 정해 앞에 나와 연기를 한다. 모둠의 활동이 끝나면 연기자들이 현재 어떤 감정인지를 다른 모둠원들이 알아맞히는 것이 공개수업의 내용이었다. 선생님께서는 A4용지에 흰색깔의 포스트잇과 핑크색의 포스트잇을 붙여 나누어 주셨다. 나쁜 감정이라고 생각되면 핑크색에 감정의 이름을 적고 좋은 감정이라고 생각되면 하얀색에 적으라고 하셨다. A4용지에는 선생님께서 미리 몇 가지의 감정이름을 적어두셨다. 미안함, 두려움, 기쁨, 즐거움, 분노 등의 대표적으로 많이 쓰이는 감정이름이었다.
모둠마다 다른 상황을 꾸며서 연기를 했고 학급아이들은 각 모둠원들의 감정을 알아차려서 종이에 적었다. 아이는 5모둠의 리더였다. 5모둠차례가 되자 앞으로 나와 역할에서 맡은 자기소개를 한 아이들이 연기를 시작했다. 놀이터에서 놀던 아이들 중에 한 아이가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겠다면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내가 우유를 먹는데 갑자기 동생이 문을 벌컥 열어서 우유가 코로 나왔어" 하고 이야기하자 리더인 아이가 "아 내 생전에 이렇게 유쾌한 이야기를 처음 들어봐" 하고 말했다. 부모님과 아이들에게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선생님께서 다른 모둠원들에게 "지금 5모둠의 감정은 어떤 걸까요?" 물었다. "즐거움"이라고 대답이 나왔다. 다시 5모둠원에게 선생님이 "무슨 감정이 정답인가요?" 물었다. 5모둠원들이 "즐거움"이라고 입을 모아 대답했다. 아이들은 느낀 감정을 포스트잇에 적었다. 많이 쓰이는 감정언어 말고 다르게 감정을 적은 아이들에게는 선생님께서 따로 질문을 하셨다. 어휘력이 뛰어난 아이들이었다.
모둠원들의 역할놀이가 끝나고 선생님께서 여태까지 적은 종이를 가지고 앞으로 나와, 좋은 감정은 왼쪽에 나쁜 감정은 오른쪽 칠판에 붙이라고 하셨다. 고학년인 아이들은 질서 있게 종이를 붙이고 다시 제자리에 앉았다. 정작, 이때부터가 공개수업의 백미였다. 선생님께서 질문을 하셨다. "집에 불이 났어요. 불이 나면 우리가 느끼는 것은 좋은 감정일까요? 나쁜 감정일까요?" "나쁜 감정이요" "그런데 불이 난 것에 아무 감정이 없어서 피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물었다. 당연히 "피해를 입고 다치거나 죽어요"라는 답이 나왔다. "그러면 나쁜 감정은 우리 에게 필요한 감정일까요? 필요 없는 감정일까요?" "필요한 감정이요" 이제 아이들은 감정에는 나쁜 감정 좋은 감정이 따로 없이 다 소중하고 필요한 감정이라는 것을 알았다. 나도 알게 되었다. 선생님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