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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하 Dec 14. 2022

사위 지금 나한테 법규 한 건가?

욕 때문에 인지도를 얻은 운 좋은 한자

2년 사이 딸 둘을 결혼시켰다. 지금 생각해도 꿈만 같다. 사업을 하던 남편이 심장마비로 갑자기 죽었다. 우리는 동갑내기 부부였다. 당신, 죽을 만큼 힘이 들었구나. 다시 만날 수 있다면 고생했다고 그때 못 알아줘서 미안하다고  전하고 싶다. 딱 한 번만.  남편이 하던 사업을 정리하면서 법적 분쟁에 휘말렸다. 남편은 임대해서 제조업을 하던 땅이 국유지에 귀속되자 국가에 세를 내면서 공장을 허물고 가건물을 5채 지어 재임대를 했다.


남편이 죽자 임대인들이 세를 주지 않았다. 대화를 해보고 화도 내었으나 5명의 임대인들은 더욱 단합을 하였다. 미혼인 딸 둘은 공부하느라 서울에 있었고 혼자 지방이었다. 주변에 도와줄이가 아무도 없었다. 남편 친구들은 가끔씩 들렀고  시집식구 친정식구 도 마찬가지였다. 돕겠다고 누군가 한번 말을 보탤 때마다 사태는 더 악화되었고 작정한 임대인들의 행패는 오롯이 내 몫이었다.


 민사소송을 시작했다. 피고는 모두 변호사를 선임해 변호사 5명과의 싸움이었다.  낯선 법률용어를  공부하고 법무사에게 자문을 구해가며 소송을 진행하였다. 민사소송은 해를 넘기고도 끝이 나지 않았다. 피고인들은 그 땅이 처음부터 자기들이 임대한 것이어서 내게 임대료를 줄 이유가 없다고 우기기 시작했다. 애간장이 탔다. 입증하는 모든 서류가 완벽히 있고 증인도 있는데 변호사들이 이상한 논리로 주장을 펼치면 판사님은 변호사의 말만 듣는 것 같았다. 변호사 5명의 일정에 따라 재판 날짜도 자꾸 미루어졌다.

                                                                                                                       출처:나무 위키


그 와중에 큰딸의 결혼 말이 나왔다.  결혼이 3월이었는데 그해 설을 내가 서울에 가서 보냈다. 딸들과 아빠 차례는 모셔야 하니까.  지금은 사위가 된 두 명이 인사하러 왔다. 그 집을 계약할 때 인상 좋은 노부부께서  "이방이 좋은 인연을 만들어 주는 방이라 여기 살면 결혼해요" 웃으며 말했다. 결혼 말도 없었고 그럴 여유가 없었기에 웃어넘겼는데  설날 모인 딸 둘과 남자 친구 둘이 차례음식을 어찌나 맛나게 잘 먹는지 세상에, 우리 딸들이 그렇게 잘 먹는 것을  처음 보았다. 밤중까지 너무 많이 먹어 소화제로 식혜를 자꾸 먹였다. 설 쇠고 바로 결혼 말이 나왔다.


 소송은 진행 중이고 돈도 없었고 모든 상황이 막연했다.  지병을 앓던  엄마가 돌아가시고 장례를 치렀다. 오빠가 장례식 끝나고 내 앞으로 들어온 조의금을 챙겨서 주었다. 400만 원이었다.  펑펑 울면서 현금 고대로 사돈댁에 보냈다. 신랑댁에서 보낸 예단비의 얼마를 되돌려 보내는 것이 신부집의 예의였다.  뒤에 그 이야기를 들은 친구는 나를 나무랐다. 삼백을 주던지 더 보태서 오백을 드려야지 죽을 사데 400만 원이 뭐냐고. 우리 엄마가 준 돈 한 푼도 손대고 싶지 않았다. 다음날 법원에 제출할 서류 인지대가 없었지만. 감사하게도

양쪽 사돈분들이  여유 있고 인품이 훌륭하신 분들이라 상견례와 결혼식을 우리 형편에 맞추어 준비하고 순조롭게 치렀다. 내 딸들은 아름답고 기품 있는 신부였다. 사위 둘 다  좋은 가정에서 잘 자라 선하고 언행이 반듯했다. 귀한 내 사위들. 물색없이 사람 좋은 장인이 있었으면 얼마나 사랑을 받았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 가슴이 시리고 가엾다. 사위들에게 장인 제사를 모시게 하는 장모라서 얼마나 미안한 마음인지 니들은 모르겠지.

 

 일단, 그건 그거고.



꽃같은 그대

나무같은 나를 믿고 길을 나서자.


그대는 꽃이라서 10년이면 열번은 변하겠지만

나는 나무같아서 그 10년,  

내속에 둥근 나이테로만 남기고 말겠다.


타는 가슴이야 내가 알아서 할테니,

길가는 동안 내가 지치지 않게

그대의 꽃향기 잃지 않으면 고맙겠다.        

                               이수동/동행  

                                                                                                   이수동작가/사랑으로 크는 나무


사위 둘에게 위 시를 보냈다. 내 딸들은 50년이 지나도 꽃향기를 잃지 않으면 좋겠다는 장모의 바람을 담아. 사위들은 나이테 잘 챙겨서 나무 역할을 충실히 하라는 무언의 협박이었다.  같이 사는 큰 나무는 문자 보낼 일이 없지만 작은 나무는 안부 문자를 자주 보낸다. 그리고 내게 그것을 보냈다. 식사하셨느냐고 묻는 인사 뒤에 붙어서 온 이모티콘으로 가장한 그것은 분명 손가락 욕이었다. 장난기가 많아 평소에도 장모를 놀리는 것을 업으로 삼는 작은 나무이긴 하나 이것은 그.. 그냥은 넘어갈 수 없는 일이지 않은가.  


어머니 식사하셨나요? (-.-")ㅗ

 00은 무한도전보다 잠들었습니다. 맛난 식사 하세요 (^0^)/

사위 지금 나한테 법규 한 건가?

엥 어떤 거요?__


                                                                                          출처: 나무 위키


 사위는  펄쩍 뛰었다.  '그냥 제 폰에 있는 이모티를 쓴 것뿐'이라고 했다. '니 폰에 어떤 이모티가 우리한테는 법규로 보이냐' '도대체 너한테는 그게 뭐로 보이냐'는 딸들과 나의 공격에도 시종일관 자신을 모르는 일이라고 천연덕스럽게  잡아뗐다. 우리에게 오래오래 회자될 재미있는 이야깃거리가 생겼다.


말수가 없는 큰 나무는 발밑에 옷이 밟히면 그냥 밟고 지나간다. "옷 올려놓아줘" 부탁하면 말없이 치운다.

같이 살면서 마트 된장 안 먹이고 싶어 장을 담갔다.  장을 가르고 간장을 달이던 날 좁은 아파트 안에 간장 냄새가 진동을 했다. 퇴근하고 돌아온 딸과 사위는 밤새 들락날락 선풍기를 틀고 잠을 설쳤다. 된장이 잘 익어 맛난 된장 꼭 나눠달라는 이웃이 있어 비닐에 된장을 퍼담아 두었는데 없어졌다. 온 집을 뒤져도 찾을 수가 없다.  알고 보니 큰 나무가 쓰레기로 버렸다.  아니, 그게 왜 쓰레기로 보이냐고. 쓰레기는 안 버리고 그걸 왜 버리노.  딸들은 아파트에서 장담 궈 냄새나서 잠도 못 자게  한 장모에게 복수한 것이라고 두고두고 깔깔대며 웃는다. 다행히 요즘은 숙성시키는 과정을 다 거쳐 가루로 담그는 장이 나와주어 여전히 장을 담가먹는다. 달래된장찌개는 큰 사위가 제일 잘 먹는다.


며칠 전 작은사위가 눈이 영 침침하다며 안과를 간다고 했다. 안경을 맞추어 쓰고 나타난 모습이 어색하지 않고 잘 어울린다. 그래 그때도 눈이 그랬구나. 그래서 그랬구나. 걱정되면서도 아쉬움이 살짝 남는 마음이다.

이제 그만 놀려야 하나.  


재판은 5건 중 1건은 일부승소이고 4건은 승소했다. 변호사 말만 듣는 것 같던 판사님이 말씀하셨다. "원고에게 가장 도움이 되는 공무원 한 명 증인으로 세우세요."  그래 판사님은 역시 나의 진정성을 다 알고 계셨던 거야.  사업장은 다 정리되었다.


이제 내게 주어진 미션은 외손녀 잘 키우기다. 

나는 딸 둘을 혼자 시집보낸 엄마고, 남편이 남겨둔 다섯 건의 재판을 기어이 혼자 힘으로 승소해낸 아내다. 외손녀 잘 키우기 이제 시작이다.


                                                                                          출처: 픽사 베이 / faery godmot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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