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적 이유로 연애하지 맙시다.

by Zarephath

그녀와 나는 종교단체에서 만났다. 그런 만남들이 그러하듯 둘의 만남에는 일종의 종교적 의무감 같은 것이 있었다. 공동의 종교적 목표를 이루기 위하여 두 사람은 더욱더 뜨겁게 사랑해야할 의무감같은 것이 생기곤 한다. 같이 종교집회에 참석하고나면 이 감정이 연애감정인지 종교적 카타르시스인지 헷갈릴 겨를조차 없었다. 그렇다고 집회말미에 키스를 하거나 하지는 않는다. 우리의 주된 대화의 소재는 세계선교, 성령충만 등이었고 우리둘에 관한 이야기는 거의 없었다. 서로 사랑스러운 얼굴로 쳐다보며 '오빠, 성령충만. 오빠 모든 민족이 복음을 받을때까지.'라며 기뻐하곤 했다.


둘이 같이 아프가니스탄에 간 적이 있다. 단기선교차 방문한 것이었는데 여러가지 일들을 했다. 우리는 알아듣지도 못하는 사람들의 증상호소를 들으며 아프다고 하는거 같은 부위에 로션을 발라주며 열심히 기도를 했다. 실제로 그렇게 하면 나을 수도 있다고 우리는 굳게 믿고 있었다. 나는 의사이고 그녀는 물리치료사이다. 환자보기 무척 싫어하는 나로서는 그렇찮아도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들의 증상호소가 무척 짜증스러웠다. 그리고는 열심히 환자의 증상을 듣는 척하고는 비타민을 처방해주었다. 우리의 모토는 '우리는 일하고 하나님은 행하신다.' 였다. 그 믿음 굳게 붙잡고 우리는 열심히 비타민을 처방하고 로션을 발라주었다.


우리는 가기 어려운 외국에 갔다는 들뜬 마음으로 여기저기 사진을 찍어댔다. 그 사진속에는 미군캠프도 있었다. 어느 순간 갑자기 미군이 한명오더니 모든 사람의 카메라를 검사하는 것이었다. 실제로 그 사진들 속에는 미 병영의 위치같은 것들이 정확하게 찍힌 것들도 있었다. 그 미군이 인간성이 좋았는지 우리가 멍청해 보였는지 카메라 속의 사진만 다 지우고 카메라를 돌려주는 선에서 일을 일단락 지었다.


드디어 귀국날이 되었다. 미국영주권 자들은 이미 먼저 빠져나간 이후 한국인들만 남아있는 상태였는데 우리는 아프가니스탄 숙소의 마지막을 찬양으로 가득채웠다. 이후 우리를 인솔하던 선교사들이 우리에게 주의주기를 지금 외국에서는 큰 이슈가 되고 있는 사건이기 때문에 공항에서 기자들이 질문을 하더라도 아무 대답도 하지 말라고 교육을 하였다. 우리는 꼭 그렇게 하리라고 다짐을 하고 한국 공항에 내렸다. 기자라고는 한명도 볼 수 없었다. 우리는 너무나도 유유히 공항을 빠져나와 각자의 갈길로 돌아갔다.


우리는 그 이후 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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