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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arephath Oct 05. 2024

무례한 마마보이

그녀는 오늘도 발걸음이 가볍다. 오빠를 만나는 날이기 때문이다. 내인생의 전부인 우리 오빠. 오빠는 의사다. 그렇지만 오빠가 의사이기 때문에 좋아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예방의학을 전공한 오빠는 급여 수준도 대기업 사원 수준에도 못 미칠 것이다. 그녀는 오빠가 전공을 정할때 돈 잘버는 과를 하라고 한 적이 없다. 그저 오빠가 하고 싶고 오빠가 행복해 질 수 있는 과를 하라고 했었고 예방의학을 한다기에 적극 응원해 주었다. 그녀는 우리 오빠가 의사인 것이 자랑스럽다. 그건 의사여서가 아니고 우리 오빠가 의사여서 그런 것이다. 헤헤, 뭐 그렇다. 그녀는 어머니가 안계신다. 어릴때 이혼하셔서 아빠랑 단 둘이 살아간다. 그런 아빠에게 오빠는 명절이나 생신을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고 항성 풍성한 선물로 축하해 준다. 너무너무 고마운 일이다. 그런데 그녀는 아직 오빠의 홀어머니를 만나뵙지 못했다. 그것이 항상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다. 혹시나 그녀를 보지도 않으시고 엄마 없는 자식이라고 반대부터 하시진 않을까? 정말 그 생각만 하면 그녀의 마음은 끝없이 어두운 수렁으로 빠져든다. 그러던 어느 날 오빠가 드디어 어머님을 뵙자고 했다. 그녀는 너무너무 들뜬 마음으로 최고로 예쁜 옷을 입고 꽃다발과 선물을 준비해 오빠네 집으로 갔다. 홀어머니로 당신 아들을 의사까지 만드신 분 답게 호락호락 하시진 않으셨다. 이런 저런 질문들을 하시던 중, ‘아버지는 딸자식 키우시느라 아직 재혼 안하신 건가?’라고 물으셨다. 난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뭐 꼭 그런것 같지는 않아요’라고 솔직하게 대답했다. 이게 결정타가 될 줄은 꿈에도 모르고서. 몇일 후 오빠를 만났는데 표정이 안좋았다. ‘반대하시는 거구나’ 그렇지만 부모님의 반대를 극복하고 맺어지는 경우도 많으니 오빠만 믿기로 했다. ‘응, 아버님이 딸자식 키우느라 재혼 안하신 건 아니란 말이 엄마 컴플렉스를 건드렸나봐. 바람 피우고 이혼해서 나간 우리 아버지가 이 여자 저 여자 만나고 다니는 뭐 그런걸 상상하시는 것 같애. 그런거 아니라고 아무리 설명을 해도 ’네가 나를 생각하면 어떻게 그런집 애를 데려올 수 있냐?‘는 말씀만 하셔.’‘오빠 힘내. 나 괜찮아. 사실 쉬운 거라곤 생각 안했어. 하지만 우리 이 난관을 같이 헤쳐나가자’‘아니, 미안해. 난 엄마가 저정도로 반대하시면 결혼 못해. 이해해줘. 그동안 고마웠어’그 말만 남기고 오빠는 자리를 떴다. 그녀는 멍했다. 이게 이렇게 쉬운 일인가? 우리 사랑은 뭐였지? 우리 사랑이 이렇게 말 한마디로 그만 둘 수 있는 것이었던 거야? 그녀는 그렇게 생각하며 눈물을 흘렸다. 이대로 오빠를 보낼 순 없다. 그래서 전화도 하고 찾아가서 기다리기도 하고 해봤지만 전화도 안 받고 만나 주지도 않았다. 이제 정말 오빠가 어떻게 하고 싶은지 알 것 같았다. ‘그래, 헤어지는 걸 원한다면 헤어져 줘야지. 그것도 사랑인 걸.’

그녀는 뭔가 변화가 필요했다. 그래서 대학원에 진학해서 박사학위까지 받고 교원 임용까지 바라보고 있었다. 그 사이 좋은 남자도 만나 이번에는 양가 부모님 반대 없이 축복받는 결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오빠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무리 전화번호부에서 지워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는 번호이다. ’아, 난데, 우리 결혼할 수 있을 지도 몰라. 우리 엄마가 너 다시 보고 싶으시데. 내가 계속 엄마 설득 했거든‘ 오빠 목소리는 한껏 들떠 있었다. 나는 대답했다,‘오빠, 나 조금 있으면 결혼해. 나 사귀는 사람, 결혼 약속한 사람 있어. 다시 연락해 준 건 고마운데 앞으로 다시는 우리 연락 하지 마.’‘야, 너 어떻게 이럴 수가 있니? 우리가 그냥 그런 사이야? 내가 가능성이 생겼다고 하면 넌 내일 결혼할 계혹이었어도 관두고 나한테 와야 하는 거 아니야?’ 비로소 오빠에 대한 마음을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무례한 마마보이가 이런 거였구나. 오빠가 이런 사람이었구나. 참 다행이다. 그녀는 안도의 숨을 쉬며 마음을 다 잡고 전화를 끊었다. 문자가 온다. 우리 관계를 결혼할 사람에게 다 까발리겠다는 둥 별의 별 유치한 협박들이다. 우리 관계에 대해서는 그 사람에게 이미 다 말했으니깐 마음대로 해라 하고 다시는 연락하지 말라 그러고 번호 차단시켜 버렸다.

아! 그녀는 진심으로 안도했다. 내가 저런 집에 시집을 갔으면 어떻게 정상적으로 살 수 있었을까? 정말 헤어짐을 감사하게 해 준 오늘의 오빠의 행태에 대해서는 정말 감사했다.

자! 나는 이제 결혼을 한다. 새출발을 한다. 오늘 부로 너저분해진 관계는 싹 잊고 새 공기를 마시듯 그렇게 새출발을 하자.

그녀는 그렇게 결심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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