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

by Zarephath

<자살>


나는 또 고시원 침대에 가방을 던져 놓고 좁은 고시원 책상에 앉았다. 책상에는 어제 하다 만 자살 도구들, 면도날, 피 묻은 휴지 등이 널브러져 있었다. 침대 한편에는 목매다 실패한 허리띠가 매달려 있다. 나는 의대생이다. 그래서, 사실 리도카인 국소마취를 해서 고통 없이 손목을 그을 수도 있고, 꼭 손목이 아니더라도 경동맥이나 대퇴동맥을 찔러서 죽는 방법도 시도해 볼 수가 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는 최소한 자살은 최대한 평범하고 지질한 방법으로 성공하고 싶달까, 아니 그냥 진짜로 죽는 건 무서워서 일 수도 있다. 오늘은 꼭 성공하리라. 그는 먼저 리도카인 국소 마취제로 손목을 마취한 후 면도날로 손목을 그을렸는데, 이게 인대랑 너무 붙어 있어 인대까지 자르기는 싫었다. 그냥 피만 철철 흘리며 죽고 싶었지 인대까지 잘라먹고 싶지는 않았다. 에라 모르겠다. 오늘은 마취도 잘 됐도 그냥 확 그어버렸는데, 이게 동맥은 안 잘라먹고 애꿎은 인대만 잘라먹고 말았다. 후~ 그 길로 나는 병원으로 갔다. 누가 봐도 자해가 분명해 보험도 안된다. 돈만 쓰고 나는 고시원으로 돌아왔다.

후~ 또 실패다. 아니, 당연히 실패다. 사실, 나한테는 뚜렷한 자살 동기가 없다. 그저, 던져진 삶, 그 시작을 인지하고 나니 뭘 해도 그렇게 시시하고 재미없고 허무할 수가 없었다. 굳이 죽을 이유를 대라면 안 죽을 이유가 없어서였다. 그러니 그 시도가 허접할 수밖에 없고 소극적일 수밖에 없고 매번 실패로 끝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언젠가부터 나와 죽음과의 놀이는 시작되었고, 매일의 과제는 ’ 오늘은 어떻게 죽지?‘가 되어버렸다.

그렇다. 그건 죽음과의 놀이였다. 삶과는 놀 수가 없었다. 내 의지 없이 날 이 세상에 던져버린 그 무엇과는 감히 같이 놀 엄두가 안 났지만, 죽음은 선택할 수 있는 것. 얼마든지, 밀고 당기며 죽음의 언저리에서 놀아날 수가 있었다. 진짜로 죽어버리는 척 죽음을 속이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병원엘 찾아가고, 허접한 자살시도 갔다가도 목이 질식해 사경을 헤매기도 하고, 그야말로 죽음을 속이며 함께 놀아나는 재미는 짜릿하기 이를 데 없었다.

이번에는 대퇴동맥에 카테터를 삽입하기로 했다. 꽤 큰 동맥이고 카테터 삽입하기도 수월한 터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병동 실습 시간에 카테터 세트를 슬쩍 하나 가져와서는 고시원 책상에 툭 던졌다. 그리고, 라면을 끓여 먹고, 놀이의 순간을 기대하며 맥주를 한 잔 했다. 모든 준비를 끝내고, 손가락으로 대퇴동맥을 만지니 촉지가 된다. 이제 카테터를 삽입하고 내버려 두기만 하면 몸 안의 혈액이 쭉쭉 분출되어 나와서 나는 아마 죽을 것이다. 카테터를 잡아 빼지 않는 한. 카테터가 한 세트 밖에 없어 그는 조심조심 설명서를 읽으며 대퇴동맥으로 카테터를 삽입했다. 정말, 피가 분출하듯 쭉쭉 뿜어져 나왔다. 신기했다. 그리고 희열을 느꼈다. 방바닥은 금세 피바다가 됐고 사방은 피비린내로 진동을 했다. 아뿔싸, 여기가 좁디좁은 고시원이란 생각을 미처 하지 못했다. 문 밖으로 금세 새어 나가는 피, 그리고 "이게 무슨 냄새야?"라고 웅성거리는 사람들. 나는 황급히 카테터를 잡아 빼고 걸레질을 했다. 피를 닦았다. "무슨 일이야?""이게 무슨 피야?"나는 어리바리 대답했다. "아, 실습이 있어서요. 죄송합니다.""나 원 참 실습은 학교에서 하라고." 그렇게 이번 놀이도 실패로 끝나버렸다.

자! 그럼, 이 좁은 고시원에선 방법에 한계가 있고, 좀 넓은 곳으로 나가야 하니 않을까? 그러나,,, 나는 아주아주 은밀하고도 조용히, 최대한 들키지 않고 죽음과 단 둘만의 시간을 갖고 싶었다. 그래서 일찌감치 생각은 했지만, 고층건물에서 뛰어내린다거나 하는 방법은 선호하지 않았다. 침대를 보니, 얘전제 실패했던 흔적이 있다. 침대 모퉁이에 달린 허리띠. 거기에 목을 매고 맨 정신에 목을 조른 적이 있다. 성공했을 리가... 문득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술에 만취한 상태로 무게중심을 최대한 낮추면 목이 졸려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곧장 편의점으로 갔다. 소주며 양주며 닥치는 대로 술을 샀다. 안주 하나 사지 않고 술만 사가는 나를 이상하게 쳐다봤지만, 뭐 그런 거 신경 쓸 때가 아니다. 고시원에 들어서자마자 나는 술을 들이켜기 시작했다. 소주 한 병, 양주 두병,,, 거의 인사불성에 몸을 못 가누게 되자 나는 침대 모퉁이의 허리띠를 목에 감았다. 몸은 저절로 아래로 내리 깔렸고 목은 서서히 졸려 들었다. 아! 바로 이거야. 호흡이 안된다. 그러나 괴롭지 않다. 괴롭지 않은 것이 아니라 묘한 쾌감마저 든다. 그런데, 어~어~ 이게 뭐지??? 아랫도리 감각이 이상하더니 사정을 하고 말았다. 사정하는 순간, 헉 하고 숨을 몰아쉬는 것이 아닌가??? 이번에도 실패하고 말았는데, 아주 지저분하게 실패하고 말았다.

죽음과 노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고 항상 아슬아슬한 것인 줄은 알았지만, 최근처럼 낭패에 낭패를 거듭한 일은 없었다. 나는 묘하게 자존심도 상하고 영 바보가 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래, 뭔가 다른 방법이 필요하다. 번개탄 같은 건 좁은 고시원에서 냄새를 풍기기 쉽고 화재의 위험도 있다. 그건, 은밀하게 죽고 싶은 내 취향에 영 맞지가 않는다. 그럼, 무슨 방법이 있을까? 그때 불현듯 지나가는 섬광과 같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그래, 바로 그거야. 바로 pain shock. 신체의 고통을 극대화시키면 그 자체로 숍을 일으켜 죽는 방법이다. 그것이야 말로 죽음과 내가 유희를 주고받으며 오랜 기간 같이 놀며 죽어갈 수 있는 방법인 것이다. 그래서, 난 그때부터 내 몸에 통증을 유발할 수 있는 갖은 방법들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면도날로 몸 긋기, 손톱 밑에 바늘 끼우기, 귓구멍에 송곳 집어넣기, 요도에 이물질 집어넣기, 전기 고문하기, 항문을 최대한 찢어보기 등등,,, 말초적으로 아플 수 있는 모든 방법들을 고안하기 시작했고, 수집하기 시작했고,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하나씩 실천해 보기 시작했다. 처음엔 정말 아파 죽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그 아픔의 역치가 점점 높아지더니, 더더욱 과격하게 실행하지 않으면 아픔의 정도가 줄어드는 것이었다. 심지어, 결국에는 칼로 스스로의 두피를 벗겨내기 시작했고, 가죽을 벗겨내기 시작했다. 버틸 힘이 없어졌다. 그러나, 결코 비명은 지르지 않았다. 그렇지만, 인간의 생존 본능이란 것 때문인지, 억지로 억지로 살아 보겠다고 일어나려는 순간 피로 흥건해진 발바닥에 미끄러져 그만 뒤로 벌러덩 넘어지며 뒤통수를 땅바닥에 찧고 말았으며, 그 즉시 즉사하게 되었다. 결국, 나는 죽음과 오랜 시간 같이 놀다가 고통을 선택했으며, 그 선택으로 인해 주어지지 않은 죽음을 누리는 호사를 경험하게 되었다. 그대들이여, 생명은 우리의 의지가 형성되기 전에 던져지는 것이다. 죽음마저 우리의 의지와 무관하게 던져지게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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