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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arephath Oct 08. 2024

거울 속의 그것

언젠가부터 거실 거울을 지나칠 때면 뭔가가 날 응시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 실체가 무엇일까? 나는 너무 궁금했다. 그러던 어느날, 그것이 실체를 드러내었다. 그것은 외눈박이 눈깔. 거울에 눈깔 하나가 스치듯이 비치는 것이다. 나는 똑똑히 보았다. 그것은 내가 거울 앞을 지날때 마다 스치듯 그렇게 나타나 나를 꿈뻑꿈뻑 쳐다 보더니, 언젠가 부터는 나를 거울 앞으로 불러 세운다. 밤이 깊을 수록 그것은 선명해진다. 그리고, 그것은 감정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그냥 처다만 보는 것이 아니다. 그것도 눈빛이 있다. 무서워 죽을 것 같았다. 그것이 나를 쳐다보는 눈빛은 때로는 공포를, 때로는 고통을, 때로는 연민을, 때로는 슬픔을,,, 내 눈을 통해 심장까지 그런 것들을 쳐 박아 넣는 것이었다. 으악~ 저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밤이 깊어지면 더욱 선명해지며 광채를 발한다. 그 광채로 나를 깨운다. 그리고 나를 거울 앞으로 부른다. 그리고 그 특유의 눈빛으로 나를 쳐다 본다. 그러면 그 눈빛은 나의 심장에 꽂히고, 그렇게 나는 잠 못 이루는 밤을 보낸다. 그래서, 언젠가부터 나는 잠을 못자게 되었다. 불면증 환자가 되었다. 아침이면 부스스한 얼굴로 또 거실을 지나친다. 그러면 그것은 희미한 윤곽선으로 남아 역시나 나를 쳐다 본다. 으악~ 아침부터 놀란다. 얼른 거울을 지나친다. 그렇게 집을 나와 직장에 가도 주변에 있는 거울들을 볼때마다 섬짓섬짓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느라 하루를 다 보낸가. 나는 불안증 환자가 되었다. 일이 제대로 될 리가 없다. 대충 하루 일과를 마치고 공포로 가득한 집으로 오면 거실 벽걸이 거울의 그것은 마치 자기가 이 집의 주인인 양 어딜 가지도 않고 거울 안에서 나를 바라 본다. 또 놀란다.


그것은 분명 외눈박이 눈깔 하나였다. 마치 거울의 일부인양 그렇게 붙어 있는 외눈박이 눈깔. 그런데 언젠가부터 그것은 얼굴의 형상을 그리고 있다. 눈 위에 눈썹, 그리고 코, 인중, 입술을 그리더니, 어느날 드디어 그것은 얼굴이 되었다. 그것이 얼굴이 되어 나를 처음 쳐다보던 그 날, 난 그 공포를 잊지 못한다. 세상에서 가장 흉칙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보고 있다. 으악~ 저것은 과연 무엇일까?


그것이 얼굴의 형상으로 진화할 수록 밤에 내뿜는 광채는 더욱 밝아졌다. 그리고 나를 부르는 소리는 더욱 선명해 졌다. ‘이리와, 이리와’ 그 부름에 꼼짝 없이 나는 거실로 내려가 거울 앞에 선다. 그리고 그것의 미소를 억지로 바라보며 그것이 눈빛으로 채우는 온갖 공포와 연민과 고통과 슬픔을 오롯이 내 심장으로 받아낸다. 그렇게 나의 불면증은 심해졌다.


그것은 얼굴의 형상으로 진화하는 것으로 멈추지 않았다. 목이 생겼다. 그리고 그 목에 그인 선명한 칼자국의 흉터. 그리고 그것은 머리털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길게 아무렇게나 자라난 머리카락에 메달린 그것의 머리통, 그것은 자명종 처럼 똑닥똑닥 좌우로 흔들리기 시작하더니 그 흔들림의 박자에 맞춰 나를 부르기 시작한다. ‘이리와, 이리와’ 그렇게 나의 공포는 더욱 깊어져 갔다.


그것은 자라나기 시작했다. 눈깔 하나에서 이젠 자신의 머리카락에 메달린 머리통으로 자라났다. 그리고 매일 밤 나를 괴롭히고, 거울을 지나칠때 마다 무슨 할 말이라도 있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본다. 난 거의 미칠 지경이다. 그것은 목에서 어깨가 자라나더니 어깨에서 팔이 자라나고 몸통이 붙어 나가기 시작했다.


어제 밤에는 그것이 나를 불러 세우고서 밤새 울었다. 자기 머리칼에 메달려 똑닥똑닥 움직이며 뭐가 그리 슬픈지 밤새 울었다. 울다가 흉칙한 미소를 짓다가 공포의 눈빛으로 쏘아 보다가 연민의 눈으로 내 심장을 찌르다가, 밤새 날 갖고 놀았다. 내가 공포에 쓰러질 때까지.


병원에 갔다. 내가 그동안 겪은 일들을 얘기했다. 의사가 원하는게 뭐냐고 그런다. 그것을 없애 주는 것을 원한다면 교회나 성당에 가거나 굿을 하거나 하란다. 동네 의원이라 의사가 무식한가보다 하고 큰 병원을 찾았다. 정신과로 나를 보낸다. 급히 입원하라고 한다. 난 그냥 그것을 없애는 것은 그만 됐으니 밤에 잠이나 자고 낮에 불안에 시달리지 않게나 해달라고 사정사정을 했다. 약을 처방받았다.


어제 밤은 약을 먹고 그것의 부름을 듣지 않으려고 귀마게까지 하고 잠을 청했다. 그러나, 약도 소용이 없다. 그것이 뿜어내는 광채는 너무나 밝고 환하고, 그것이 부르는 소리는 너무나 강력하게 내 머리를 흔들어 댔다. 어쩔 수 없이 어제 밤도 난 그것의 노리개가 되어 뜬눈으로 지샜다. 아침에 거실 벽거울을 스치듯 지나칠 때 나는 역시나 보고야 말았다. 그것의 흉칙한 미소를.


그것이 점점 더 자라난다. 이제 팔에 손과 손가락들이 자라나고 몸통에 골반이 자라나고 다리가 생겨나고 있다. 저것은 왜 내 집 거울 안에서 자라나고 있는가? 자라나는 신체부위의 말단에서는 피가 뚝뚝 떨어진다. 그 피는 거울을 스미고 나와 방바닥까지 적신다. 저것은 환영이 아니다. 대책이 필요하다. 저것을 없애야 한다. 저것이 어디까지 자라나 나에게 무슨 짓까지 할 지 알 수가 없다. 저것의 의도를 알 수가 없다. 왜 내게 불면증과 불안증과 공포를 저 거울 안에서 심어주고 있는 것인가? 나는 왜 저것을 못 본채 지나치지 못하고 꼼짝 없이 불려 나가 저것 앞에서 저것의 노리개가 되어야 하는가? 정말 굿이라도 해야 할까?


교회를 갔다. 성당을 갔다. 무슨 방법이 있을 줄 알았다. 내가 하는 얘기를 듣더니 한다는 소리가 병원에 가보란다. 절에 가서 스님에게 상담을 했더니, 자신을 버리면 더 이상 공포가 없을 거란다. 색즉시공이니 내가 보는 것은 실체가 아니란다. 아니다. 그것은 환영이 아니다. 분명 매일 밤 나를 괴롭히는 저것인 것을 왜 아무도 이해를 못할까? 용하다는 무당을 찾아갔더니, 굿을 해야 하는데 돈이 많이 든단다. 난 돈이 없다.


그것은 피를 뚝뚝 흘리며 다리가 자라 나더니 다리에 발이 붙고 발가락이 생겨났다. 완전한 헝상을 취한 그것은 더 이상 피를 흘리지 않았다.


어제 밤,,, 충격적이었다. 그것이 나를 부르지 않았다. 마침내 나는 평온을 되찾았는가 싶어 뒤집어 쓰고 있던 이불을 걷어내며 빼꼼히 이불 밖을 내다봤더니, 그것의 얼굴이 내 얼굴에 딱 붙어 그 눈깔로 나를 쏘아보고 있다. 더 이상 그것은 거울에 갇혀있지 않다. 으악~ 비명을 지르며 이불을 걷어차고 뛰쳐나온 나는 거실로 가서 거울 앞에 섰다. 그리고, 그것이 내 뒤에 있는 것을 거울에 비추어 보았다. 뒤를 돌아 그것의 멱살을 잡는 순간, 그것이 나를 거울로 밀어 넣었다. 그렇다. 난 지금 거울 속에 갇혔다. 세상이 거꾸로 보인다. 여긴 아무도 없다. 심지어 그것도 없다. 세상의 모든 것이 거꾸로 보이고 아무도 없는, 아무와도 마주치치 않아도 되는 이 세상에서, 난 비로소 불면증과 불안증과 공포에서 벗어났다. 난 절대 평온의 상태이다. 그것이 의도한 것이 바로 내게 이 절대 평온을 주는 것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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