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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arephath Oct 05. 2024

[에세이]신은 너희들의 사랑을 비춰주지 않는다

오늘은 그녀를 만나는 날이다. 설레임이 사라진 지는 벌써 오래됐고 이제는 그녀를 본는게 무섭기까지 한다. 그럼에도 그녀를 계속 만나는 것은 일종의 관성이랄까? 왠지 그녀에게 잘못하며 천벌을 받을 것 같은 종교적인 두려움 같은 것까지 생겼다. 여튼 난 아직 그녀 곁에, 그녀는 내 곁에 있다. 우리는 종교단체에서 만났다. 교회의 미적지근함에 지친 젊은이들의 열정을 이용하여 만든 단체들이 많다. 그 중에서 이 단체는 선교를 모티브로 하여 만든 단체로서 거기 오는 모든 젊은이들을 다 선교사로 만들 기세였다. 여튼 그런 곳에서 만났으니 당연히 서로에 대한 호감도에도 종교적 열심이 빠질 수 없었다. 둘 다 퍽이나 그 단체에 열정적으로 참여하던 중 만난 사이라 기독교와 선교가 사라지지 않는 한 우리 둘의 관계는 영원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나 인간은 집단의 가치보다는 개인의 행복과 가치를 우선시하기 마련이다. 집단의 가치가 잠시 개인의 열심과 행복을 채워줬을지 몰라도 두 남녀가 사귀는 목적은 단체의 부흥이 아니다. 일반의 남녀가 만나면서 추구하는 것들을 똑같이 추구하는 것이 정상이고 그러다 보면 둘 사이에 단체의 의미는 점점 퇴색되고 서로가 이성에게서 원하는 것들을 탐닉하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탐닉하다 시들해지면 둘 사이는 단체의 의미만큼이나 빨리 매말라 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래서, 종교적인 이유로 이성교제 하지 말라고 내가 후배들에게 강조하고 다닌다. 어느 가수 팬클럽에서 만나 결혼하는 커플을 본 적이 있는게 나는 이들의 예후도 비슷할 것이라 본다. 둘이 저녁 먹고 나면 그 가수 영상 돌려 보는게 일상이라는데, 둘 사이에 그 가수가 어떤 의미가 있을까? 결국 그 가수를 계속 좋아하건 말건 둘 사이는 보통의 커플의 길을 갈 것인데 그 가수가 그들의 길을 결코 지켜주지 않는 것과 똑같다. 똑같이 종교가, 신이 둘의 사랑을 결코 보증하지 않는다. 시들해지면 시들해지는 것이다. 하나님이 살아 계셔도 둘이 싫어지면 그만 헤어지는 편이 낫다. 우리는 하나님의 이 특별한 단체에서 만났으므로 세속의 여느 사랑과 달리 결코 변함이 없어야 하는 것이 아니다. 샤랑은 너와 나의 행복과 결심, 책임을 기반으로 가꾸어져야 건걍하게 자란다. 종교단체건, 가수 펜클럽이건 그 무엇도 둘의 사랑을 비춰주지 않으니 빨리 꿈 깨시는 것이 좋다. 둘의 사랑은 둘의 사랑과 의지만이 지켜줄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이제 그녀에게 그것을 이해시켜야 한다. 그러나 종교적 충만함과 우리의 관계를 비례관계로 인식하는 그녀에게 나 이제 너 사랑하지 않는다고 그렇게 말할 수는 없다. 최대한 상처를 주지 않는 선에서 그녀를 설득해야만 한다.

처음으로 시도한 것이 우리 사이를 공고히 묶고있다고 생각하는 그 단체에 대한 환상에서 그녀를 깨어나게 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그 단체는 신학적으로 이런 저러한 문제가 있고 대표의 행태에 이런 문제가 있다는 등 단체를 공격하는 말을 지나가는 말로 몇마디 했는데, 거의 사탄 취급 받을 뻔 했다. 나를 위해 더 기도하겠단다.

그럼 이제 뭘로 하나님은 선교를 위해 우리를 묶지 않았으며 결혼은 선교를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어떻게 이해시켜야 할 것인가?

좀 비겁한 방법이지만, 아주아주 타락한 방법을 쓰기로 했다. 딥키스를 뜬금없이 날리는가 하면 몸 구석구석을 애무했다. 어럽쇼? 팔짱끼고 영화보는 걸 데이트의 처음과 끝이라 생각하는 줄 알았는데 이건 또 받아들이네? 아주아주 흐뭇해하는 얼굴로 여기 저기를 빨리고 있는 것이다. 뻥찐다는게 이럴때 쓰는 표현인가?

어쩔 수가 없었다. 사귀는 시간은 길어지고 그쪽 집에서도 날 보고싶어하고 우리 엄마도 사귀는 아가씨랑 식사나 같이 하자고 넌지시 말씀하신다. 어쩔 수 없이 먼저 그녀를 우리 집에 데려갔다. 근데, 허허허 의외로 해결은 가까운 곳에 있었다. 우리 엄마가 아가씨 맘에 안드신단다. 머 이런 저런 그러한 것들이 우리 집과는 맞지 않는다고 절대 반대의 입장을 취하셨다. 이렇게 아들의 무거운 짐을 일시에 벗겨주시는 경우도 있으셨나? 여튼 감사하게도 아주아주 간단하고 가까운 곳에 관계를 정리하는 방법이 있었던 것이다. 그 아가씨는 교회를 옮겼고 옮긴 교회에서 금방 다른 남자 만나 결혼해서 잘 산다고 그러더라. 진심으로 행복을 빈다.

사랑은 세상에 아무것도 없다 해도 너와 나만 남았을 때 서로를 사랑할 수 있는 관계인지를 물어야 한다. 둘이 결혼을 하게되면 세상에 아무도 없고 단 둘이서만 모든 난관을 헤쳐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랑과 결혼을 생각할 때는 종교적 비젼이나 가치관 같은 것을 개입시키지 말기를 바란다. 얼마나 세상 모든 것, 설령 신이 없다고 해도 나만 바라보고 살 사람인지, 또 나는 상대를 그렇게 사랑하는지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결정하기 바란다.

이상 선교단체에서 여자 만나 코 꿸뻔한 덜떨어진 놈의 좀 특이한 연애담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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