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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이디 Oct 15. 2021

1. 여드름 짜기는 얼마나 천시(賤視)되는가

레지던트 '라떼'시절

결국 ‘여드름 짜기’가 가장 큰 주제인 이 책에서 가장 먼저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술 또는 테크닉)이 얼마나 천시(賤視) 는 가에 대한 것이다.

내가 쓴 이 ‘천시’라는 표현은 그 중요성에 비해 사람들이(피부과 전문의를 포함한)

'여드름 짜기'얼마나 하찮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일말의 과장이 없이 잘 표현한 말이다

(라고 이 열사 소리 높여 외칩니다!!).

머리말에도 이야기했지만 ‘여드름 짜기’는 거창한 기술이기에는 너무 가볍고, 사소하고, 일상적이며, 흔하기 때문일까.

 

저자는 피부과 레지던트 4년의 과정 중에

여드름을 짜 본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사실 내가 레지던트 하던 ‘라떼’ 시절엔, 의과 대학 피부과에서는 ‘여드름’이란 분야 자체가 '개업가'에서나 보는 가볍고 흔한 피부질환 따위로 ‘천시’ 되었다. 당시는 피부 미용을 전문적으로 보기 시작하여, 선풍적인 인기를 끌던 개업가 피부과 선배들과, 세력을 넓히며 위세 등등했던 '이땡함', '고땡세상', '오땡클' 등의 네트워크 병원들 덕분에 피부과의 인기가 하늘로 치솟을 때였다. 대학에서는 이런 미용 피부과 개원 분위기를 속되다 여겼는지 싫어했고, 교수님들은 이런 미용 피부과 개원을 목적으로 피부과에 지원하는 것, 레지던트 기간 중에 이런 미용 치료를 배우려 하는 것들 대놓고 싫어하셨다. 덕분에 여드름을 비롯하여 색소, 레이저, 보톡스, 필러와 같은 미용 피부과의 돈벌이 주제라 여겨진 분야들은 레지던트 과정 중 의도적으로 무시되고 천시되었다. 신성한 상아탑 대학의 레지던트 과정을 미용 피부과 개업 준비과정으로 만들어 주긴 싫다는 교수님들의 앙탈이었을까.


당시 높아진 피부과의 인기 때문에 성적이 최상위권이 아니면 피부과에 원서 조차 들이밀 수 없었다(맞다. 돌려치기 자랑이다 ㅋ) 우아하고 고상하게 차린 피부과에서 레이저를 쏘며 그럴듯한 치료를 하는 원장님이 될 꿈을 꾸며, 성적마저 우수했던 피부과 레지던트 1년 차들은 도도한 자신감으로 피부과에 입성했다. 하지만 1년 차들을 반긴 것은 바로 발바닥 사마귀를 깎는, (그들이 생각하기엔) 천한 일이었다.


인간 유두종 바이러스의 감염으로 발생하는 사마귀라는 질환은 일일이 칼로 깎아내고 냉동치료라는 것을 해야 하는데 당시 미용 치료를 하느라 바쁜 개원가에서 잘하려고 하지 않아 많은 환자들이(특히 개수가 많고 심한 환자들이) 대학병원으로 몰렸다. 어쩔 땐 하루 종일 외래에서 발바닥 각질만 깎아대다 하루가 다 가는 날이 있을 정도였다. '라떼' 거의 모든 과가 그러했지만 위계질서가 강한 레지던트 사회에서 이러한 3D 일들은 모두 1년 차의 몫이었다. 환자의 냄새나는  발을 만지고, 사마귀와 각질을 깎아내는 이 과정은 1년 차 때 참고 견뎌야 하는 일로 ‘천시’당한 대표적인 시술이다.

(아이러니하게 이때 억지로, 하기 싫어하며 배워둔 사마귀를 깎는 기술은 개원한 지금, 짜디 짠 낮은 보험 수가의 시술  중 가장 높은 치료 수가를 인정받는 시술로, 병원 수익에 이바지하고있다.)

verruca plantaris (족저 사마귀) : 표피의 증식이 있고 표피 상부에 바이러스에 의해 변형된 각질형성 세포(koilocytes)들이 관찰된다.

내가 '여드름 짜기'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 느닷없이 라떼 시절의 '사마귀 치료'의 추억을 끄집어낸 것은 '여드름 짜기'만큼 천시당한 시술이 뭐가 있을까라고 돌이켜 봤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시술이었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면 피부과 레지던트 4년 중 '여드름 짜기'에 대한 제대로 된 교육이 있었다 하더라도 진지하게 배우고 익히기보다는 사마귀 치료와 같이 참고, 견디고, 버텨야 할, 1년 차에게 분명 몰아 내려갔을 일이 되었을 것이 분명하다.

내 비록 생명을 다루지는 않지만(이 부분은 나를 포함, 일부 피부과 의사들이 어느 정도는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의사라는 직업 소명으로서의 열등감이다),

또, 비록 지금은 발바닥 사마귀를 깎고 있지만... 교과서에서나 볼 수 있는 희귀하고, 어렵고, 난해한 피부 질환을 진단하고 치료해 내리라는 사명에 고취되었던, 고고했던 대학병원 레지던트 시절이었기에...


의사가 여드름을 짠다는 것은 레지던트 4년의 기간 동안 본적도, 들은 적도,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말 그대로 천하디 천한 시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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