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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ddhi kim Mar 21. 2021

편향적인 사고가 부르는 위험 (Ⅰ)

당신의 영혼은 병들어가고 있다

서울에서 택시를 탔을 때 일이다. 지인과 함께 이야기하는 도중에 기사가 대화에 끼어든다. 정부 여당의 아무개가 3천만원의 돈을 누군가 로부터 받았다는 것이다. 뉴스에서는 보도 듣도 못한 말인데 아마도 유튜브에서 가짜뉴스를 접한 거 같다. 그런 가짜 뉴스를 찰떡같이 믿고 있는 건 괜찮다. 한 개인의 자유일 뿐이니 어쩌랴. 그런데 문제는 그런 말을 내뱉고 있는 그가 뿜어낸 엄청난 분노와 증오로 똘똘 뭉친 바람직하지 못한 에너지에 있다. 그 택시기사의 부정적인 에너지는 자신에게만 해로운게 아니라 타인의 마음에도 나쁘게 전가된다. 필자는 택시기사에게 그런 정치적인 이야기는 운전하면서 안 했으면 좋겠다는 한마디를 남기고 내렸지만 그 몹쓸 혐오와 부정적인 거친 에너지는 오후 내내 찝찝하게 나를 휘감았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마주치는 일상 곳곳에서 편향적인 생각 때문에 불편한 일을 참 많이 겪는다. 대화하면서 보이는 정치적 편향성, 외모로 보아 결정해 버리는 상대방에 대한 대우, 어느 지역 출신, 학벌, 집안, 직업, 성별, 그리고 나이에 따라 등등…헤아릴 수 없이 많은 차별적인 대우를 주고받으며 살아 가고 있다. 이때 편향성에 몰입된 상태가 중증이라면 싸움이 나거나 상대를 해하기도 한다. 

 

말하자면, 상대를 나와 같은 인격을 지닌 사람이라고 보지 않고 일정한 상표를 붙여서 보기 때문이다. 매사에 상대가 여자인가 남자인가 부자인가 가난한가 등등의 상표를 붙여서 그에 어울린다고 생각되는 태도가 자동적으로 튀어나온다. 여기에 더해서 분노까지 덧붙이면, 여자가 뭘 혹은 왜 당신은 이런 차를 타고 다녀 왜 그쪽을 지지하고 있어 등으로 확대된다. 문제는 그러면서도 그 몰입상태의 당사자는 자신의 행위가 어떻게 자신을 그르치고 있는가를 전혀 알아채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고 거기에 각종 상표를 붙이면서 상대를 대하는 일상 생활에서 당신의 영혼은 그만 병들어가고 있다. 상대를 증오하고 혐오하고 미움으로 똘똘 뭉친 당신의 에너지는 당신 자신의 영혼을 스스로의 감옥에 가두어 놓고 사는 거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영혼은 맑고 순수하고 빛나며 가벼워서 어디는 훨훨 행복과 기쁨을 찾아 나아가서 영혼의 주인인 당신을 그 방향으로 이끌어주는 역할을 해야 하는데 그만 당신은 그 길목을 꽉 막고 놓아주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 당신의 얼굴은 맑지 않고 탁하며 순수하지 않아서 복잡한 몰골로 변하게 된다. 한번 거울로 자신을 보라. 온통 불만과 미움으로 가득 차서 결코 편안하지 않은 얼굴을 보게 될 것이며 상대방도 그 모습을 단번에 알아차리게 된다. 

 

인도철학에서는 세상 만물의 근원이 되는 것을 쁘라끄르티(prakriti)라고 하는데 이것은 세 가지 구나(3 gunas, 즉 만물의 성향)로 구성되어 있다. 세 가지 구나는 사트바(sattva) 라자스(rajas) 타마스(tamas) 인데 바로 인간의 영혼을 담당하고 있는 것이 사트바이다. 사트바는 맑고 순수하고 빛나며 사랑으로 빛나는 에너지다. 이 에너지가 강하고 힘찰수록 그 사람의 영혼의 빛은 밖으로 힘차게 뿜어져 나온다. 그런 사람을 만나면 얼굴도 환하게 빛나기 때문에 괜히 즐거우면서 나도 덩달아 행복해짐을 느끼게 된다. 이런 영혼은 상대방에게 혹은 세상에 이런 저런 편견으로 가득 차 있는 사람 에게서는 절대로 나올 수 없다. 그 편견이 그만 그의 영혼을 자유롭지 못하게 가두고 있기 때문이다. 불행한 일이다. 이렇게 가두게 되면 그에게는 대신 타마스라는 어둡고 탁하며 파괴적인 성향이 강하게 자리잡게 된다. 이런 사람은 매사 게으르고 어둡고 부정적이어서 말마다 다른 사람을 헐뜯거나 상대방에게 가슴 아픈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일삼는다. 또한 타마스 성질은 무겁게 가라앉히는 성향이 있어서 너무 강하게 되면 조울증 같은 질병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그리고 이렇게 타마스 성향이 강해진 사람을 보면 그만 탁하고 부정적이고 음적인 에너지가 강해서 상대방도 덩달아 기분이 나빠지고 불안하고 불편한 마음이 된다. 

 

그런데 사람이란 항상 똑 같은 마음가짐으로 살아가기 보다는 통상적으로 늘 변화한다. 어떤 유익한 일이 생기거나 상대로부터 칭찬이나 아님 신뢰를 가진 혹은 존경하는 누군가로부터 좋은 말씀을 들었다면 스스로 생각을 고치기도 하고 마음가짐이 달라지기도 한다. 이럴 때 역할이 바로 라자스(rajas)다. 라자스는 활동적이고 열정의 에너지다. 이 열정의 에너지가 활발하면 그 사람은 자신을 돌아본다든가 잘못을 후회한다든가 하는 일이 잦아지고 더 나아가 자신의 삶을 새롭게 시도해보려는 노력을 아주 열심히 하게 된다. 이럴 때는 후회와 자책으로만 끝나지 말고 어서 빨리 이때다 하고 사트바 성향이 더 강한 힘을 가질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예컨데 순수한 마음으로 남에게 측은지심을 가지고 대가를 바라지 않고 돕고 봉사하며 항상 부드러운 자세로 상대방을 대하는 일을 지속하도록 해야 한다. 이렇게 되려면 어떠한 편향적인 생각도 과감하게 끊어내야 하는 결단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다. 아마도 정치적인 과편향성도 그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이렇게 과감하게 편향적인 사고로부터 자유로워져서 순수하고 맑은 영혼이 지속되면 남아있는 타마스의 성향이 서서히 약해져서 물러나게 되고 대신 그 자리에 사트바의 힘이 강해져서 온통 그 자체가 빛이 되어 마침내 세상의 어떠한 속박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난 자유의 해탈 경지로 향하게 된다. 이럴 때 사람들은 그를 보면 눈이 부시는 경건함을 느끼게 될 것이다. 

 

이제 우리는 지금 자신이 어디 쯤에 아니 어느 성향이 더 강한가 생각해 볼 일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왜 우리는 이렇게 너도 나도 한가지에 쏠리는 편향적인 성향을 가지게 되는 것일까? 그 이유와 해결방안이 더 궁금 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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