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하 Apr 17. 2023

천사를 만났다.

우리 집안의 천사이야기

우리 형제는 삼남사녀이다. 귀여운 막내가 오십 대이니, 이제 모두 노년의 삶을 살고 있다. 나이 들어가는 형제들이 만나면 여러 가지 일들이 생긴다. 최근에는 작은오빠의 둘째 아들 결혼식이 있었다. 결혼식장에서 만나면 밥만 먹고 헤어져야 하니까, 전날 온천호텔에서 하루 숙박하기로 했다. 네 명의 시누이들은 올케에게 힘들게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우리끼리 맛난 거 사 먹고 알아서 놀다가 자고 결혼식장에서 보자고 말했다.


나보다 두 살 어린 올케는 시누이 말을 잘 안 듣는 스타일이다. 모여서 재미있게 놀라고 제일 넓은 방을 예약해 놓고  잔치 음식을 바리바리 싸 보냈다. 분명히 아무것도 보내지 말라고 강경하게 이야기한 시누이들은 솜씨 좋은 시어머니께 물려받은 올케의 수육과 회무침, 전, 나물과 찰밥등 잔치음식을 보는 순간 말이 없어지고 동작은 빨라졌다. 모두 젓가락을 챙겨 정좌했다.


늦게 도착한 큰올케가 방에 들어서면서 막내여동생의 미혼인 큰딸을 보자마자 격하게 끌어안는다. '얼마 전 결혼식에 못 가서 미안하다 늦게나마 축하한다'라고 인사를 했다. 여동생의 작은딸이 언니보다 먼저 결혼을 했고 큰올케가 일이 생겨 참석을 못했다. "올케 그 입 다물라." "엄마야, 얘가 아니가?" 눈치 빠른 큰 올케가 바로 알아차리고 안았던 손을 놓았다.


아들, 딸을 결혼시키고 사돈이 생긴 형제들이 사돈 이야기를 꺼냈다. 모두들 한 마디씩 보탰다. 듣고 있던 내 바로 아래 여동생이 "나는 사돈들이 다 돌아가셔서"라고 말을 해놓고는 "아이고 내가 미친나. 우리 아들딸은 아무도 시집장가도 안 갔는데" 라며 웃음이 터졌다. 의의제기 없이 경청하고 있었던 우리도 같이 웃었다.


결혼식은 평화롭고 좋았다. 조카부부가 부모님께 드리는 영상에 우리 엄마아버지의 모습도 나왔다. 올케교회목사님도 오셔서 감사기도를 해주셨다. 오빠의 혼주사는 들어본  중 최고였다. 우리 집안의 살아있는 천사인 올케는 여전히 아름답고 품위 있었다.


장남을 유독 귀하게 여긴 엄마는 큰오빠를 고등학교부터 서울로 유학을 보냈다. 큰오빠가 결혼할 때 영화배우 같은 올케는 하객들 찬사를 받았다. 나이 드시니 엄마는 큰오빠와 살기를 원했다. 합가하고 육 개월이 지났을까. 작은오빠내외와 만난 엄마는 살이 쏙 빠진 모습이었다. 그날로 작은오빠와 올케가 부모님을 모시겠다고 했다. 우리 오빠는 신혼 때 시댁에 다니러 와서 '엄마 도와주고 오라'고 어린 새신부를 혼자 남겨두고 가버린 경상도남자다.


 엄마는 작은 올케와 살기 시작하면서 평생 당신의 종교였던 불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했다. 올케를 따라 교회에 열심히 나갔다. 나중 엄마아버지 돌아가시고 정말 위로가 되었던 게 입관 때 덮여 있던 '십자가관보'였다. '집사 000'라고 적힌 부모님의 성함을 보니 '우리 엄마아버지가 하늘나라에 소속이 확실히 있구나' 하는 생각에 감사의 눈물이 끝없이 쏟아졌다.


우리는 올케집에 가면 교회를 따라간다. 부모님 장례예배를 집전하신 목사님이 계신 교회다. 예배에 참석하고 목사님께 인사도 드리고 온다. 결혼 후 오시간 올케는 혼자서 교회를 다녔다. 그러다 부모님을 모시게 되고 부모님과 함께 다녔다. 두 분 다 돌아가시고 나서야 비로소 오빠도 교회에 나갔다. 성실한 오빠는 막상 다니기 시작하자 누구보다  열심히 종교생활을 했다. 이제 오빠는 교회장로님이시다. 시누이 두 명은 올케를 만나러 갈 때엔 묵주반지를 뺀다. 올케는 말이 없지만 우리가 미안해서다. 올케랑 종교를 맞추지 못해서.


고혈압이 있던 엄마에게 당뇨합병이 왔다. 노년은 늘 아팠다.  엄마의 그 시간을 옆에서 지킨 사람 우리 올케다. 엄마는 강하고 똑똑한 사람이다. 칠 형제의 생일과 기념일을 기억하고 손주손녀의 생일까지 챙겼다. 어린이날도 빠뜨리지 않으셨다. 아침에 일어나면 씻고 머리 빗고 화장하셨다. 집안에서도 항상 단정한 차림이셨다. 며느리에게 편한 시어머니는 아니었다. 외출할 때는 딸들이 내민 손을 마다했다. 올케손이 편안하다고 하셨다.  우리 올케는 현명하고 따뜻하고 , 하면서도 기품 있는 아름다운 사람이다.


아버지 돌아가시고 이 년 뒤 엄마 돌아가시고 올케는 부모님 방을 고대로 썼다. 형제들 모임도 꼭 자신의 집에서 모이도록 했다. 우리는 여전히 엄마방에서 엄마 냄새를 맡다가 오곤 했다. 몇 년이 지나서야 올케가 집을 리모델링했다. 새로 바뀐 집에서도 올케는 여전히 엄마가 쓰던 그릇, 찻잔, 접시를 쓴다. 본인의 사유와 성찰이 사람이나 상황에 흔들리지 않는 특별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올케의 친정아버님을 돌아가시기 전에 만나 뵌 적이 있다. 올케의 성품이 아버님께 물려받았음을 보는 순간 알 수 있었다. 세상에, 임종을 기다리시는 분의 표정과 말씀이 어떻게 그렇게 온화하고 평화로울 수 있는지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잊지 못한다.

 

우리 칠 형제에게 큰오빠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큰 충격이었다. 심장질환이 있던 오빠는 운전 중 사망했다. 큰오빠 죽음 후 엄마는 많이 아팠다. 오빠의  첫 기일날  형제들이 모여서 큰오빠집으로 가고 있었다. 오빠집 거의 다 가서 엄마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았다. 작은올케는 큰오빠기일에 참석하느라 와 있었고 작은오빠가 혼자 엄마임종을 지켰다. 우리 엄마는 그렇게 사랑하던 큰 아들과 같은 날 제사상을 받고 계신다.


부모님 추모기념일이 다가오면 작은오빠는 추모사와 기도. 그리고 형제수대로 악보를 준비한다. 그동안 몇 가지 노래를 해보았지만 최고는 '사랑은 언제나 오래 참고'이다. 특별히 노래를 잘하는 형제와 부부가 있어, 우리가 부르지만 하모니가 정말 아름답다.


작년에는 오빠 농장 부근 펜션에서 모였. 농장의 농작물을 다 꾸러미로 만들어 집집마다 차에 그득 싣고 왔다. 코로나 이후  우리 형제와  조카들어린 아기까지 모여서 참으로 좋았다. 불멍시간에 나눈 대화정말 힐링이 되었다.  아이들도 그 시간이 좋았던지 앞으로는 자신들이 모임을 주도하겠다고 한다.


애니웨이, 불감청고소원이다.



작가의 이전글 늙는 것이지 낡은 것은 아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