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경아엄마가 치매래
어떻게 알게 된 건데?
길을 못 찾고 자꾸 한말을 반복해서 검사해본거래. 엄마도 한말 자꾸 또 하잖아. 잔. 소. 리
헐 나는 요즘 글을 쓰니까 정신이 맑아져서 니가 애 먹인 게 똑똑히 기억이 나거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엄마 나야 나!!! 민쟐 아니고 나라고
그래 너!!! 니가 한 짓이 똑똑히 기억난다고.
큰딸이 문자로 친구엄마의 '치매'를 알려왔다. 행동과 말이 이상해서 검사를 받게 했는데 '치매'초기판정이 났다고 한다. 약물 치료하면 더 이상 진행은 안된다고 했다. 평소 종교활동이나 친목활동을 열심히 하시는 분이라 놀랐다. 노년에 몸이 아프면 마음마저 피폐 해질 텐데 옆에 있는 자식은 또 어쩌나. 마음이 아프다.
몇 년 전 '동생의 남편'이 나 몰래 우리 딸들을 살짝 불러서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잘 지켜봐야 한데이. 너거 엄마가 자꾸 가스불 끄는 거 잊어버리고 다닌다. '치매' 아닌지 모르겠다." 그 후 나한테 웃으면 말하기 전까지 아이들이 꽤나 긴장해서 나를 살폈던 거 같다. '제부'로 말하자면 내가 주방에서 밥을 하다가 '땡초(청량초) 좀 사 오라'라고 시켰는데 어쩐지 싱글벙글하면서 나가더니 자신의 최애 아이스크림인 "엔초"를 사온분이시다. 그런 주제에 나를 '치매'로 의심하다니 어이가 없지 않은가.
아무도 아버지가 치매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워낙 말수가 없고 조용하셔서 가족 아무도 모르고 있다가 돌아가셨다. 요즘 들어 딸들이 만나면 이야기한다. "우리 아버지 그때 치매검사하고 치료받았으면 어땠을까" "우리 아버지는 치매가 아니고 바보라서 그랬던 거 아닐까?" '카이스트'교수진이 인정하고 추천하여 '연세대학'과 '고려대학'에서 강의를 하신 아버지를 딸과 아들은 '바보'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아버지에겐 이런 일화들이 있다.
부모님은 작은오빠가 모시고 살았는데 한 번은 오빠부부가 외출에서 돌아오니까 거실에 계시던 아버지가 엄마에게 뛰어가서 "인사해요. 이 집주인이 오셨어요." 하셨다. 아버지만의 조크였을까? 치매였을까? 원래 아버지는 우리에게도, 손주손녀에게도 존댓말을 하셨던 분이다. 그 뒤로는 별다른 일이 없었기에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았다.
부산의 우리 집에 오셨을 때, 아버지는 모두 한잠이 든 새벽에 일어나 조용히 거실로 나가셨다. 책이.. 책이.. 없다. 다행히 손에 집히는 엄청나게 두꺼운 책을 꺼내서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줄도 치고 메모도 하셨다. 아침에 일어난 우리는 아버지가 들고 계시는 '전화번호부'에 빨간색연필로 밑줄도 그어져 있고 메모도 남겨있는 것을 보았다.
그날은 아마 형제들이 모여 차가 여러 대 움직였을 것이다. 내 차에 아버지만 모시고 가는 길이었다. 돌아나가는 길에 무슨 위반인지 교통경찰에게 걸렸다. '아버지 모시고 가는 길이라 안내판에 부주의했다'라고 한 번만 봐달라고 사정했다. 가만히 숨소리도 내지 않고 계시던 아버지가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어 교통경찰분께 드렸다. 경찰이 가라고 했다. 출발하면서 아버지께 "아버지 경찰관께 뭐 보여드렸어요?" 아버지는 내게도 그것을 보여주셨다. '과학기술원' 출입증이었다. 치매였을까? 패스하고 싶다는 조크였을까?
동생집에 가셨을 때는 당시 중학생이었던 외손주의 '영어교과서'를 갖고 싶어 손에서 놓지 못하고 만지작 거리셨다. 동생이 '아버지 다른 것은 다 드려도 아이 교과서라서 못 드려요'라고 했다. 그때 아버지는 진짜 심하게 삐졌다. 우리 아버지 돌아가셨을 때 늘 당신 옆에 두셨던 독일어책 한 권. 일본어책 한 권. 영어책 한 권을 같이 넣어드렸다.
이래 봬도 우리 아버지는 젊어 한때 큰 기업을 운영하신 분이다. 어느 여름 바닷가에서 회사 야유회가 열렸다. 사원들의 노래자랑 시간이었다. '사장님 노래한곡 하시라'라고 모두가 외쳤다. 아버지는 '벙어리노래'를 하겠다고 하셨다. 입만 벙긋벙긋. 노래제목은 비밀이다. 영원히.
아버지는 우리 딸들에게 "이 작은 사람아" 하고 불렀다. 그 뒷말은 없었다. '아마 아이들 이름을 몰랐을 것'이라는 형제들의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