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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ddhi kim Apr 03. 2021

성소수자를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

무엇이 문제인가?

 

성소수자, 게이, 동성애 라는 단어들은 참으로 필자에게는 와 닿지 않는 먼 개념들이었다.

생각 자체를 안 해 봤기 때문에 그런 논란들이 매체를 탈 때 마다 필자의 머리속은 마치 전기에서 소켓을 뺀 것처럼 그냥 멍하니 지나쳐 버렸다. 그런데 어느 날 나와 함께 일하게 된 지인이 대화 중에 ‘My boyfriend’라는 단어를 입에 올렸다. 그는 분명 남자인데 누군가를 친구가 아닌 남자 친구라니?? 놀라서 쳐다보는 내게 그는 자신이 성소수자임을 고백하며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물었다. 그때까지 전혀 안중에도 없었던 그 단어를 듣는 순간 갑자기 누군가 내 머리를 팍 친 것 같은 느낌 이랄까. 어찌 답할 바를 몰라 잠시 멈칫하다가 얼떨결에 한 대답이, 개인 따라 사정이 있으면 그럴 수도 있을거 라는 엉거주춤한 말로 넘겼다. 그 다음 얼마 시간이 지난 아마도 1년쯤 뒤에 다시 그를 만나게 되었다. 그의 얼굴을 본 순간 한 생각이 뇌리를 강하게 친다. “아, 신의 섭리 구나” 분명히 셔츠에 바지를 입고 있는 일상의 남자와 다를바 없는 그 에게서 강한 여성호르몬이 흐르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기독교와는 아무 관련도 없으며 더구나 신자도 아닌 필자가 문득 떠올린 그 한마디에 스스로도 놀랐다. 그만큼 그는 외모와 달리 완벽한 여성으로 보였던 거다. 아주 자연스러운 여성! 우리는 종교와 상관없이 예로부터 ‘신의 섭리’라는 말을, 아주 당연히 일어 났어야 할 일이 일어난 것에 대해 쓰는 표현으로 생각해 왔기 때문이 아닐까. 

 

흔히 신을 믿는 기독교계통에서는 성소수자를 자연에 반한다 거나 신의 섭리에 어긋난다고 반대한다. 그리고 종교와 관련 없는 사회 한편에서는 혐오스럽다는 이유로 반대한다. 물론 자료를 찾아보니 기독교도 찬반의 내용들이 종파마다 다양하게 나오고는 있다.  반면 미국처럼 동성결혼을 법제화한 나라도 있다. 그런데 북미 유럽 특정 종파에서처럼 완벽하게 입교조차 막는 정파를 제외하면 한국에서 유독 격렬하게 반대하는 것이 특이한 현상이기도 하다. 아마도 그들은 자연에 반한다 거나 신의 섭리에 어긋난다는 표면적인 이유를 내세우지만 뉴스매체를 통해서 바라본 그들의 격렬한 훼방 장면들은 혐오에 가깝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필자는 과연 그 혐오가 어디에서 왔는가를 짚어보고자 한다.

우리는 나와 다른 상대를 만나면 무조건 거기에 색깔을 덧칠하는 속성이 있다. 어, 너 나보다 직책이 높은 자리에 있어? 나보다 인물이 좋아 보여? 나보다 행복해? 나보다 돈이 많아? …….등등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상대방의 조건들을 일단 내 틀에 가두고 평가하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상대방이 나 와는 다른 뭔가 훨씬 좋은 조건이라면 거기에 ‘색깔 덧붙이기’로 들어간다. 뭐 비리를 저질렀을꺼야 특별한 인맥을 만들려고 얼마나 비굴하게 굴었을까 등등 각종 음모로 자신의 열등감을 극복하고자 한다. 


몇 일전 뉴스에서 분노를 일으켰던 사건이 하나 있었다. 한 차주가 다른 차주에게 ‘부모가 가난 해서 이런 차를 가졌다’는 폭언을 한 것이다. 그런 몰상식한 태도를 보면서 그게 바로 그가 사람을 대하는 기준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런데 과연 그 사람만이 그런 걸까. 이런 것이 바로 상대에 대해 ‘색깔 덧칠하기’ 다. 

 

그런데 문제가 성소수자로 가면 그들의 그런 ‘색깔 덧칠하기’가 더 강해진다.

필자가 경험한 바로 보면 결코 그들이 자연에 반 한다 거나 신의 섭리에 어긋난다 로는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남성인데 여성호르몬이 자연적으로 흐르는 것을 또한 여성인데 남성 호르몬이 흐르는 것을 어찌 자연에 반 한다 할 것 인가. 신의 섭리가 이미 창조된 피조물을 잘 보존하고 협력하며 통치하는 것이 주된 임무라면 자연적으로 타고난 그들의 생리학적인 구조를 어찌 잘 보존해주고 자연스럽게 살아가도록 도와 협력해주고 그들의 삶 자체를 자긍심으로 충만하도록 해주지 않을 이유가 어디 있단 말인가. 만일 성소수자를 반대하는 이유가 그들이 믿고 있는 종교에 반한다고 생각해서 그 근거를 신의 섭리로 들어 밀기에는 하등의 가치조차 없는 구차한 변명에 불과할 뿐이다. 

 

그렇다면, 혐오감 때문 인가. 

혐오감은 어떠한 것을 병적으로 싫어하는 것이다. 불쾌하고 기피하는 감정을 복합적으로  강하게 가지고 있다는 의미다. 왜 불쾌하고 싫은가. 나와 다르기 때문이다. 방금 위에서 든 ‘색깔 덧칠하기’ 예들과 달리 아예 내가 없는 것을 저들이 가지고 있다는 것에 대한 무조건적인 반감 그리고 미움 증오가 색깔 덧칠하기를 넘어 그냥 폭발하고 있는 것이다. 언론보도에서 본, 퀴어 축제 현장에서 반대하는 사람들의 행위를 보면 적어도 이성적이거나 인간적인 기대 같은 건 바랄 수 조차 없는 모습이었다. 

 

이런 혐오감은 어디에서 오는가.

바로 보잘것없는 자신들의 자긍심 결여에서 온다. 

스스로의 능력에 강한 자존감과 긍지를 가진 자긍심 있는 사람들은 이렇게 나와 다른 남을 향해 함부로 증오와 미움을 드러내지 않는다. 아니 그럴 수가 없다. 왜냐하면 자신의 능력을 믿는 만큼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러한 믿음을 가지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 보다 더 좋은 더 많은 무언가를 가진 사람들을 만나도 거기에 ‘색깔 덧칠하기’ 같은 일은 절대로 할 수 가 없다 아니 생각조차 못한다. 왜냐하면 자긍심으로 충만하게 되면 세상이 다르게 보이기 때문이다. 매사가 공존과 협력의 의미로 파악되고 상대가 모두 소중해지고 사랑하지 않을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변희수 하사의 죽음이나 다른 성소수자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은 정말 가슴을 무너지게 한다. 절대로 그러면 안 되는데 그럴 필요가 없는데 자신의 잘못이 아닌 신의 섭리일 뿐인데 자연스러운 건데 자긍심을 가져도 되는데... 나도 이렇게 가슴이 찢어지는데 가족이나 당사자의 고통은 어찌하랴. 앞으로는 이런 일이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된다. 사회도 제도적인 정비를 서두르고 함께 살아가는 우리들도 생각을 정비할 필요가 있다.    

 

성소수자를 다르게 보는 사람들 이여!

나와 다른 사람들에게 ‘색깔 덧칠하기’를 다반사로 하는 사람들이여 그대들이 반듯이 기억해야 할 것은 바로 이말이다.“나는 자긍심이 절대로 부족한 사람이구나"


이글은 오마이뉴스(2021.04.02)에 나가기 전 원본 글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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