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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arephath Oct 07. 2024

어느 딴따라의 연애 성공담

나는 대학교 록밴드의 리드보컬이다. 그날 공연도 그녀가 입장하는 것을 본 후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종종 앞줄에서 방방 뛰다가 까무러치는 경우가 있긴 해도 대부분 노래 끝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멋쩍게 일어나 투툭 털고 가는게 보통인데 이 여자는 진짜로 까무러쳐 버리는 것이었다. 덕분에 우린 연주 이외에도 심폐소생술을 배워둬야 했고, 그녀가 관객으로 있는 한 내가 노래하는 것은 극한 직업이 되고 말았다. 오늘도 무척이나 불안하게 공연을 시작하게 되었다. 음악에 빠져들기 시작하자 머리를 뱅뱅거리기 시작하더니 방방 뛰기 시작한다. 그리고 뛰는 속도가 빨라지더니 역시나 실신하고 만다. 우리는 연주를 중단하고 심폐소생술을 하며 119에 연락했다. 구급대원들이 올때까지 심폐소생술을 하다가 119에 태워 병원에 데려다 줬다. 덕분에 우리 밴드는 사람잡는 밴드로 악명이 높아졌고 안전을 이유로 공연 섭외는 현격히 줄어들었다. 오늘은 병원까지 따라 갔다가 여자가 깨어나자 데리고 나오면서 따지듯 물었다. ‘아 도대체 왜 이러시는 거예요? 제가 우리 밴드 공연에는 오지 말라고 그랬잖아요?’‘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가 있죠? 당신네들이 좋아서 가는 거잖아요.’후~ 말이 안통한다. 방법이 없다. 표 사서 들어오는 사람을 합법적으로 못 들어오게 할 방법이란 애초에 없다. 이 사람한테 오지 말아 달라고 부탁을 하는 수밖에. ‘저기요, 그쪽이 자꾸 우리 밴드 공연장에 오셔서 실신하시는 바람에 우리가 아주 곤란해 졌어요. 우리도 좋죠. 그 정도로 우리 음악을 사랑해 주시는 건 정말 고맙게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계속 이러시면 우린 위험한 밴드가 되버려서 더 이상 공연을 못하게 될지도 몰라요. 그걸 원하는 건 아니시잖아요?’ 여자는 말이 없다. 차창 밖을 바라볼 뿐 아무 말이 없다. ‘심인성 실신’‘네?’‘심인성 실신이래요, 제가 갖고 있는 병.’‘아, 네.’‘그래서 사실 그렇게 격렬한 건 금기예요. 지금껏 격렬하지 않게 조심조심 살아왔구요. 근데, 그걸 부숴버린 사람들이 당신네들 이예요.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데 어떻게 가만히 있어요?’아~ 정말 답이 없다. 우리 음악이 좋아서, 미치도록 좋아서 공연장에 올 수밖에 없고, 그래서 오게 되면 여지없이 그 심인성 실신인지 뭔지 때문에 쓰러지게 되고, 우린 위험한 밴드가 되고, 공연은 점점 줄어들고, 밴드는 망하고… 그래서 한가지 제안을 했다. ‘공연장만 안 오시면, 제가 당신만을 위해 노래해 드릴게요. 아무도 없는 곳에서 당신만을 위해서.’ 한참 있다가 그녀도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서 그녀만을 위한 단 둘이 여는 콘서트가 생겼다. 시간을 정해 그녀를 따로 만나 기타 하나 들고 그녀만을 위해 노래를 하기 시작했다. 무대 공연처럼 격렬하진 않아도 그래도 자기만을 위해 노래하는 내 정성이 통했는지, 그녀는 기절하지도 않고 내 노래를 끝까지 들어주었다. 그렇게 둘만 만나 노래를 불러 주는 시간이 계속되다 보니 처음엔 노래만 하다가 나중엔 얘기를 더 많이 하게 되고, 둘이서 밥도 같이 먹게 되고,,, 영화도 같이 보고,,, 그렇게,,, 사귀는 사이가 되고 말았다. 그녀는 어려서부터 심장이 약했다고 한다, 그래서 자주 실신을 하기도 했고, 무슨 심박동기 같은 것도 달고 다녔다. 집은 아버지가 의사로 남부럽지 않게 자랐고, 귀하게 애지중지 키워진 여자였다. 나 같은 딴따라가 갖기에는 부담스럽기까지 했다. 그래도 기왕 시작한 연애, 갈데까지 가봐야지.

그녀가 와서 실신하는 일이 없어지자, 우리 밴드의 악명도 수그러들었고, 축제때 섭외 1순위 밴드가 되었다. 그리고, 어느 해 대학 가요제에 출전해 대상을 받았다. 정식으로 메인 무대에 데뷔한 것이다. 하루 아침에 수퍼스타가 된 나는 하루하루 바쁘게 지냈다. 그러다 보니 그녀와 단둘이 만나는 시간도 줄어들었고, 어느 인터뷰에서는 여자친구가 있냐는 질문에 없다고 대답해 버렸다. 다 이해할 줄 알았다. 아마추어 밴드에서 프로로 데뷔한 나를 그녀가 다 이해해줄 줄 생각했다. 어느날,,, 무대에서 한참 노래하고 있는데, 맨 앞줄에서 방방 뛰는 어떤 여자를 발견했다. 첨엔 누군지 몰랐다. 근데, 이런! 그녀였다. 아! 저러면 위험한데. 그녀는 누구보다도 더 열정적으로 연주에 몸을 맡기더니, 여지없이 실신해 버렸다. 아마추어 때와는 달리 공연이 중단되는 일은 없었다. 현장에 구급대원이 있었고 그녀는 즉시 병원으로 이송됐고, 나는 노래를 계속했다. 그러나 노래가 제대로 될 리가 없었다. 뒷부분은 대충 불러 재끼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그녀는 깨어나 있었다. 날 보더니, 그녀, 울기 시작한다. ‘미안해’내가 말했다.‘뭐가 미안한데? 유명해진 거?’‘정말 미안해. 많이 바빠졌어. 알잖아 이게 내 꿈이었다는거.’‘좋겠네. 꿈을 이루셔서. 그럼 내 꿈은? 너와 단 둘이 만나 네 목소리로 불러 주는 네 노래를 듣고 싶은 내 꿈은?’‘미안해, 조금만 기다려 줘, 조금만. 바쁜게 좀 덜해지면 시간을 만들어 볼게.’‘아이고, 황송하네요. 유명하신 가수님, 안 그러셔도 되요.’라더니 획 돌아눕는다. ‘자넨가? 내 얘기는 들었네. 이렇게 만나게 되는 군. 내 이 아이 애비되는 사람이야.’갑자기 누군가 내게 이렇게 말하며 다가왔다. 그녀의 아버지였다. 가운을 입고 계시는 것이, 이 병원에서 일하는 의사인 모양이었다. ‘아, 아버님, 죄,,,죄송합니다. 이렇게 인사를 드리게 되서…’‘아닐세 젊은 사람들이 그럴 수 있지. 그건 그렇고 얘기 좀 더 할 수 있겠나?’ 나는 대충 딴따라는 사위로 받아들일 수 없다. 이쯤해서 관둬라. 뭐 이런 얘기가 나올 거라 생각하고 망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버님 말씀은 그렇지 않았다. ‘어려서부터 병약하게 자란 아이라 내 마음이 쓰이는 아이라네. 그런데, 자네 음악을 듣고 부터 아이가 생기를 되찾았어. 물론 실신하는 불상사도 몇번 있었다고 들었네만. 자네가 이 아이를 위해 단독 콘서트를 열어 줬다며? 내 정말 감사하게 생각하네. 이 아이 인생에 그때만큼 행복해 하던 때는 없었다네. 자네 여러 모로 바쁘겠지만, 그 단독 콘서트 만은 계속 해 줄 수 없겠나?’라고 하시는 것이다. 이,,, 이건 사귀는 걸 허락하신다는 말씀이겠지? 와우~ 그녀는 쓰러져 병원 신세인데, 나 이렇게 기뻐해도 되는지… ‘네, 아버님. 그렇게 하겠습니다. 반드시 그렇게 하겠습니다. 꼭 그렇게 하겠습니다.’ 난 그녀의 아버지 앞에서 맹세하듯 그렇게 얘길하고 뛸듯이 기뻐했다. 다시 그녀에게 가니 퇴원하고 없었다.

나는 다시 그녀를 위해 노래한다. 아무리 바빠도, 약속한 시간에 만나는 것만은 절대로 어기지 않고 만났다. 노래도 해주고 밥도 사주고… 물론 연예인이 아니던 시절만큼 자유롭게 돌아다니진 못하고 차 안에서 모자 눌러쓰고 만나지만, 그래고 행복하다. 난 성공과 사랑 모두를 일순간에 손에 넣은 것이다. 신께 감사했다. 나 이렇게 행복해도 되는 것인지요? 라고 신께 기도아닌 기도를 하기도 했다. 중간에 스캔들 기사가 터지긴 했지만 무리 없이 넘어갔고, 난 지금도 무대에서 그리고 그녀 앞에서 노래한다. 내 노래여, 영원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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