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언젠가 부터 가슴이 따갑고 온 몸이 따가웠다.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가슴만 따가울 때는 숨 쉴때만 따가워서 폐나 심장에 문제가 있는 것인가 걱정을 했는데, 따가움의 범위가 점점 커지더니 온 몸의 피부로 번져갔다. 병원에도 수도 없이 다녀봤지만 이렇다 할 진단을 받은 적이 없었다. 가슴과 온 몸을 긁으며 초췌해진 몰골로 마지막으로 찾아간 곳이 어느 산골 암자의 한의사였다. 그가 정식 한의사 면허가 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런 걸 따질 상황이 아니었다. 이 죽음의 고통에서 건져만 준다면 그게 누군들 무슨 상관이겠는가? 그 사람을 소개해 준 친구와 함께 그를 찾아갔다. 처음 그를 보았을때 그 역시 효자손으로 등을 긁고 있었다. ‘선생님도 간지러우신지요?’라는 뻘쭘한 질문에 그는 답하지 않았다. 짜증스러운 얼굴로 등을 긁어대더니 ‘그거 공기 알러지야.’라고 한마디 했다. 공기 알러지??? 세상에 알러지는 많이 들어 봤고 심지어 쌀 알러지라는 것도 있다는 말을 들었어도 공기 알러지라니? 매일 숨을 쉬고 살아야 하고 매일 피부와 접촉하며 살아야 하는 공기에 알러지가 있다니. 쉽사리 믿기지도 않고 처음 보는, 의사 같지도 않은 사람의 한마디를 그대로 믿을 수는 없었다. ‘네? 공기 알러지요? 그런 것도 있습니까?’ 의심과 비아냥에 가득찬 내 질문에, ‘더 이상 할 말 없으면 꺼져.’라고 신경질 적으로 답했다. 박차고 나오려는데, 친구가 말렸다. 기왕 여기까지 온 거 얘기나 더 들어보자는 것이다. 내키지는 않았지만 친구의 만류에 얘기나 더 들어보기로 했다. ‘공기 알러지가 뭔지요? 원인은 뭐고 치료법은 있습니까?’‘흠...’그는 한참을 망설이다 결심이나 한 듯 입을 열었다. ‘공기 알러지는 마음의 병이 신채의 증상으로 전이된 병이지. 그런 건 아주 흔해. 신체화장애라고 부르는데, 공기 알러지는 신체화 장애 중에서고 아주 희귀한 종류라고 할 수 있어. 공기 알러지를 일으키는 마음의 병은 세상을 견디다 못해 세상을 거부하게 된 일종의 우울증이라고 할 수 있지. 문제는 이건 항우울제로도 알러지약으로도 치료가 안된다는거야. 치료법은 없어. 나처럼 공기 좋은 암자에서 살면서 버틸 수 있을 때 까지 버티다 죽거나, 그냥 살다가 가려움에 미쳐 죽는 수밖에 없어.
멍했다. 공기 알러지란 생소한 말도 멍했고, 내가 그 동안 그토록 세상을 거부해 왔는지도 멍했고, 결국 죽는다는 것도 멍했다. 그러나, 여기서 끝낼 수는 없었다. 원인이 세상에 대한 거부감이라면 세상을 거부하지 않으면 되는 것 가닌가? 그래, 세상과 삶을 사랑하자. 착하게 살자. 기쁘게 살자. 그는 그렇게 다짐했다.
’하하하하하하하 안녕하세요‘그는 하루의 아침을 그렇게 유괘하게 시작했다. ’아 제가 하겠습니다. 제가 대 드리죠.‘직장생활의 대부분을 유쾌하게 할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했다.그러나, 저녁이 되면 찾아오는 울분은 어찌할 수가 없었다. ’왜 내가 그런 말도 안되는 병에 걸렸는가? 세상에 우울증 환자가 얼마나 많은데 유독 나만 이런 이상한 현상을 겪어야 하는가?‘ 그래서 술을 마시며 코메디 프로를 보다가, 술만 마시게 되었다. 코메디 프로가 하나도 유쾌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술은 잠시잠깐의 즐거움을 주지만 궁극에는 우울증을 악화시킨다. 그래서 그는 세상을 사랑하려는 필사의 노력에도 불구라고 우울증은 심해지고 공기 알러지 증상은 더 심해졌다. 그는 절망적이었다. 매일 매 순간의 전신 가려움과 가슴통증, 호흡곤란과 싸워야 했고, 긁은 피부에서는 피고름이 흘러내렸다.
그는 마지막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그 암자의 그 사람을 찾아갔다. 살려달라고 애원했다. 그 사람도 이번에는 진지한 표정으로 응대했다. ‘막바지까지 온 게로군.’그를 보자 그 사람이 뱉은 말이다. ’자네 여기에서 지낼 수 있겠나?‘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어딘들 여기가 훨씬 나을 것 같았다. ’네‘
그렇게 그의 암자 생활을 시작 되었다. 특별히 할 일은 없었다. 병을 고치기 위한 비법 같은 것도 없었고, 소림사 무승들 같은 생활도 아니었다. 단 저녁 명상 시간이 있었는데, 그렇다고 특정주제가 있는 것고 아니었다. 그냥 의식의 흐름 대로 눈을 감고 있으면 되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졸리기도 하고 잡념만 가득하던 그의 의식을 자연스레 자신이 세상을 거부하게 된 이유들로 초점이 맞춰줬다. 처음 떠오르는 것이 어릴 적 동네 애들한테 맞고 다니던 일, 학창시절 왕따를 당해 자살을 시도했던 일, 등등 그가 세상을 미워하게 한 이유들이 하나 둘 떠올랐다. 자, 그럼 이걸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누군가 용서가 마음의 응어리를 풀어준다고 했던가? 그렇다. 그는 용서를 하기로 했다. 그를 괴롭히던 이들을 일일이 수소문 하여 용서를 하러 갔다. 그런데 왠걸, 모두들 잘 살 고 있었고, 그를 괴롭히던 기억조차 못하고 있었고, 용서가 필요한 일말의 죄책감도 갖고있지 않았다.
그는 다시 암자로 왔다. 암자의 절벽 밑을 내려다 보니 거기 떨어지면 이 가려움증에서 벗어나 시원해질 것 같았다. 그는 스스럼 없이 몸을 날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