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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보데 Oct 14. 2023

나는 나의 세상을 확장시키려는 욕구들로 가득하다.

조용한 공연

경산에서 태어나 대구와 포항을 오가며 살았다. 그렇게 포항에서 발붙이고 산 지 어언 13년. 나의 몸은 경상도라는 작은 세상에서 벗어나 살아본 적이 없다. 매인 나의 몸에 대한 저항심이라도 있는 걸까. 나는 나의 세상을 확장시키려는 욕구들로 가득하다. 처음 한동에 왔을 때에는 전 세계를 누비다 한동에 잠시 잠깐 머무르는 듯한 몇몇의 태도에 큰 충격을 받았다. 포항, 그리고 기껏해야 SNS로 내다보던 바깥세상이 전부인 줄 알았던 나의 세계가 지독히 비좁고 캄캄한 우물 안이었음을 부정할 수 없었다. 아무리 상상해 보아도, 잘 떠올려지지 않는 수많은 삶들. 그것은 경상도 우물 안 토박이 개구리의 어떠한 불안을 자극했고, 끝내 공감할 수 없고 이해 못할 영역을 향한 설움과 슬픔이 그려졌다. 누군가를 이해하지 못할까 무서웠고, 누군가에게 이해받지 못할까 무서웠다. 그래서 더 많은 타인에, 더 많은 새로운 것들에 맞닿고 싶었다. 나의 영역, 나의 세상 끝자락으로 나아가서 나를 확장시키고 타인의 것을 나의 것으로 만들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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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는 사랑으로 타인과 그 관계까지 흡수하려 했다. 누군가가 사랑은 분리라고 말했을 때, 그 말을 꽤 오랫동안 이해하지 못했다. 사랑하면 다 품어주고, 사랑하면 다 내어주고, 사랑하면 다 받아들이고 싶었다. 하필 이것이 나에게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내가 나를 지키기 위해 세워놓은 내 영역의 울타리들이 사랑의 탈을 쓴 연민과 인정욕구들로 인해 야금야금 함락 당할 때, 나 자신이 누구보다 박수치며 환영했음을, 지금 돌아보니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나의 감정이 어떠한가를 확인하기도 전에 상대의 감정을 먼저 배려했고, 반응했고, 거기에 나를 맞추었고. 때때로 나를 통해 해소되고 채워지는 상대의 감정을 보고는 이것이 나의 감정이자 나의 역할이라 착각했다. 미처 분별하기 이전에 사랑해 버리는 나의 습성은 사랑하는 이의 모난 모습과 삐뚤어진 형태까지 나를 거쳐 그들이 스스로를 직면하게 하는 거울의 역할을 했음이 분명하다. 자신의 못난 모습마저 닮아버린 나를 마주한 이들은, 한결같이 나를 바라보기 어려워했다. 그런 나를, 사랑하기 어려워했다. 그래서 타인을 향한 나의 확장은 늘 기뻤으나 외로웠고, 가득하면서도 공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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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상처받고 싶지 않은 마음과 그럼에도 멈출 수 없는 사람에 대한 호기심이 늘 내 안에서 시끄럽게 소란을 일으키곤 한다. 그 소란 끝에 도전해 본 적 없는 영역을 겁 없이 두드리고, 나를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에 내 발을 그 곳에 얹는다. 내 영역의 아주 가장자리, 가장 낯설고 예측할 수 없어 내가 가장 취약해지는 곳으로. 기어코 최선을 다해 나를 내 끝자락으로 내몰아버린 날이면 이유를 설명할 수 없는 공허와 외로움에 잠들지 못해 뜬눈으로 밤을 새우지만, 나는 알고 있다. 나의 지난 숱한 괴로움을 이제 와서 나의 족쇄로 삼고 싶지 않다는 것을. 내가 멈추지 않고 나아간다면 지난 눈물도 흘러 흘러 무언가에 스며 새로운 희망이 될 것이며, 나를 덮쳤던 재앙 또한 내 삶의 뜨거운 단련이 될 수 있음을 말이다. 그리고 나를 스쳐 간 숱한 이들의 사랑, 그들의 서툴렀던 마음과 진심이 비록 아프고 쓰렸으나, 나를 주저앉게 하여 이대로 내 삶 속에서 헛되게 하고 싶지 않다. 나는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바람대로,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아야만 한다. 기어코 그대의 사랑 또한 내 삶 어느 곳에서 열매 맺기를 소망하며, 그러한 새 소망으로, 끝없이 나의 끝자락으로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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