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시리즈, <폭싹 속았수다>

동시대인이 느끼는 감상…

by Siddhi kim


이즈음 넷플릭스 시리즈물, <폭싹 속았수다>가 열풍이다. 그럴만하다.

봄 여름 가을 겨울로 이어진다는데, 2막까지 나왔다. 제작비 600억 원이 들었다니 앞으로도 쭉 기대된다.


-어묵 했던 시절-

1951년생 오애순과 그녀의 바라기 양관식의 이야기 전개는 동시대를 살아온 내게 아련했던 추억의 테이프를 되돌리게 한다. 1953년생인 내게는 그때가 서울이었고 애순은 제주로 배경만 다를 뿐이다. 박정희 전두환 시대를 살아온 그 시대, 최루탄이 가장 싫고 무서웠다. 늘 대학은 휴강의 연속이었고, 여학생이던 우리는 데모대 근처에라도 가면 어김없이 최루탄으로 눈이 매워 눈물을 흘리면서 골목골목으로 뛰어 도망 다니던 시절이 아련히 떠오른다. 아버지가 된 양관식이 딸 금명에게, “데모에 나가지 마라 최루탄 맞으면 눈 아프고 맵다.”라는 말은 당시 모든 부모들이 자식들에게 했던 말이다. 금권선거도 당시는 너무나 흔했던 터라, 동시대 사람들은 아마도 ”맞아, 맞아, 저랬어!”를 열심히 돼 뇌이며 보았을 것이다. 그리고는 그동안 세상이 어떻게 변하면서 발전해 왔는가 하는 사실에 새삼스레 현실감을 갖게 한다. 이런 과거를 반추하게 하는 것만으로도 이 시리즈 물은 의미가 크다.


-부모가 자식에게 하는 멋진 교육방식-

내가 이 시리즈물을 보면서 절대적인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엄마 애순과 딸 금명의 관계다. 당시 엄마와 딸은 저토록 끈적하게 묶여 있었다. 양관식이 아버지가 되어 딸 금명에게 하는 말, “너,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살아” 이 말은 당시 나도 부모에게 듣던 말이었다. 그러니 1983년도에 머나먼 인도라는 나라로 유학을 보내 주었다. 당시, 세상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어디에 붙어있는지도 모르는 때였다. 엄마와 딸의 끈적이는 관계를 보며, 여러 가지 회상으로 돌아선다. 6.25 전쟁이 끝나 강원도 산골에서 서울로 피난 와 장터에서 죽을 끓여 파는 장사를 했던 엄마는 당시 나를 낳고 열흘 만이었다. 산후조리를 했어야 할 시기에 입에 풀칠이 더 급하니 그 추운 한 겨울에 밖으로 나 앉아 찬바람을 맞았으니, 통칭, ‘해산 바람’이라는 병에 걸렸다. 한여름에도 뜨거운 방이 아니면 안 될 정도의 고통이 시작되었다. 엄마의 그 병은 평생 동안 그녀를 괴롭혔다.


애순과 엄마의 끈끈한 관계처럼 나도 똑같이 그랬었다. 어느 날 엄마는 해산바람으로 인한 고통이 극에 달해 죽을 것 같다며 내가 죽거들랑 돈은 어디 어디에 두었으니 그리 알라고 했던 엄마 말에, 그 딸은 엄마가 죽으면 하늘이 무너질 것 같은 극심한 공포로 어찌할 바를 모르다 문득 떠오른 생각이 절을 찾아가 부처님께 빌어보자면서, 밤새도록 절을 했다. 우연인지 아니면 그 정성이 하늘에 닿아서 그런지 엄마는 회복되었다.


애순과 부모의 애절한 관계를 보면서, 이즈음은 왜 모녀 관계가 그토록 접착력이 강하지 못한가를 생각해 본다. 아마도 곁에 있는 부모 이외에 더 많이, 더 빠져들게 하는 현대 문명이 한몫을 하지 않았나 한다. 어릴 때부터 엄마 대신 게임에 빠지는데 익숙하고, 핸드폰에 있는 놀잇감이 늘 자신을 반겨주는데, 잔소리만 일삼는 엄마에게 무어 그리 찐한 관계가 형성될까 싶다. 그러다가, 부모가 못다 이룬 욕망을 자식이 대신 이루어 줄 것을 바라는 어긋난 기대가 자식으로 하여금 더 가까이하고 싶지 않은 대상이 되기도 한다. 나아가, 자존감이 약한 부모는 내 자식을 다른 집안 자식들과 비교하며 더 잔소리가 늘어나니, 그만 자녀는 부모에 대해 부담감까지 늘어나니, 애순이와 딸의 끈끈함 같은 관계가 형성되기는 요원할 거 같다.



애순의 부모는 딸 금명을 위해 소중한 추억이 묻어 있는 집을 팔아 유학자금을 마련해 준다. 금명은 신문에 꽁꽁 싸맨 현금다발을 풀어 보며 엄마의 마음이 절절이 다가와 하염없이 운다. 나도 그랬다. 딸이 하고픈 건 다 해주고 싶어 하는 엄마는 그 옛날에 딸을 인도로 유학 보내며 현금 다발로 300만 원이나 되는 큰돈을 주었다. 당시 나는 몸이 너무 약해 항상 주기적으로 알부민이라는 영양제 주사를 주기적으로 맞았던 터라 인도 가서도 그 주사를 맞으라고 돈다발을 그렇게나 많이 챙겨 주시며, 허리둘레에 전대를 만들어 채워 주었다. 그 돈은 5년간의 유학을 마치고 유럽으로 여행까지 하고도 몇 푼이나 남았었다. 이뿐인가, 딸이 좋아하는 굴비를 먹이고 싶었던 엄마는 굴비를 구워 인도로 보냈다. 보름이나 걸려 온 굴비택배는 그만 곰팡이가 그득 실려 함께 배달되었다. 나는 애순이 처럼 그냥 엉엉 울어 버렸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2막이 끝나고 3막이 다시 이어진다니 기대가 크다.

애순이와 동시대를 살아온 나는, 당시 애순의 부모가 자식에게 했던 교육 방식에서 많은 젊은 엄마들이 힌트를 얻었으면 한다. 자식은 부모의 한을 채워주려 존재하는 게 아니라 당당히 나름의 존재가치를 실현할 수 있도록 무조건 원하는 건 다 해주고픈 마음으로 키워야 한다는 거다. 당시 사회에서는 결코 떳떳지 못하게 돈 많은 부자가 된 엄마가 공부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자식을 대신해서 그 딸의 과외 선생이던 금명이 보고 대학입시를 대신 치러달라는 엄마도 있기는 했다. 그러나 그런 엄마보다는 애순이 같은 엄마가 더 일반적이라 소를 팔아서라도 자식의 교육은 시킨다는 한국의 부모상이라는 말이 나왔지 않았나 싶다.


애순이 돌아가신 엄마를 생각하며 늘 장소 장소마다 엄마를 그리워하는 모습은, 내게 있어 맛난 음식만 보면, '잠깐 오셔서 드시고 가시지'를 늘 염원했던 것을 상기시킨다. 그토록 엄마와 딸은 끈끈하다 못해 한 몸의 분신이었다.


세상은 어느 날 갑자기 변하는 것이 아니라 애순과 같은 수많은 민중의 올바른 양심이 쌓이고 모여 혁신을 이루며 변화해 간다는 사실을 이 시리즈 물을 보면서 새삼 돌아보게 한다. 그리고 동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에게 커다란 추억을 불러일으킬 힘을 내뿜어주는 작가와 감독 그리고 연기자들에게 억수로 감사와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낼모레 면 나올 3막이 몹시도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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