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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하 Dec 22. 2022

여자는 왜 하이힐을 신는가.

좋은 신발이 좋은 곳으로 데려다준다.

여자는 왜 하이힐을 신는가?
여자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


그럴 이유가 사라져서일까.  하이힐을 안 신은 지 십 년이 훌쩍 넘었다.   하이힐은 여자의 각선미를 돋보이게 하고 애플힙을 만들어 주는 대신 무게중심을 불안정하게 만들어 척추건강을 해치고 위장장애가 생길 가능성도 70%가 높아진다고 한다. 덤으로 발의 기형을 얹어 주기도 한다. 그러니 미모의 육십 대 여인에게 하이힐은 못 신는다는 게 맞는 말일 것이다.




처음 하이힐을 신은 건 스무 살 때였다.  방이 3개인 집에서 부모님 방 아들방  딸방을 나누어 살았는데, 3남 4녀인 우리 형제는 딸 네 명이 한방에서 같이 살았다. 큰소리 나는 법이 좀처럼 없는 집이었는데, 나와 바로 내 아래 여동생이 한 번씩 싸웠다.  원인은 옷과 신발이었다. 그때는 맏이에게 새 옷을 사주면 동생들은 차례대로 물려받아 입는 게 흔한 일이었다.  나이는 3살 차이였으나 덩치가 비슷한 동생이 내 옷을 입고 나가서  단추가 떨어져 돌아오거나 뭔가 묻혀오거나 가끔은 찢겨서 돌아온 적도 있었다. 구두도 그랬다. 숨겨놓아도 어떻게 찾았는지 신고 나가서 엉망을 만들어 오고는 했다. 화가 나서 따지는 나와 달리 동생은 무심한 얼굴로 '그럴 수도 있지' 하는 성격이라 더욱 화가 나고 약이 올랐다.




아파트 건축으로 큰 부자가 된, 아버지의 여동생인 고모가 나를 데려가겠다고 했다. 고모는 시집가기 전에 우리 집에서 살았고 나는 고모를 무척 따랐다. 그러다 고모부를 좋게 본 엄마가 고모를 그 집으로 시집을 보냈다. 고모가 시집가고 나서 고모부는 건축사업을 시작했고 때마침 아파트 붐이 시작되어 고모부의 사업은 크게 번창했다. 고모는 5살쯤 된 쌍둥이 아들 두 명과 그 위로 딸 두 명이 있었는데 나에게 쌍둥이들을 돌봐 달라고 했다. 고모집은 3층의 저택이었는데 아주 넓고 서늘했다. 일하는 사람도 있었는데 내가 가고 나서는 보이지 않았다.  고모부는 늘 바빴고 고모도 많이 분주해 보였다.  고모가 시장을 봐서 돌아왔는데 들어오자마자 내게 시장바구니를 집어던졌다.  올 시간이 되면 바깥을 내다보고 있다가 장 본 것을 재빨리 받으러 나오지 않았다고 화가 난 것이다.




위로 오빠 둘이 있었고 맏딸이긴 했지만 엄마는  '일을 배우면  일을 하고 산다'라며  집안일을 시키지 않았다. 일을 못하는 데다 눈치도 없었던 나는 고모에게 미움을 받았던 것 같다. 고모집 간지 한 달쯤 되었을 때 고모가 구두를 사 주겠다고 구두방으로 데려갔다. 그때 고른 구두가 빨간색 하이힐이었다. 발목에 끈이 달린 스틸레토였는데 한눈에 매혹되었다. 다른 구두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처음 신어본 하이힐이 불편하고 신고 딱히 갈 데도 없었지만 다른 선택이 없었다. 그날 고모는 집으로 돌아와서 불같이 화를 내었다. 주제도 모르고 분수에 안 맞는 구두를 샀다고 했다. 색깔도 너무 화려하고 구두굽도 높은 것을 골랐다고 실용성이 없이 겉멋만 들었다고 꾸짖었다.



 우리 집으로 돌아왔다. 집안행사에서 고모를 만나면 죄를 지은 것처럼 주눅이 들었다.  고모부회사가 지은 아파트가 무너지는 사고가 생겼다. 결국 부실건축으로 부도가 났다. 고모도 암에 걸렸다고 했다. 비행기를 타고 교수님께 악기수업을 받으러 다니던 고모 딸은, 고모가 죽자  아빠를 모시고 동생들 건사하며 살다가 엄마 없는 쓸쓸한 결혼을 했다. 결혼식장에서 착하고 예쁜 고모딸이 안쓰러워서 부둥켜안고 울었다. 고모가 사준 빨간색 구두는 몇 년이 지나서야 신기 시작했다. 그 구두를 신고 찍은 사진이 딱 한 장 남아 있는데 결혼 날짜를 받아놓고 남편 될 사람과 친구와 함께 동물원에 놀러 가서 찍은 사진이다. 그날의 나는 빨간색 구두만큼이나 화려하고 아름다웠다. 


큰딸이 아기를 낳았다. 세상에서 가장 부드러운 가죽으로 만든 아기신발을 샀다.  누르면 아기의 뺨처럼 말랑거리는 은색 구두였다.  아기발이 커지면서 신발수도 늘어가고, 계절마다 신발이 바뀌었다. 아기가 뛰어다니기 시작하자 핑크색 부츠를 신겼다. 얼굴이 비치는 반짝이는 핑크색 부츠는 아기를 더욱 사랑스럽게 만들어주었다.  작은딸의 아기가 태어났다. 신발을 사랑하는 아기는 걷기 시작하면서 집안에서도 신발을 꼭 신는다. 신기하게도 신발을 보는 안목을 가지고 있는 아기다. 태어난 지 2년이 채 안된 아기는 신던 신발이 발에 낀다 싶으면  "큰 신발을 사줄게라고 말해"라고 귀를 끌어당겨  명 한다. 다른 대답이 있을 리 없다. "네" 세상에서 제일 부드러운 구두를 사이즈 업해서 주문한다.  원하는 큰 신발을 신고 만족한 아기의 미소가 휴대전화로 전송된다.  할머니의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간다. 


평생을 학자로 살았던 아버지와 우리일곱 남매, 여덟의 아이를 키운 엄마는 여든이 다 되어서도 일어나면 세수하고 화장을 한 뒤 하루를 시작했다. 잠시 시장을 가도 단정한 옷과 구두를 신고 다녔다. 이런저런 이유가 생겨 딸들이 '엄마 모시고 좋은 곳 여행 다니자' 한 약속이 미루어지는 사이 엄마가 쓰러지고 천국으로 가셨다. 나는 이제 더 미루지 않기로 했다. 우리 엄마처럼 '좋은 여자는 죽어서 천당을 가지만 나쁜 여자는 살아서 가고 싶은 곳을 간다' 고 했다. 나는 좋은 신발을 신고 좋은 곳으로 다닐 것이고,  손주들에게 좋은 신발을 잘 사주는 예쁜 할머니가 될 것이다. 

 


"좋은 신발이 좋은 곳으로 데려다준다."는 말을 나는 굳게 믿는다.





내가 선택한 신발로 내가 선택한 신발로 스스로 높이겠다. 스스로 높이겠다.


                                                                                                                   사진출처 : 픽사 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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