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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진의 글방 Oct 08. 2024

함초롬 바탕체

익숙한 글자체다. 어디서 본 듯한데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나이가 드니 오래된 기억을 끄집어내기가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것만큼 힘이 든다. 며칠째 일을 하다가도 밥을 먹다가도 어디서 봤더라, 혼자 중얼거리며 기억을 더듬었다. 딸아이가 무슨 말을 건네도 건성으로 응, 응, 하다가 뭐라 했지? 되묻곤 했다. 그러다 문득 서랍정리 중에 고등학교 시절 타자기로 써 놓았던 종이를 발견했다. 그래, 이거다. ‘타자체’였구나. 조그만 종이 상자에서 나온 타자로 쳐 놓은 글을 찾아냈다. 완전 똑같진 않았지만 글자체의 느낌이 타자체와 흡사한 함초롬 바탕체였다. 영국제였던가, 미국제였던가. 정확히 기억은 없지만 타자 선생님이 소개하신 여러 종류의 타자기 중 한 타자기의 서체였던 것 같다. 타이프 친 글자체는 정겨웠다. 종이 상자도 반가웠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서 대학진학을 생각하지 못했던 나는 상업고등학교로 진학했다. 중학 시절 배우던 공부랑은 판이하게 달랐다. 생소한 이름이 붙은 부기를 비롯해 주산, 타자 과목을 중점적으로 배워야 했다. 공부를 잘하던 편인 나는 대학을 갈 수 없다는 생각에 공부에 흥미를 잃어가고 있었다. 이러던 차에 머리를 쓰지 않아도 되는 타자치 기는 나름 할 만하다고 생각했다.


타자 치기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글자판이 새겨진 쇠막대들이 톡톡 튀어 올라 종이와 만날 때의 탄력감은 타자의 속도가 붙기 시작하면서 타악기 리듬을 맞추듯 흥겨웠다. 한 줄이 끝나 다음 줄로 바뀔 때 한번 감아줘야 하는 오른쪽에 붙은 손잡이 이름이 생각나지는 않는다. 그것을 감을 때의 느낌은 달려가는 말 같다고 할까. 내 손가락은 이렇게 타자기 말을 타고 일정한 박자에 맞춰 고독 속으로 신나게 달리고 있었다.


그 당시 대머리였던 남자 타자 선생님이 기억난다. 유난히 반짝이는 앞이마를 흘낏흘낏 곁눈으로 쳐다보며 혼자서 키득키득 웃은 기억이 있다. 체구가 자그마했던 선생님은 야무진 체구만큼 꼼꼼히 가르쳤다. 대학을 포기하고 들어온 상고 학생들의 서러움을 잘 안다는 듯 대학이 아닌 새로운 길에서도 성취할 수 있는 것들이 있음을 알려 주었다. 잡념에 빠지지 말라는 듯 쉬는 틈을 주지 않으며 연습을 시켰다. 타자 검정 시험을 꼬박꼬박 공지하면서 3급에서 2급, 1급에 도전하도록 독려했다.


손목에 힘이 들어가 뻣뻣할 때는 타자 자판이 무거워 손가락이 부러질 듯 아팠다. 하지만 타이머로 시간을 맞춰 놓아 멈출 수 없었다. 타자 치기가 한창 물이 오를 때 나의 손가락은 탭 댄스를 추는 듯했다. 손목에 힘을 빼고 탄력을 이용해서 치는 법을 터득하고는 음악을 연주하듯 흥겹게 자판을 두드렸다. 요즘 작은딸 아이가 학교 방과 후 컴퓨터 반에서 자판을 익히고 문장 치기를 하며 타수가 늘었다고 자랑을 한다. 내가 타자 치기에 빠졌을 때도 지금 딸아이 모습처럼 근심 없는 해맑은 얼굴이었을까. 엄마가 좋아했던 것을 자신도 잘해서 사랑을 차지하려는 작은딸의 고집스러운 욕심이 밉지 않다.


이렇게 꺾어진 꿈 앞에 희망 없이 우울했던 사춘기를 타자 자판 소리에 묻으며, 꿈도 묻으며 흘려보낸 것 같다. 요즘 기타를 치며 타자기를 치던 그때 느낌을 되새겨 본다. 손목에 힘을 빼고 탄력을 이용해 기타 줄을 튕긴다. 기타 리듬을 느낄 때는 그 속에 푹 빠져 현실의 내가 없다. 생각이라는 것은 여행을 간 듯 내 영혼과 손가락이 따로 움직인다. 끊임없는 단순 반복의 노동 속에서 생각과 손이 따로 움직여질 때 비로소 고독의 세계로 빠질 수 있다는 박경리 선생의 강의 노트 말이 떠오른다. 나도 모르게 무의식의 고독 속으로 빠져들었던 나를 이제야 발견한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시간들은 내가 나를 만나 힘을 얻고 일상 속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는 도약이었다.


인내의 한계치를 넘어서는 순간을 경험한 사람은 안다. 어떤 수련이든 죽을 것 같은 한계선을 한 번은 부딪힌다. 인내를 가지고 견뎌야만 그 선을 넘어설 수 있다. 인내한 사람만이 자신의 기능이 비약적으로 도약한 기쁨을 만끽할 수 있다. 나에게 타자 치기가 그랬다.

1급 자격검정 도전은 반복적인 타자연습을 반복하며 인내하게 만들었다. 타자를 치는 단순한 반복은 더 이상 나아갈 수 없을 것 같은 한계점으로 나를 이끌었다. 타이머에 맞춰놓은 시간 안에 정해진 분량을 쳐야 했다.


먼저 크게 숨을 들이쉬고 허리를 편다. 눈은 타자를 쳐야 될 책을 뚫어질 듯 주시한다. 손가락 끝은 피아노를 치듯 타자기와 수직을 이룬다. 타이머가 시작을 알리고 나는 타자기와 한 몸이 된다. 조금이라도 잡념이 들어오면 오타가 나거나 시간 안에 완성하지 못한다. 성공할 때까지 수없이 이 동작을 반복하며 나를 가다듬었다. 이렇게 한계를 향해 나가는 과정이 나를 승화시킨 듯하다. 타자 연습은 대학 진학 대신 취직을 할 수밖에 없었던 나에게 성취감과 위로를 주었다. 침묵 속에서 따닥따따닥 두드려지는 타자기 소리에 빠져들며 수양하는 수도승이 된 듯 나는 그 시간들을 이겨나가고 있었다.


그 당시 어려운 형편에도 엄마에게 떼를 써서 타자기를 샀다. 지금도 버리지 못하고 새파란 뚜껑 옷이 바래지도 않은 채 고이 방 한 귀퉁이에 모셔져 있다. 마라톤 타자기. 다시 꺼내 자판을 두드려본다. 하얀 A4 용지에 희미한 글자 테두리만 찍힌다. 요즘에도 먹끈을 파는 곳이 있을까. 구할 수 있으면 새로이 먹끈을 갈아서 그때의 나로 돌아가 글을 적어보고 싶다. 함초롬 바탕체를 닮은 정갈한 글씨체를 떠올리며.


요즘의 한국은 풍요로워졌다. 하지만 아무리 풍요로운 곳이라 할지라도 어렵고 어두운 구석은 있기 마련이다. 꿈을 잃고 좌절하는 청소년들, 힘든 일들을 견디지 못하고 자식을 버리는 부모들, 각종 나쁜 미디어 속으로만 빠져드는 아이들의 모습을 종종 뉴스에서 듣는다. 이들에게 나의 타자기를 보여 주며 한 번쯤 쳐보도록 권해보고 싶다.

내가 당시 열중하며 타이핑했던 글귀들을 지금 떠올려보면 명언과 좋은 시, 수필집 문장들이었다. 글귀들을 애써 기억해 타이핑하지는 않았지만 문들 문득 힘들 때 글귀들이 떠오르는 경험들을 했다. 이 글귀들이 때론 나에게 힘이 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타이핑하던 머리가 아닌, 손이, 몸이 그 글귀들을 받아들이며 나를 세워주었다. 문장을 보는 순간 반사적으로 움직이는 손가락은 현실의 풀리지 않는 복잡한 일들을 생각할 겨를도 없이 움직였다. 오히려 이것이 정신적 휴식을 주었다. 덤으로 타자를 잘 칠 수 있는 한 가지의 능력도 얻었다. 지금 어렵고 답답함에 빠져 있는 이들이 타자를 쳐보면서 나와 같은 위로를 받을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     


꿈을 꿀 수 없다는 절망감에서 숨 막혀하며 책을 타자로 필사했던 그때가 아련하다. 답답한 마음이 넘쳐흐를 때마다 두들겨 대던 타자기는 나의 분풀이를 참으며 오랜 세월을 내 옆에 있었다. 그런 오랜 친구를 지금껏 잊고 있었다. 죽마고우를 만나 기타와 친구를 맺어 준다. 둘은 나를 바라보며 외로워하지 말라고 눈짓한다. 곁에서 함께 했던 그들을 잊지 말아 달라고 나를 붙든다.


사춘기 그 시절 혼자 긴 밤 지새우며 타이프 쳤던 그 글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작은 종이 상자 여기저기를 뒤져도 타자로 친 종이는 한 장밖에 없다. 애가 탄다. 어딘가 버리지 않고 두었던 것 같은데 왜 없을까. 잊었던 나를 찾고 싶기에 한 시간이 넘도록 뒤적이다 이제는 포기한다.

타자기가 시대를 타고 컴퓨터로 바뀌어서 지금은 가벼워진 자판을 사각사각 두드리며 글을 써본다. 내 가슴에 묻혀 안타까워했던 나의 꿈은 무엇이었을까. 기억하면 더 아플 것 같아 무의식의 방 속에 가둬 두었던 나의 그림자들을 끄집어내어 글로 써 보고 싶다.

처마 끝에 매달아 두었던 메주가 여러 단계를 거쳐 감칠맛 나는 간장으로 숙성되듯이 나의 글도 이제 지천명을 바라보는 나이를 만나 제대로 숙성되기를 꿈꾸어 본다. 타자를 치듯, 기타를 치듯 지겹고 곤한 노동 끝에 오는 해탈 속으로 가기 위해 글쓰기와도 지겹고 곤한 노동을 해 보려 한다. 꿈을 꾸기에는 너무 늦었다고 핑계 대며 도망만 쳐오던 나와 직면하도록 용기 내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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