쏟아지는 소나기를 뚫고 달리고 또 달린다. 뒤에 누가 쫓아오기라도 하듯, 그렇게 나는 한참을 달렸다. 아직 비는 내린다. 하늘을 향해 소리를 지른다. 그래도 떠나가지 않는 이 불안감. 내 나이 40을 좀 넘겼지만 한 4천만년은 나를 따라 다는 것 같은 이 불안감. 누가 이유라도 말해 줬으면. 나는 그냥 불안하다. 태생적으로 불안하다. 돐사진을 봐도 손톱이 남아나질 않았고 어릴적 사진은 거의 모두 손가락을 배배 꼬고 있다. 나는 또 달린다. 미끄러져 코라도 깨져 버리길 바라며 죽어라고 달렸다. 그렇게 달리다 코너를 도는데, 나와 정면으로 부딛혀 버린 승용차 한대. 눈을 떠 보니 병원이고 누군지 알 수 없는 여인이 내 곁을 지키고 있다. 눈을 몇번 꿈뻑거리며 기억을 더듬어 보니 상황이 파악이 된다. 내가 말했다.‘아 죄송합니다. 괜히 저때문에.’‘아니에요 좀 괜찮으세요?’ 레인코트를 입은 그녀는 그렇게 물으며 내 태생적 불안까지 간파해 버릴듯한 눈으로 내 눈을 들여다 본다.‘저 이만 집에 가겠습니다. 아픈데 없어요.’‘무슨 소리예요? 머리를 몇바늘을 꿰맸는지 알기나 하세요?’그제서야 머리에 뭔가 붕대를 둘러 놓은 것을 깨달았다. 큰일이다. 나 여기 이렇게 갇혀 있다간 머리 꿰맨거 때문이 아니라 불안증으로 죽어버릴 지도 모른다. 병동으로 뛰어갔다. 바쁜 간호사들 붙잡고 있는 말 없는말 보태가며 내가 왜 집에 가야 하는지 한참을 설명했다. 그제서야 드리미는 서류 한 장에 사인을 하고 거기를 나올 수 있었다. 집까지는 그 여자가 태워다 줬다. ’정말 괜찮으시겠어요?‘’네 괜찮습니다. 폐가 많았습니다. 죄송합니다.‘ 그 다음날 부터 보험회사라며 전화가 왔다. 지금 합의를 하면 돈을 얼마를 받을 수 있고 그래서 블라블라,,, 맘대로 해라 했다. 돈 받으면 술이나 사먹지 뭐. 근데 뭔가 상당히 불편한 일이 벌어졌다. 뛸 수가 없다. 내 태생적 불안을 떨쳐버리기 위해선 매일 뛰어야 하는데 뛰니깐 허리도 아프고 머리도 울린다. 젠장. 살살 걸을 수밖에 없다. 집을 나서 걷기라도 할려는데 차가 한대 온다. 왠지 익숙한 차다. 차에서 내리는 그녀를 보고 차가 왜 익숙한 지 알 수 있었다. 내가 뛰어 들었던 바로 그 차였다. 그녀가 화들작 놀란 눈으로 묻는다.’어디 가시게요? 필요한 거 있으면 말씀하세요. 제가 사다 드릴게요.’‘아, 아닙니다. 그냥 산책 좀 할려구요. 보험회사랑 합의는 끝냈습니다. 그것 때문이라면 안 이러셔도 됩니다.’ 그러고 돌아서서 걸으려는데, ‘사람이 왜 그래요? 걱정 되서 이러는 거잖아요?’ 라고 그런다.‘아, 네, 감사합니다. 더 걱정 안하셔도 됩니다. 전 오늘도 걷기라도 해야 해서요. 그럼, 이만.’ 그러고 가던 길을 걔속 걸었다. 뒤에서 차가 따라 온다. 내 옆에 붙더니 창문을 내리고 그녀가 말한다.‘바람 쐬시려는 거면 걷는 것 보단 드라이브 어떠세요? 몸도 성치 않으실텐데.’ 아, 이 여자 오지랖 넓은 사람이구나. 더 이상 거절하는 것보단 그냥 타는 게 속편하겠다. 싶어 차에 탔다. 그녀는 정말 드라이브 하기 좋은 길만 택해 나를 태워다 줬다. 매일같이 뛰던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훨씬 후련하고 속이 탁 트였다. ‘감사합니다’ 진심이었다. ‘뭐가요?’‘드라이브 시켜 주셔서요.’‘하하 이제야 얘기 같은 얘길 하시는 군요. 그럼 내일도 시켜 드릴까요?’ 그녀는 그 다음 날도 왔다. 그 다음 날도. 한 2주 정도 매일같이 찾아와 드라이브를 시켜 주며 이런 저런 얘기들을 했다. 그러면서 그녀는 내가 백수 건달에 엄빠에게 물려받은 돈으로 먹고 사는 한량이란 것을 알게 됐고 난 그녀가 대기업 임원이란 것을 알게됐다. 멋있었다. 외모도 빠지지 않는데 직장까지 있고, 나랑은 차원이 다른 세상에 사는 사람 같았다. ‘그럼 평소에 뭐하고 지내세요?’‘그냥, 뛰기도 하고 걷기도 하고,,, 별로 하는 건 없어요. 저,,, 사실 불안장애가 있거든요. 이런 저런 치료도 해 보고 약도 먹어봤지만 별로 효과가 없었어요. 그것 때문에 직장 생활도 그만 두고,,, 이렇게 혼자 살게 됐구요. 뛰거나 걸으면 그나마 좀 편해져요. 그래서 그날도,,,’‘아~ 그러시군요,’ 한참을 침묵하던 그녀가 다시 얘기를 시작했다. ‘사실 저도 정신적으로 문제가 좀 있어요. 우울증이 있어요. 다행히 전 약물치료에 반응이 좋아서 약으로 조절하고 있죠. 우울증으로 입원도 해봤어요. 폐쇄병동에요. 정말 죽을 맛이었어요. 지금처럼 사람처럼 사는 것도 다 의사 선생님 덕분이죠. 아! 이런 뜬금 없는 공감대라니. 딱 질색이다. 그래서 뭘 어쩌란 건가? 나랑 살아 주기라도 할려구??? ‘저 이만 내리겠습니다.’‘왜요? 제 얘기가 어디가 불편 하셨나요? 그렇담 정말 죄송해요.’‘아, 그런 건 아니구여. 오늘은 좀 걷고 싶네요.’‘ 아 네 그러세요 그럼. 내일은 머리 꿰맨서 실빼는 날인 것 아시죠? 내일 데리러 올게요.’아 벌써 시간이 그렇게 흘렀구나. 이제 좀 뛰어도 될까? 싶어 몇걸음 뛰어봤더니 괜찮다. 그래서 그 날은 뛰었다. 그 다음날 정말 그녀는 자기가 보호자라도 되는 양 데리러 왔다. 그녀의 차를 타고 병원엘 가서 실밥을 빼고 치료를 마무리 지었다. 절대안정 등등의 쓸데 없는 소리들을 잔뜩 듣고. 오는 길에 그녀가 얘기했다.‘저기 괜찮으시면 제가 치료받는 의사 선생님 한번 만나 보시는 건 어떠세요? 저도 그 선생님 만나기 전까지는 치료에 효과가 별로 없어서 굉장히 힘들었거든요. 입원하기를 밥먹듯하고, 사람이 사람이 아니었어요. 어머, 그 쪽이 그렇단 얘긴 아니구요.’ 의사라면 지긋지긋하다. 대체로는 어릴적 트라우마부터 시작해서 폭력적 경험 등등 블라블라 하다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부모님을 원인으로 지목하고 끝냈다. 다 헛소리 들이었다. 난 부모님이 돌아가시기 이전부터 태생적으로 불안했다고. ‘사양하겠습니다. 의사라면 많이 만나봤습니다. 다 거기서 거기예요.‘’맞아요. 그렇게 생각하시는 것 이해해요. 그러니깐 수 없이 많이 만난 김에 딱 한번 더 만난다 생각하시고 한번만 더 만나보세요. 이 분은 학회에서도 꽤 유명하시고 저같은 난치성 케이스들도 많이 봐 주셨데요.‘ 난치성이라,,, 스스로를 그렇게 지칭하는데 좀 마음이 열렸다. 스스로의 병증에 그렇게 솔직한 사람은 많지 않은데,,, 음,,, ’네 그럼 한번 만나 보겠습니다.‘ 그래서 그 의사의 병원과 연락처를 받고 전화로 예약을 잡았다. 그녀는 내 집에 다 오자 ’혹시 괜찮으시면 식사 같이 하실래요?‘라고 그런다. 갑자기 식사는 왜??? 혹시 이 여자 나한테 관심있나??? 내가 놀고 먹고 산다고 수백억이라도 물려 받은 줄 알고 있는 걸까??? 라고 생각하는데 ’별 뜻은 없어요. 그냥 저녁 먹을 시간이라…‘라고 그런다. 그렇네. 저녁 먹을 시간이네. 뭐 그러지 뭐. ’네 그러시지요‘ 밥 먹으면서 이런 저런 얘기들을 했다. 얘기 중에 ’그렇게 계속 아무 일 안하고 사셔도 괜찮으신 거예요? 제가 의사는 아니지만 우울증이나 불안장애의 경우는 사회적 지지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그러더라구요,‘ 역시 이 여자 내 재산에 관심 있었던게 분명하다. ’아 사회생활하면서 민폐를 많이 끼쳐서요. 이러다 다른 사람들 일까지 망치겠다 싶더라구요‘ 그렇게 대답하고 이후 얘기들에는 건성건성 대답하고 헤어졌다. 정신병원 예약일이다. 또 한 번 귀찮은 일을 해야 하지만, 워낙 용하다 그러니 한번 속는 샘 치고 가 보기로 하자. 진료실에 들어가니 보통의 병원과 다르지 않았다. 의사가 대뜸 묻는다. ’어디가 불편하세요?’ 심리 분석부터 할려고 덤비는 다른 정신과 의사들과는 좀 달랐다. ‘아 네 불안장애로 왔습니다.’‘아,네. 불안 장애는 처음 어디서 진단 받으신 건가요? 약물치료 경력은 어떻게 되시구요?’ 이후 문진 과정에서 느낀 점은 이 의사는 정말로 정신 질환을 감기나 맹장염 같은 일반 질환과 똑같이 다룬다는 것이었다. 의외로 그 점이 참 편하고 마음이 가벼웠다. 이 후 혈액검사를 포함하여 몇가지 간단한 검사를 하고 다음 진료 예약을 잡았다. 그리고 약처방을 받았다. ‘약은 꼭 드셔야 합니다’ 의사의 마지막 말이었다. 처방전 지시대로 약을 성실히 먹었다. 꽤 반응이 좋았다. 예전처럼 방을 뛰쳐나가 뛰어야겠다는 생각도 줄어들고 아무 일 없이 살아가는 내 삶도 되돌아보게 되었다. 나도 취업을 해야 하는 걸까? 사실 나도 꽤 좋은 대학을 좋은 성적으로 졸업하여 대기업에 다니던 촉망받는 엘리트 였다. 그 일이 있기 전 까지는. 그 일이란 출장지시를 받고는 그대로 집으로 들어가 꼬박 일주일을 방에 쳐박혀 있었던 일이다. 당연히 직장은 잘리고, 이후로 난 매일을 그렇게 불안에 시달리며 뛰고 걸으며 혼자 살아왔다. 인터넷으로 취업정보를 알아본다. 경력직 중에 나에게 맞는 일이 꽤 있었다. 몇 군데는 면접 보러 오라는 곳도 있었다. 후후 나 아직 안죽었군. 그렇게 약을 먹으며 하루하루 지내다 보니 다음 진료 예약일이 되었다. 진료실에 들어가자마자 의사가 말을 한다,‘환자 분은 불안 장애가 아니라 양극성 장애의 조증 에피소드에 해당합니다. 그에 해당하는 약물치료를 하겠습니다. 그외 군더더기 말들은 없었다. 환자들이 많아 매우 바쁘게 진료를 보고 있었다. 아! 애초에 진단이 틀린 것이었구나. 그래서 치료에 반응이 없었던 거구나. 이 의사에 대해 신뢰감이 생기며 약을 처방받고 다시 예약을 잡았다. 집에 오니 그녀의 차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잘 지내셨어요? 병원은 잘 다녀오셨구요?‘ 와! 내 진료일까지 기억하고 있었다니 이 정도면 스토킹 아닌가? ’네 병원은 잘 다녀왔습니다. 근데 어쩐 일로,,,???‘’어머 어쩐 일이라뇨? 좀 섭섭한데요. 환우들의 동료애 정도로 해두죠. 점심 안드셨죠? 제가 살게요. 우리 점심 같이 해요.’ 또 얼떨결에 따라가 밥을 같이 먹는다. ‘의사 선생님 어땠어요? 괜찮죠? 꾸준히 진료 받아보세요. 호전이 있을 거예요.’‘’아, 네. 기대한 것보단 훨씬 좋더군요.‘그녀는 날 집에 데려다 주고 떠났다. 그녀의 나에 대한 관심은 뭘까? 왜 나한테 이렇게까지 하는 걸까? 도저히 알 수가 없다.
그 의사의 처방대로 약을 먹으니 확실히 호전이 있었다. 슬슬 놀고 먹는 데도 진절머리가 나던 참에 직장을 구해 보기로 했다. 경력직이라도 대기업에 들어가기는 좀 힘들고, 유망한 스타트업 중 나의 경험이 도움이 될 만한 곳 몇 곳을 추렸고, 그 중 면접을 통해 최종 합격한 곳이 있었다. 첫 출근 날, 이런 저런 일들을 배우고 인수인계 받고 하면서 바쁘게 보냈다. 바쁘게 보내다 보니 예전 같은 불안감은 없는 것 같다. 퇴근길,,, 그녀가 집 앞에서 나를 기다린다. ’직장 구하셨군요. 옷차림이 근사한데요? 하하 같이 저녁 하시죠,‘’또 얼떨결에 따라가 같이 밥을 먹었다. ‘저,,, 교통사고 가해자에게 가져 주시는 관심 치고는 좀 과하신 것 같은데요. 아 물론 덕분에 좋은 의사 선생님도 소개받고 저한테는 확실히 좋은 변화들이 있었고,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근데,,, 저 왜 이러시는 거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그날, 그러니깐 제 차에 부딛히시던 날, 선생님 얼굴이 제 차 앞유리에 비취면서 보인 선생님 눈에서 구조를 부탁하는 간절한 눈빛을 봤어요, 제발 살려 달라고. 나 죽을 것 같다고. 그렇게 부탁하는 간절한 눈빛이 내내 제 마음을 붙들었나봐요. 많이 부담스러우셨어요? 그럼 이제 그만 오도록 할게요. 그동안 실례가 많았어요.’‘아뇨, 뭐 불쾌하다거나 그런 건 아니구요,,,’그 날은 그렇게 어정쩡하게 헤어졌다. 나는 이후 바쁘게 직장생활을 했다. 묵혀둬서 그렇지 나도 쓸모가 있었다. 회사에서도 만족스러워 하는 것 같았고,,, 약물치료 반응도 매우 좋았다. 악마처럼 나를 쫓아다니던 불안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점점, 내 삶은 정상을 찾아갔다. 생각해 보면 그게 다 그녀 덕분이다. 어느날 문득 그녀 생각이 났다. 잘 지내고 있는 걸까? 불안감의 수렁, 그 절벽 끝이 서 있던 나를 구해 준 사람인데… 나는 용기를 내 그녀에세 전화를 했다. 전화를 받지 않는다. 그래, 내가 너무 방어적으로 대했지. 나같아도 나같은 놈에겐 정떨어졌을 거야. 그렇게 생각하고 집으로 향하는데, 저 멀리, 집 앞에,,, 그녀의 차가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