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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ddhi kim Apr 23. 2022

메타버스의 시대, 인지 능력의 확장(Ⅱ)?

인간 인지능력의 무한확장 가능성을 말하다

지난번 “메타버스의 시대, 인지능력의 확장(Ⅰ)?”을 올리고 그 후속 타를 올리기로 했는데 벌써 시간이 많이 흘렀다. 브런치로부터 오랫동안 글이 올라오지 않아 그립다? 는 문자를 받고 나서야 지나간 시간들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아마도 필자는 그 후속타 예고? 에 대해 독자들로부터 여러 가지 질문들을 잔뜩 기대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기대는 “인간 인지능력의 무한 확장 가능성을 말하다”에서도 똑같았다. 필자가 일상생활에서 자주 지각(perception)하는 일이지만 그런 것이 일상적이지 않은 사람들에게 설명하기란 상호 소통이 없이는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이런 인간의 높은 인지능력은 일종의 직관이자 통찰력이며 탁월한 분별력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대화 상대방의 열렬한 관심과 이해력으로 중무장? 되어야 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면 벽에 대고 소리 지르는 것과 같다. 상대가 아무런 관심도 없고 이해할 준비도 안 되었는데 마구 설명해대는 것은 일종의 무리수가 아닐런지. 마치 일상에서 우리의 만남이 그런 것처럼. 상대가 관심도 별로 없는데 이쪽에서 아무리 멋 부리고 호의를 베푼다 한 들 아무 소용이 없는 것과 같다. 아마 그래서 지금까지 필자는 그 속편을 생각하지 않은 것 같다.

 

인지(perception)력이란 우리의 다섯 가지 감각(sensation)을 통한 지각으로 거기에는 대상이 무엇인가를 알아차리고, 이해하고 또한 더 나아가 해석하는 일도 포함된다. 그런데 뭔가를 알아차리거나 이해하는 데는 필수적으로 그 뭔 가에 대한 큰 관심과 기대로 인한 자극적인 심리가 수반되어야 한다. 그 수반된 조건들이 얼마나 크고 강렬한가에 따라 그의 인지능력은 얼마든지 향상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다른 필요충분조건들이 갖추어져야 하는 것도 있지만. 일상생활에서 그러한 예들은 수없이 많으며 또한 여러분도 당연히 일상에서 그렇게 지내고 있을 것이다. 말하자면, 내 관심밖에 일은 아예 듣거나 보거나 마주치고 싶지도 않는 일들이 그 단적인 예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인지력 향상이라는 고도의 능력은 이 정도의 관심정도가 아니라 오감을 통해 보고 느끼는 대상에 대한 내 몸의 반응에 끊임없이 주력하면서 그 데이터를 축적해 나가야 한다. 이것은 충분한 반복과 훈련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이것을 극적으로 설명하는   선조들의 좋은 비유가 있다.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 필자는 이 은유야 말로 인지력 향상에 얼마나 필수적인가를 절감한다. 뭐 눈에는 뭐만 보이도록 할 정도의  강력한 열정과 관심으로 인간에게 부여된 최상의 인지능력을 키우지 않고 서는 메타버스의 시대 그리고 앞으로 AI가 지배하는 시대가 올지도 모르는 먼 미래에 우리는 그것들을 절대로 능가할 수 없을 것이라서 아마 어느 영화에서 처럼 인간이 거대한 AI의 음모에 말려들 수밖에 없을지도 모를 일이다.   

 

필자는 여러 번 관련 학회에서 이렇게 중요한 인간 인지능력이 어디까지 가능할 수 있을 것인가, 나아가 고차원에 이르기 위한 방식과 필연성에 대해 발표했었다. 그런데 휴식 자리에서 나온 과학 관련 그리고 인문학 관련 연구자들의 질문과 의견의 내용들에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황당함과 답답함에 다시는 이런 자리에서 발표 따위는 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까지 했다. 돌이켜보면, 필자가 생각하는 그들에 대한 답답함 이란 어쩌면 누구나 그러하고 그들은 역시 나를 보면서 뭐 그런 걸 대단하다고 그러느냐고 할 것도 같다. 그 답답한 대화 내용은 대강 이러했다. “그럴 수 있는 것은 당신이나 할 수 있다”, “아프면 병원 가면 되지 뭘 그러냐” “우리 집 혹은 어느 지역은 수맥인가 아닌가” “아무개가 아픈데…. ” “……”…...”. 요약하자면, 그런 능력은 아무나 도달할 수 없다고 결론을 미리 내려 버린다거나, 아프면 병원 가서 검진받으면 되는데 뭘 그걸 미리 아는 게 중요한가 등등. 인지능력 향상에 대한 질의 대신에 자신과 가족에 대한 예측과 상담을 요구하는 내용이 주였다. 스스로 아는 방법 나아가 인간의 인지능력이 얼마나 위대할 수 있는가를 설명했는데도 그 방법에 대한 질의보다는 필자의 입을 통해 바로 그 결과만을 듣고 싶어 하는 그들을 보면서 참 한국인은 급하다는 생각이 절로 떠오른다. 그러면서 또 하나 느끼는 벽은 어느 분야의 전문가들이라 할지라도 자신이 종사하는 영역 이외의 분야에 전혀 관심도 눈도 돌리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심지어 어디서 감히 과학의 영역을 건드려 같은 의도로 분노를 드러내기도 한다. 도대체 왜 한국인들이 독일 그리고 영미 연구자들의 업적에만 몰두해서 해석해 대야 하는지, 인지학이나 과학철학에서도 왜 외국 연구자들이 내놓은 이론에만 갑론을박 몰두하는지 정말 모를 일이다. 아, 어쩌면 이래서 우리 한국은 과학계에서 노벨상 받은 사람 하나 없나 보다 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가 없다. 

 

이 칼럼 (Ⅰ)에서 필자는 퀄리아(qualia)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이 용어는 신경생물학 교수이며 1972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인 제럴드 에델만(Gerald Edelman)을 통해 필자가 알게 되었다. 그의 저서들은 한국에서도 <뇌는 하늘보다 넓다><세컨드 네이처>등등 여러 권이 번역된 바 있으며, 이 저서들을 통해 그는 우리의 뇌와 의식과의 연관성에 대해 폭넓은 지식을 던져주고 있다. 필자는 우연히 이 책들을 접하게 되었는데 필자가 자주 경험하는 인지력이 바로 퀄리아라는 학적인 용어로 정리할 수 있겠구나 싶어 너무 반갑고 놀라워서 그를 만나고 싶어 졌다. 왜냐하면 그는 책에서 그 퀄리아를 느낄 수 있는 방법을 알 수 만 있다면 좋겠다는 간절한 염원을 읽으며 그를 만나 알려주어야겠다는 절절한 생각이 들어 알아보니 그는 당시 한해 전에 세상을 달리 했다는 참으로 안타까운 정보를 얻게 되었다. 그렇다면, 그분에 대한 연구를 깊게 했다는 연구자라도  만나고 싶어 찾아 나서고 드디어 통화가 이루어졌다. 제럴드 에델만을 관심에 둔 동지 같은 반가움을 잠시 나눈 다음 내 생각을 대강 설명하니 대뜸 노발대발하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내용인 즉, 과학은 증명할 수 없으면 말도 안 되는 헛소리라는 거였다. 필자는 이런 류의 길길이 뛰는? 비난을 또 들은 적이 있었다. 지구학 전공자로부터 자기장을 기계 없이도 알 수 있다는 필자의 설명에 그는 그런 건 말도 안 되는 헛소리라며 일거에 거절당했다. 과학자들이 증명 없이는 모든 게 헛소리라고 한다면 왜 그 단서들을 스스로 증명해보려고는 안 하는가가 여전히 필자에게는 큰 의문이며, 이렇기 때문에 우리나라는 노벨상 수상자가 없을 거라는 강한 의구심을 지울 수가 없다. 모든 발명과 발견은 바로 아주 작은 하찮은 단서로부터 비롯된 예들이 우리 문명사에 수없이 많지 않은가. 왜 그걸 역사로만 배우고 실제 현장에서 연구하는 사람들은 도외시하는지 정말 모를 일이다. 어쩌면 그건 의식 저변에 한국인들 스스로에 대한 무시가 숨어 있는 건 아닐까.  한번은 미국 대학에서 강의를 하는 한국인 뇌과학자의 발표에서 필자는 이런 질문을 했었다. 왜 치매 치유에만 그토록 매달리는가 치매를 예방하는 방법을 더 열심히 해야 하는 거 아닌가?라는 질문에 대한 그의 대답은 내게 정말 충격적이었다. 그의 답변은 그런 연구는 기업체에서 돈이 들어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다. 매사가 인간의 진정한 행복을 위한 추구보다는 돈벌이가 먼저인 탐욕스러운 성향을 충실히 따르는 한 인간 인지능력의 향상을 통해 인간의 위대한 가치를 드높이고 찾는 일에는 관심이 적어질 수밖에 없지 않은가. 이제 전 세계에서 K 문화의 바람이 예술계를 비롯해 일어나고 있으니 과학과 인문학에서도 이런 일이 일어났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과 더불어 그것이 인류의 진정한 행복을 위한 길로 연결 되는 계기가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염원한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필자가 내린 결론은 앞으로 학계 발표는 안 하고 대신 이런 분야에 관심과 집중을 원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아낌없이 나누리라고 생각했다. 

이제, 지면이 다 된 거 같아 본격적인 이야기는 또 다음 (Ⅲ) 편으로 미뤄야겠다. 다음 편을 위해서 독자 여러분들은 결코 일상적이지 않는 새로운 모험을 향한 만반의 준비가 필요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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