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오늘도 가슴이 오그라드는 듯한 통증을 겪는다. 119를 불렀더니 인근 대학병원으로 간다. 다른 대학병원으로 가자고 그랬다. 같은 증상으로 이미 그 병원 응급실에는 실려가 봤는데, 결과는 정신과 입원 판정이었다. 그렇게 전전한 응급실이 벌써 3~4곳, 모두 정신과로 배당되었다. 그녀는 분명히 가슴이 아파 죽을 것 같은데 그 대학병원들은 전부 정신적인 문제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또 다른 대학병원으로 가자고 했다. 응급실에 도착, 이과 저과에서 내려와서 보더니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신체적으로는 이상이 없으니 정신과에서 보라는 것이다. 거의 자포자기한 상태로 시키는 대로 했다. 정신과 폐쇄병동 입원. 청춘의 화려한 이력 중 이보다 더 화려한 이력이 있을까? 난 분명 정신병자가 아닌데… 병동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우울증으로 한달을 방안에만 틀어박혀 있다가 구조되어 온 사람, 조현병으로 위험인물로 몰려 가족들에 의해 입원한 사람, 선교사 아내로 고생고생하다 우울증 걸려 온 사람, 어떤 사람은 언젠가 책에서 읽은 조현병의 전형적 증상이 있는 사람도 있었다. 뇌에 칩이 이식되어 있어서 자기 생각이 송신탑으로 방송되고 있다는 것이다. 참 미치는 것도 가지가지다. 어떤 사람은 자기가 찬기파랑가의 기파랑이라며 퇴원하면 무도에 더욱 정진할 것이란 사람도 있었다. 그런 사람들과 자기를 동일하게 보다니, 그녀는 정말 모욕적이었다. 그래도 어쨌건 입원하고 주사를 맞은 후 통증은 없어졌다. 일단 안아프게 해 주니 시키는 대로 할 수 밖에. 여러 사람들이 있었다. 간호사, 의사, 심리상담사, 그리고 의대 실습생들… 병동에서는 여러 프로그램들을 운영하고 있었고, 그 중에는 의대 실습생들이 환자들과 놀아주는 프로그램들도 있었다. 노래방 기계 가져다 놓고 노래 판을 벌이는가 하면 같이 농구도 하고,,, 의대생들과 노는 시간들이 많았다. 자유롭게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그 중 어느 남자 의대생이 있었는데, 키도 훤칠하니 크고 생긴 것도 이목구비가 서구적인게 꽤 잘생긴 남자였다. 나도 미모로는 어디에 지지 않는 편인데,,, 저 남자가 먼저 나한테 말을 걸게 분명하다. 아 그런데 그 남자, 병동에 들어오면 국가고시 준비하는 책만 보고 있다. ‘내가, 이 미모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단 말인가?’ 그녀는 정말 자존심이 상했다. 먼저 말을 걸어오면 상대는 해 줄 생각이었는데, 그 남자는 병동이 무슨 도서관인 줄 아는지 그냥 책만 쳐다보고 있다. 몇번 눈치를 줬는데도 반응이 없다. 이런 무례한… ‘그래 병원에서 환자는 약자니깐 일단 내가 한 수 접고 들어가자. ”안녕하세요 선생님“내가 먼저 말을 걸었다. 이건 정말 내 인생에 있을 수도 있어서도 안되는 일이다. ”아, 네 안녕하세요. 좀 어떠세요.“ 뭐가 어떻냐는 말인가? 도대체 이 남자 내가 왜 입원했는지는 알고 어떻냐고 묻는 것일까? 그런데 그러고는 또 책만 본다. 분노가 치밀었다. 내가 먼저 말을 걸어주기까지 했건만, 어떻게 나하네 궁금한 게 없을 수 있단 말인가? ”선생님, 저 여기가 아파서 입원했어요.“라며 가슴을 가리켰다. ”아, 네 잠깐만요.“라더니 저기 병동 스테이션에 걸려 있는 내 차트를 집어 들고 한참을 본다. 그리고 돌아오더니 ”심장이나 식도 등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닌 것 같구요. 주치의 선생님의 처방에 잘 따르시면 될 것 같아요,“라더니 또 지가 보던 책으로 눈을 돌리는 것이다. ‘그래, 이건 인연이 아닌 것이다.’ 그렇게 몇일을 보냈다. 그런데, 아마도 학생들한테 담당환자를 지정해 주고 리포트를 시키는 것 같다. 어느날 갑자기 학생들이 환자들에게 한명 한명 붙더니 이런 저런 걸 물어보고 대화도 나누고 그러는 것이다. 근데, 나에게 오는 학생은 바로 그 남자. ‘아! 이건 운명인 것이다.’ 그도 내 옆에 오더니 이런 저런 것들을 묻고 대화를 시도한다. ‘흥! 내가 호락 호락 협조할 줄 알고?’ ‘그러나 그 앞에만 서면 작아지는 나’ 묻는 말에 고분고분 대답하기 시작했다. 기본적으로 과거에 앓았거나 지금 앓고 있는 병이 있는지 묻더니 여기 오게된 경위를 묻는다. “가슴이 오그라드는 것 같은 증상은 언제 처음 시작되었죠? 그런 증상이 시작되기 전에 어떤 계기가 있었나요?” 흠,,, 이상하게 그 앞에 있으면 내 속을 다 보여 주고 싶었다. 그래서 어느 병원 누구에게도 하지 않았던 얘기지만 해 주었다. “사실은,,, 그런 증상이 있기 전 파혼을 당한 일이 있었어요”“아, 네~ 저런…”그도 잠시 침묵의 간격을 갖더니 리포트에 이 사실을 적어도 되겠냐고 내게 동의를 구했다. 이 남자 꽤 젠틀하구나 싶었다. 그냥 실습시 얻은 정보를 적어 내도 그만인 것을 그녀의 프라이버시를 고려해 주다니, 점점 더 이 남자가 맘에 들기 시작한다. 그녀는 적어도 된다고 얘기했다. 그 이후 이 남자, 그녀를 대하는 태도가 많이 달라졌다. 뭐, 자기 담당 환자와는 다들 친해지더라마는, 여튼 이 남자도 그녀에게 좀 더 다정해졌다. 아마, 내가 파혼 당한 정보를 알아 낸 사람이 이 남자가 처음인 것 같았고 그래서 진단에 큰 도움이 된 것 같고, 그래서 실습 점수를 꽤 잘 받은 모양이었다. 그 실습조의 실습기간은 끝이 났고, 그 남자와도 작별을 했고,,,그녀도 퇴원을 했다. 그 병원에서 치료받은 후 더 이상 그런 증상이 나타나지 않았다. 아마도 그 남자에게 얘기해 준 정보들이 그녀의 진단에 큰 도움이 됐고 그래서 약물 치료의 방향도 많이 바뀐 모양이다. 잘 됐다. 그런데, 히히히히 그남자, 실습이 끝나기 전에 그녀에게 연락처를 물었다. ‘암, 당연하지. 그렇구 말구. 이 미모를 그냥 넘길 리가 있나? 인연도 이게 보통 인연이냐???’ 그리고 퇴원후 얼마 있다가 그 남자가 그녀에게 연락을 했다. 같이 밥을 먹자는 것이다. 뭐 이게 의대생이 환자를 대하는 윤리에 어긋나는지 어떤지는 모르겠다. 뭐 어때? 청춘 들인 것을.
그렇게 둘은 처음으로 가운과 환자복을 벗어 던진 채 가장 예쁘게 가장 멋있게 치장을 하고 만났다. 그녀의 눈에 그 남자, 밖에서 이렇게 만나니 훨씬 멋있었다. 둘은 밥을 먹고, 차를 마시고, 가볍게 한잔씩 하고, 헤어졌다. 여느 청춘 남녀의 데이트와 별반 다를게 없는 그런 만남이었다. 전화 연락도 자주 했다. 전화는 주로 그 남자 쪽에서 먼저 했다. 전화로 얘기하는 것도 매우 즐거웠다. 그러다 문득,,, 여자에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 남자는 나보다 훨씬 더 좋은 여자를 만나야 해. 그럴 수 있는 남자잖아.’ 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는 지는 모르겠다. 약물치료를 계속하며 제 정신이 들어가서 그런 건지,,, 점점 그 남자가 부담스러워졌다. 그래서 어느 날 전화 연락이 왔을 때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은 저보다 훨씬 더 좋은 여자를 만나야 해요. 이제 연락하지 마세요.“ 왜 그러냐고 남자는 몇번 묻더니, 그리고 몇번 더 전화 연락이 와도 받지를 않았더니, 더 이상 연락이 오지는 않았다. 이걸로 끝난 것이다. 이 후 그녀에게 가슴이 오그라드는 증상이 또 왔는지 어쨌는지는 알 수 없다. 남자도 그렇게 죽도록 그 여자를 사랑한 것은 아닌 듯 했다. 그저 가볍게 데이트나 하는 사이이기를 원했는지 모른다. 아니면 의대생과 정신과 환자와의 관계라는 것이 그의 마음이 한발짝 더 나가는 것을 막았는 지도 모른다.
그저, 정신병동에서 있었던 한 자락의 가벼운 사랑얘기라면 사랑얘기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