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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arephath Sep 27. 2024

깡패 친구

어린 시절, 국민학교 다닐때, 나는 소위 왕따를 당했다. 원래 늘 함께 다니던 친구가 나 포함해 5명이었다. 모두 공부 잘하고 모범적인 친구들이었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그 친구들이 나를 외면하기 시작했다. 그 왕따는 국민학교 5학년때 시작되었고 국민학교 졸업때 까지 끝나지 않았다. 나는 그 이유를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국민학교 5학년때, 반에 깡패라 불리는 아주 아주 불량하고 못됐다고 평가받는 아이가 있었다. 다른 애들은 다들 그 친구를 멀리 했고 그 친구의 꼬붕인 애들 몇명만 그 아이를 따라 다녔다. 지금으로 치면 소위 짱이라 불리는 그런 아이다. 그런데 나는 이상하게 그 친구가 싫지 않았다. 아마도 부성 결핍이었던 나에게 어떤 강함에 대한 동경 같은 것이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점심시간에 밥도 같이 먹고 집에 놀러도 가고 그랬다. 그 아이 집에는 당시에는 획기적인 위성방송까지 나와서 잼있는 외화들도 많이 보고 아주 잼있었다. 그렇게 그 친구와 나는 드물게 잘 지냈다. 물론 국민학교 졸업 후까지 연락하고 지낼 만큼은 아니었다.

그 친구를 다시 만난 것은 병원 응급실 이었다. 나는 응급실 의사로, 그 친구는 조직 폭력배로 다른 조직원과 싸우다 칼에 열상을 입고 내원한 환자로 만났다. 그 친구를 치료해 주고, 간단히 서로 안부와 연락처를 교환한 후 헤어졌다. 그 이후로도 몇번 그 친구는 다쳐서 응급실 신세를 졌고 내가 치료해 준 일이 있다. 그러나 내가 병원을 옮긴 후 다시 연락하지는 않았다. 굳이 범죄자와 엮여 살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 이후 다시 그 친구를 만난 것은 병원 직원들과 회식 후 2차로 간 호프집에서 였다. 그 친구는 자기가 관리하는 가게라고 했는데, 아마도 조직에서 매장 관리를 그 친구에게 맡겼던 모양이다. 자기 가게라며 자랑하며 자기 아내와 아이들까지 나에게 소개시켜주며 반갑게 나를 맞아 주었다. 나는 대충 인사를 한 후 곧 그 호프집을 빠져 나왔고 다시 연락하거나 그 호프집을 찾지도 않았다.

어른이 됐을때 까지 난 내가 왕따를 당한 이유를 알지 못했다. 그런데 그 친구를 만난 후 문득 아! 하고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5명이 같이 점심시간에 항상 밥을 같이 먹고 친하게 지내다가 갑자기 내가 모두가 싫어하는 그 깡패친구와 어울리고 밥도 같이 먹고 하는 것이 못마땅 했던 것이다. 그제서야 나는 내가 왕따를 당했던 이유를 깨달을 수 있었다. 그러나 시간을 돌이키거나 어릴적 친구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해명할 수도 없는 일. 과거는 과거일 뿐이다. 그렇게 내 왕따의 이유는 바로 그 깡패 친구였다.

응급실에서 일하고 있을때 다시 그 깡패 친구가 왔다.이번에는 꽤 크게 다쳤다. 여기 저기 칼에 찔린 상처에 머리도 크게 다쳐 뇌출혈도 의심되었다. 그 친구는 나를 보자 마자 크게 웃으며 이제 안심이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연락 한번 안 한 네가 친구냐며 불평을 늘어 놓았다. 그 친구는 응급 수술을 받았고 다시는 폭력 조직 일을 할 수 없는 상태의 몸이 되었다. 척추 손상이 심해 상하지가 마비되어 장애인이 된 것이다. 

입원해 있으면서도 그 친구는 내 친구가 이 병원 의사라며 자랑을 늘어놓기를 그치지 않았다. 그러던 그 친구는 퇴원을 했고, 다시 연락은 끊어졌다. 

어느 날, 나는 가족들과 함께 자가용으로 여행을 떠났는데, 세차장을 들렀다. 내 창문을 닦고 있던 세차원이 닦던 걸레질을 멈추고 한참 나를 쳐다보는 것이다. 무슨 일인가 하여 돌아보니, 그 깡패친구였다. 불편한 손과 절뚝거리는 다리를 끌고 그는 열심히 세차 일을 하고 있었다. ‘어이, 의사친구’ 그가 활짝 웃으며 외쳤다. 나도 어색하게 웃으며 인사를 했다. 내려서 포옹하거나 악수를 하지도 않았다. 그저 차 안에서 몇마디 안부를 물었을 뿐.

요즘 꿈에 그 깡패 친구가 자꾸 나온다. 조직 폭력배라는 것 때문에 꺼렸지만 어린시절 그 친구와의 추억과 인상이 매우 강렬했던 모양이다. 친구야 미안하다. 내가 겁이 많아서 너를 멀리 했던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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