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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ddhi kim Nov 30. 2021

죽음이라는 문턱

               죽음을 연습하는 방법

벌써 한 해가 저물어 가고 있다.

벅찬 희망으로 출발했던 2021년 새해맞이도 이제는 이별을 고하는 시간으로 접어든 것이다. 이 세상 모든 것은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게 마련이건만 우리 인간들 만은 그 끝이라는 걸 자꾸 부정하려 든다. 아마도 자신이 가진 모든 걸 결코 놓을 수 없다는 무서운 집착과 이기적인 탐욕 등이 그 내면에 흐르고 있기 때문이리라. 끔찍하도록 소중하게 여겼을 부귀영화나 사랑도 죽음이라는 문턱을 넘으면 끝이다. 가져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미리 나눠 주기도 하고, 사랑하는 상대방이 원하지 않는다면 놓아주기도 해야 하는데 그게 안된다.


이즈음 전두환의 죽음을 보면서 드는 생각이 있다. 그토록 호의호식하면서 천수를 누린 자의 배경에는 당해보지 못한 사람은 절대로 가늠 조차 할 수 없는 피해자들의 사무친 고통들이 한으로 뭉쳐져 있을 테니 아마도 죽음의 문턱을 넘는 순간, 어느 영화에서 처럼 수많은 원한의 에너지들이 그에게 몰려 들 거라는 생각이 든다. "아차" 하겠지만 이미 늦고 말았다. 하루가 멀다 하고 나오는 뉴스는 헤어지자는 연인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사건들이다. 정말 가슴이 미어진다. 인간만이 가진 삐뚤어진 탐욕과 집착이 이렇게나 무섭다. 그런데 죽음은 이 모든 걸 무용지물로 만든다. 그래서 죽음 앞에서는 누구나 숙연해지게 마련이다. 아무것도 요구할 수 없는  삶의 종결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극적인 삶이 아니 라도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은 죽음 자체를 생각하지 않고 살아가는 경향이 있다. 그러다가 때가 오면 놀라 허둥지둥한다. 그것이 죽음이란 어마어마한 사건은 아닐지라도 일상의 작은 일들을 겪으면서 크게 어쩔 줄 몰라한다. 그냥 놓아버리면 될 것을…. 그냥 이제는 죽었구나 하는 심정으로 다 놓아버리면 되는 것을…. 필자는 그것을 “죽음의 연습”이라고 말하곤 한다. 일상의 무슨 일이 닥치면 ‘아, 이제 마지막이구나’라는 마음으로 대한다면 뭐가 그리 두려울 것인가. 이별을 통보하는 연인도, 당신 때문에 고통의 나날을 보낸다는 사람들에게도 모두 이해하고 용서를 구하게 될 것이다. 이건 아주 자동 반사적으로 나오게 되어있다. 항상 자신 생의 마지막을 늘 염두에 두면 가능한 것이다. 자신을 놓아버리는 ‘무아’가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신에게 지나치게 집착하기 때문에 용서를 구하는 일도 놓아버리는 일도 모두 할 수 없다. 그런데 더 어처구니가 없는 일은, 자신의 잘못을 교회나 사찰에 가서 빌고 스스로 용서를 구했다고 여기는 일이다. 매주마다 헌금도 많이 하고 시주도 많이 했으니 내가 한 행위는 용서가 된다고 생각하는 일이다. 어림없는 소리다. 복을 주고 죄를 주는 자는 신이나 부처가 아닌 바로 상대방인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그들 마음 가운데 맺힌 것이 있다면 신이나 부처가 용서한다 해도 당신을 향한 그 매듭의 강한 부정적인 에너지는 풀어지지 않는다.  


때마침, 오늘 아침에 문득 멀리 프랑스에서 메일 한통이 날라 왔다. 

엄마가 폐암 선고를 받았는데 자신이 엄마를 위해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는 것이다. 무서워 떨고 있을 금발의 그녀가 확 애처롭게 다가온다. 가족의 죽음 이야말로 남은 이에게는 큰 고통이다. 남은 자들은 최선을 다해 떠나는 사람과 함께 해야 한다. 함께 있어 준다는 것 만으로 떠나는 자에게는 큰 위안이 되기 때문이다. 영국에 있는 엄마에게 어서 돌아가서, 엄마의 삶이 얼마나 훌륭하고 멋지셨는가를 이야기해 주라고 했다. 그리고 이렇게 낳고 길러 주신 은혜에 감사한다는 진심 어린 감사의 마음도 전하라고 했다. 그런 이야기들은 곧 떠나는 자에게 자긍심을 불어넣게 되어 지나온 삶에 대한 자존감을 높여 줄 수 있기 때문이며, 그 충만감은 떠나는 사람으로 하여금 불안과 두려움의 공포를 덜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죽음이라는 마지막 문턱을 앞에 두고 있다. 

그런데도 유난히 작은 일도 못 참고 전전긍긍하며 자신의 소중한 에너지를 소모하는 사람들을 대하노라면 참으로 딱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럴 경우 지금이 ‘죽는 순간이 구나’라는 심정으로 상황을 바라본다면 얼마든지 포용할 수 있고 그다음 순서로 진전될 수 있는 일들인데, 자신을 괴롭히고 주위 사람들도 힘들게 한다.  


우리의 삶은 하루하루가 마지막 종점을 향해 달려 나가는 시간이라는 열차에 올라타 있는 것이다. 이걸 눈치라도 채고 살아간다면 적어도 상대에 대한 미움이나 집착은 쉽게 놓을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상대가 누가 되었든 용서를 바란다면 진심으로 못할 일이 어디 있을까. 아마도 용서를 구하지 않고 사망한 누군가는 지금쯤 "아차" 하고 후회하겠지만 이미 늦지 않았는가 말이다.  죽음이란 그런 거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누구도 예외 없이 죽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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