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음은 위험하지 않다.
지난주부터 아팠던 아이의 다리가 좀체 낫지를 않는다. 일상생활은 문제가 없는데 운동할 때 때때로 통증이 있다고 한다. 병원에 갔더니 염증이 남아있다고 약을 처방해 준다. 처음 갔을 때는 염증 이야기를 한 적이 없다. 다음 예약진료 때는 의사 선생님이 예정에 없던 일로 자리를 비우셨다고 했다. 이번엔 염증이다. 믿고 있어도 되나 하는 의구심이 생긴다. 현대의학의 발전에 무한찬사를 보내나 코로나시대를 거치면서 의심도 무한히 증폭이 된 것은 사실이다.
병원 1층 약국을 가니 문 앞까지 사람들이 줄을 서있다. 아픈 사람들로 문전성시다. 병원과 약국을 가면 늘 드는 생각이다. '아픈 사람이 이렇게 많은가.' 아이가 한 발 먼저 성큼 걸어가 위쪽 약국으로 향한다. "우리리나가 현명하네" 아이를 따라갔다. 확실히 사람이 적다. 이약국은 약사님이 나이가 많다. 보기에 꽤 연세가 드신 할아버지와 할머니약사분이신데 오늘은 남자약사분이 한 분 더 계신다. 세분이 비슷한 연배로 보인다. 손님이 서너 명이 앉아있었고 우리도 처방전을 냈다. 여자약사님과 새로 오신 남자약사님은 조제실로 들어가시고 카운터에는 원래계시던 남자약사가 계신다.
"46.900원입니다." 내 앞의 손님이 약값을 카드로 결제했다. 결제내역을 한참 들여다보던 손님이 말했다. "약사님 46.900원인데 49.600원으로 끊겼어요." 순간 약사님이 주춤하는 게 눈에 보인다. "차액이 이천칠백 원입니다." 손님이 다시 알려주신다. 다른 남자약사님이 "카드 취소하고 다시 끊어"라고 말하셨다. "아니 다 바쁜데 뭘" 하시더니 지폐와 동전을 주섬주섬 챙기신다. 지폐와 동전으로 2.700원을 받고 말없이 돌아서는 남자손님의 얼굴이 선량하다.
손님이 몇 명 없었는데 좀처럼 아이의 약이 나오지 않는다. 다음 행선지까지 갈 시간이 촉박하다. "김리나 약이 아직 멀었어요?" 카운터약사님이 "아 지금 나옵니다." 친절하게 대답해 주신다. 괜히 물었나, 미안하다. 조제실 안에서는 뭔가 분주해 보이는데 약이 쉽게 나오지는 않는다. "아이 학원시간이 늦어서요." 내 말에 카운터약사님이 "아이고 죄송합니다." 하신다. 약이 나왔다. 미리 이름과약명을 인쇄해 일렬로 세워놓은 약봉투를 한참 찾으신다. 약을 건네주시며 다시 한번 '늦어서 미안하다'는 인사를 하신다.
네이버에 이웃소식이라는 글이 한 번씩 뜬다. 내 위치를 기반해서 뜨는 글인 것 같다. '시니어바리스타'가 있는 커피숍에 다녀온 글이다. '조금 느리고 메뉴도 바뀌어 나왔지만 정감 있고 좋았다'는 내용이었다.
나라면 어땠을까? 초과결제한 카드를 두고 현금을 받았을때 어떤말을 했을까? 늦은 일처리로 오래 기다려서 약속에 늦어진다면 또 이 약국을 올 수가 있을까? 주문한 것과 다른 커피가 나온 것을 정감있다고, 기분 좋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몸이 늙어서 동작이 느려지고 첨단기계에 낯설고 눈이 어두워지는 것은 자연스럽다. 허나 선처나 이해를 바라야 할 일은 아니다. 인정하고 고치고 바꾸어야 할 것이다. 늙어가는 것은 위험한 일이 아니다.
나도 할머니이고 이미 젊다고 할 수 없는 용모와 하루하루 노화가 체감되는 몸을 가지고 살고 있다. 자고 나면 새 몸이던 시절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나의 뇌를 작동시키는 소프트웨어는 건재하다는 믿음을 가진다. 믿는 구석이 다른데 있지 않다. 시대를 관통하는 것은 언어다. 나는, 최고 수준의 민감한 언어를 구사하는, 작가들의 지식과 지혜를, 글에서 취하기 때문이다. 언어는 변하고 흐른다. 이들은 낡은 언어를 더 이상 쓰지 않는다. 나의 뇌 속에도 낡은 것이 없다.. 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