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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ddhi kim Mar 18. 2021

나이 들어가는 즐거움

노인에 대한 몇가지 오해

요즘은 어디서나 청소년보다는 연세가 지긋 한분들을 더 자주 보게 되면서 고령화사회라는 말이 실감난다.

방송에서는 앵커가 정부 주요직 인사들이 70이 넘은 분이 세 분이고 내각 평균 나이가 60이 넘었다고 한다. 급기야 미래를 과거에 맡겨도 되는가 라는 멘트까지 나오는 걸 들으면서 순간 망연자실? 이라 할까 그런 느낌으로 먹먹해진다. 나이가 든 사람들은 미래로 향해 나가기 보다는 퇴행적?이 될 거라는 막연한 편견이다.  

이런 말을 들으면서 필자는 노인에 대한 오해가 정말 많다는 생각이 든다. 

 

이즈음 나온 새로운 데이터는 이러한 오해를 만들기에 충분하기까지 하다. 노르웨이 과학기술대학교 헤르먼더 시그먼스 교수팀은 14세에서 77세까지 917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하여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열정, 그릿(Grit; 장기적인 목표에 대한 인내와 의지), 긍정적인 사고 방식 사이의 관계가 어떻게 변하는지 조사했다고 한다. 시그먼스 교수는 이 상관관계가 14세부터 53세 까지는 거의 비슷하게 유지되다가 50대가 되면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해서 54세가 되면 거의 존재하지 않게 된다고 한다. 그러니 늙었다는 말이 이때부터 적용될 수도 있겠다. 그런데, 생각해보자. 젊음, 청춘이라고 하면 열정과 패기가 넘치는 아름다운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그러나 모든 젊은 청춘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니지 않은가. 이와 마찬가지로 노인도 아니 54세가 넘은 사람들이 모두 그 통계처럼 그릿이 없어진다고 여기지는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통상적으로 사람들은 전자인 경우에는 흔쾌히 인정해주지만 후자는 아니다. 나이 들었다는 것에는 포괄적인 동의를 주저하지 않는다. 대체로 당연하다고 여긴다. 이것은 정말 불합리하며 절대적인 오해다.

 

나이 들면 아무래도 외모에 변화가 온다. 얼굴에 주름이 늘고 머리는 백발로 변하고 움직임도 느려 지는 등 오감의 퇴행을 겪게 된다. 세상 만물의 이치가 태어나면 성장하고 늙어가다 사라지는 것이 만고불변의 진리 일진데 어찌 인간에게 변화가 없을 수 있단 말인가. 그런데 인간에게는 정신영역이 있다. 그것도 계발여지에 따라 고차원으로 내달릴 수 있는 영역이다. 이 분야는 나이와 상관 없다. 아니 나이 들수록 더 빛날 수도 있다. 그러므로 노인과 연관 짓는 지레짐작 단정은 적어도 하지 말아야 한다.

 

 100세의 노장 철학자 김형석교수는 60세 부터 철이 든다고 한다. 그가 의미하는 철들었다 함은 ‘내가 나를 믿을 수 있어야 하며’ 그래야 ‘남도 나를 믿어 주게 된다’고 한다. 절절하게 맞는 말씀이다. 필자도 60이 넘으면서 산다는 것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게 되고 70에 이르러서야 철이 들었다. 철들었다는 의미를 필자는 ‘자신이 세상에 태어난 소명의식을 깨닫는 것’ 이라고 말하고 싶다. 이렇게 철이 들면 참 좋은 점이 있다. 세상에 대해 어떠한 종류의 욕심도 저절로 내려놓게 된다. 그리고 그 소명의식을 향해 매진하고 그 완성을 위해 목표에 따른 인내와 의지로 나아갈 수 밖에 없게 된다. 그런데 이 목표의식이 젊을 때 보다 더 절절한 막강한 힘을 가지게 된다. 왜냐하면 눈치 보거나 걸리적거리는 어떠한 장애도 방해요인이 안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새로운 노력과 열정에 누가 감히 늙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나이 든 사람들에게 붙이는 별칭이 있다. 기성세대 혹은 꼰대 등이다. 꼰대나 기성세대라 함은 권위의식으로 남을 가르치려 든다는 의미인데 소명의식을 가진 사람은 본인이 해내야 할 일에 일종의 숙제 같은 책무를 가지기 때문에 남의 일에 참견하고 신경 쓸 겨를이 없다. 통상적인 꼰대라는 용어 적용이 안맞는 거다. 

 

어떤 청춘의 스타가 늙는게 무섭다고 했단다. 그러나 철이 들어 자신의 소명의식을 온전히 이해하고 나면 삶 자체가 충만해 진다. 여기에는 어떠한 조건도 붙지 않는다. 이런 충만한 삶의 의미를 과연 젊어서 느껴 볼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삶의 긴 여정을 거쳐야만 나올 수 있는 결실이기 때문이다. 이런 맛을 못 보고 간다면 그거 야말로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으며 또한 이런 일이 당신 앞에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청춘만 그리워한다면 이 또한 안타까운 일이다. 

      

장수시대에 들어선 지금 신노년학(new gerontology)에서는 ‘성공노화’를 말한다.            

성공노화란 ‘심신을 건강하게 유지하고 삶의 지혜가 발달’하면서 늙어가는 것을 의미한다. 학자들은 여기에 실용적인 지혜척도(practical wisdom scale, PWS)를 제시했는데, 리더십, 주도성, 공감력 생산성과 관련 있다고 한다. 더 나아가 초월적 지혜척도(Transcendental Wisdom Rating, TWR) 로 측정한 지혜는 경험에 대한 개방성, 직관, 생산성과 관련이 있다고 한다. 삶의 지혜를 가졌다는 것은 인지능력의 발달을 의미하며, 고도로 발달한 인지능력은 리더십이나 공감능력 그리고 직관력이 뛰어나니 생산성은 당연히 높아질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발달한 지혜의 인지력은 무엇을 할당 받든지 간에 최고의 결과물을 낼 수 있는 능력이 저절로 생기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들을 우리는 사회 도처에서 만나 볼 수 있다. 노인에게는 이렇게 젊은 청춘이 미처 구비하지 못한 많은 장점들이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될 일이다. 

 

사람이 행복해지기 위해 사는 것 일진대, 지혜가 발달한 노인이 느끼는 충만한 행복감은 젊어서는 절대로 못 느끼는 감정이다. 뭔가 꽉 차오른 느낌으로 다음 단계인 죽음도 그냥 편안하게 수용하게 된다. 그러니 젊음들이여, 늙음을 두려워 하지 말라!  더 멋진 행복이 당신들을 기다리고 있을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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