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살 없는 감옥에 살고 있는 사람들

-스스로 갇힌 세계-

by Siddhi kim

주말이면 어김없이 찾는 곳이 있다.

매일 한 시간 정도는 늘 걷고 있지만, 주말이면 숨까지 차오르는 강한 운동이 하고 싶어 서다. 걷기는 생각이 정리되고 새로운 아이디어도 튀어나오게 하며 동시에 몸에 활력을 불어넣어 주니 좋다. 왜 주말이냐 하면 평소에는 그곳에 사람이 별로 없어 서다. 우거진 숲 속 길에 아무도 없으면 걷는데 매진하기보다는 공포가 스멀거리며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날도 주말이라 나섰다. 그런데 웬일인지 사람이 영 안보였다. 날씨도 꾸물거려 한낮인데도 어둠이 내린 것 같은 음침한 산 속이다. 그런데, 앞에 어떤 여인이 양손에 큰 스틱을 짚으며 걸어가고 있다.

반가워서 말을 붙인다.


“산 둘레 돌아 걸으세요? 아니면 저 위쪽 정상까지 올랐다가 내려오세요?”

“위 쪽 까지는 안 가고 중간에서 다시 돌아와요.”

“아, 그래요? 오늘은 어째 사람이 없네요. 그럼, 같은 길로 오지 말고 산둘레를 돌아서 나갑시다. 나는 위쪽으로 올라가는데 오늘은 나도 그렇게 돌아내려 가지요.”


그리고는 함께 걷는다. 60대 초반으로 보이는 그녀는 아주 멋지게 차려입었다. 이제 의기투합해서 함께 걷는 동지가 된 거다. 일이 있어 서울 갔다가 어제 내려왔다는 그녀는 미세먼지로 앞이 안 보이는 서울이 정말 힘들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야기가 이상한 데로 흘러간다. 그게, 중국인들이 미세먼지를 일부러 한국에 내려 보낸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불안한지 내게 묻는다. “혹시 중국에서 오시진 않았죠?”


이게 무슨 소리인가? 이즈음 뉴스에서 나오는 중국 혐오를 조장한다는 극우 이야기를 들었지만 이렇게 실제로 눈앞에서 벌어지는 광경에 정말 심상치 않게 돌아가는 현실을 그대로 보고 있는 듯했다. 그녀는 말을 이어간다. 산에 사람이 없으면 박원순 생각이 난다는 거다. 누군가가 산에서 넥타이로 목을 묶으면 그만이라 그처럼 된다는 것이다.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고인이 된 박원순 시장의 이야기를 가짜 뉴스에서는 이렇게 하는가 보다. 그러더니 내게 말한다.


“산에 올 때 하얀색 옷은 입지 마세요. 난, 처음에 깜짝 놀랐어요.” 하얀색의 긴 파커를 입은 내게 그녀는 무슨 귀신? 같은 느낌을 받았나 보다.


잠깐의 만남인데, 그녀로부터 풍겨 나오는 느낌은 두려움 그 자체인듯했다. 상대가 중국인일까 두렵고, 흰색은 주로 죽은 자 들이 나타날 때 입는 옷인데 그런 옷을 입은 사람 보니 놀라고, 산길에는 누군가 넥타이를 들고 나타나 자신의 목을 묶을까 겁나고…. 그녀는 다시 고인이 된 시장 이야기를 또 꺼낸다. 나는 그만 더 이상 들을 수가 없어서 내리막길을 파워 워킹으로 내려오며, “먼저 가니 주차장에서 봐요”를 외치며 쌩하니 와 버렸다.


잘 차려입은 옷차림에 서울과 지방에 집도 있고 땅도 사놓았다는 그녀의 자랑이 어이없었다.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것을 다 가졌으면 뭐 하나? 정작 자신은 그런 부를 멋지게 누릴 수 있는 정신적인 여유가 없어 보이니 말이다.


나는 그녀를 보며 ‘영락없이 창살 없는 감옥에 살고 있구나’라고 느꼈다. 자신이 그려 놓은 세계에 갇혀 살고 있다. 외부로부터 온 정보들로 짜인 그녀의 세계는 어쩌면 편협되거나 가짜뉴스 같은 정보 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정보를 바탕으로 공포까지 생겼다. 상대가 중국인일까 두렵고, 사람이 없는 산에서는 누군가 넥타이를 들고 접근할까 두렵고, 흰옷을 입은 사람은 귀신일까 두렵고…. 온통 두려움으로 가득 찬 그녀의 동그란 눈을 보니 우매함으로 가득하다는 느낌이 언듯 스쳤다.


왜, 그 사람은 그렇게 자신이 만든 성에 갇혀서 살고 있을까?


그런 그녀를 보며, ‘ 이 사람은 자신만의 삶이 없겠다.’였다. 늘 타인에 그리고 외부에서 들려오는 정보들을 기준 삼아 살아간다면, 이미 그 정보들이 사실인가 아닌가 하는 판단의 의지나 당위성은 없는 거다.


그럴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일일이 외부에서 오는 모든 정보들에 잣대를 들이대며 따질 수 있겠는가? 마치 누군가가 어느 야구팀을 응원하고, 특정 부류의 영화나 음악에 열광하고 어떤 정치 성향을 가졌으며, 어떤 음식을 먹을 때 행복감까지 느끼는 가는 각자의 취향에 달렸기 때문에 그 누구도 비난할 수 없다.


문제는, 그런 성향이나 취향, 그 자체가 그 사람의 정신상태를 온통 지배하고 있다는 데 있다. 그냥 지나치며 듣거나 보고 혹은 기분에 따라 적극 참여도 하는 등, 내 삶의 한편에 자리한, 하나의 관심정도가 아니라 거기에 온통 몰빵 한다면 또 다른 문제가 된다.


몰입정도가 지나치면, 자기 자신만이 가질 수 있는 독자적인 세계를 구축하는 데는 실패하기 마련이다. 왜냐하면 생각의 여유가 있어야 할 자리에 온통 그 한 가지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그 자신 만의 독자적인 세계가, 그 무엇이어도 좋다. 요리도, 다른 사람의 목숨을 살리는 의사도 그리고 어떤 분야의 연구자라도 좋다. 문제는 남들이 다 하는 것을 열심히 학습해서 적당히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 누구도 할 수 없는 자신만의 세계를 가지라는 것이다.



이즈음, <중증외상센터> 넷플렉스 시리즈 물이 핫하다. 너무나 반갑고 공감 100프로의 작품이다. 극 구성이나 연기 또는 시나리오의 창의적인 설정도 좋지만, 나는 그 시리즈물에서 던져지는 메시지에 흠뻑 반하고 있다.


돈이나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오로지 사람을 살리는 의사 본연의 사명감으로 똘똘 뭉쳐 있는 주인공을 보면서 박수를 보낸다. 일등 대학 출신도 아닌 자가 일등만이 누릴 수 있는 자신들의 카르텔에 들어왔다고 매도하고 나선 자들에게 그는 보란 듯이 실력으로 승부수를 던진다. 질투심에 불타 매도하고 쳐내려는 멍청이들? 의 행진을 보면서 극속에서 또 다른 코미디 한편을 보는 것 같다. 그런데 그런 코미디는 드라마나 영화가 아니라도 우리가 사는 현실세계 어느 집단에서나 늘 볼 수 있다.


나는, 이런 류의 영화를 볼 때나 또는 직접 현실에서 그런 모습들을 마주할 때마다 늘 생각하고 갈등한다.

왜 한번 태어난 인생을 그렇게 헛된 짓거리? 에 쏟아붓고 사는가를 이해하려고 무던히 애를 쓰지만, 도저히 포용까지는 안된다. 영화 속 그 군중들의 피상적인 모습은 또 다른 감옥에 살고 있는 건 아닌지 말이다. 물론 산에서 만난 그 여인과는 다른 종류의 창살이다. 아마도 부와 권력 그리고 명예라는 감옥인 거 같다. 그래도 드라마니까 극적인 감동작업들이 여기저기 들어가서 재미를 더 해 주고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이 더 좋아라 열광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내가 가진 능력을 늘 부담 없이 누구에게나 나누어 주려고 한다. 그 재능이란, 며칠 전 아마존에서 책도 냈지만, 인간의 인지능력을 어떻게 확장시킬 수 있는가 하는 방법론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노력과 실습이 필요한데, 그 과정에서 자연스레 건강에 활력이 일어난다. 건강한 몸이 아니면 뇌의 인지능력 확장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지능력 확장이라는 목표점보다는 건강 챙기는 일에 몰두하거나 혹은 그런 능력을 활용해서 다른 것을 추구하는 것을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럴 적마다 나는, 단호히 끊어? 낸다.


이러한 나의 감정과 같은 사람을 방송에서 보았다.

그 주인공은, 유명 호텔 제과점에서 나와 시골 한적한 곳에서 스트레스 없이 마음껏 창의적인 제품을 개발하며 편하게 살고 싶어서 가게 문을 열었단다. 오로지 맛을 위해 정성과 노력으로 제품을 개발했다. 이 한적한 시골에 누가 올까 처음에 걱정도 많이 했으나, 그 새롭고 신기한 맛이 입소문으로 퍼지면서 주말이면 100 상자 정도 그리고 평일이면 50-60 상자 정도 나가고 있단다. 혹시 다른 곳에 지점을 낼 생각이 없는가?라는 인터뷰 질문에 그는 단호하게 말한다.


“그럴 생각 없다. 하지만, 누군가가 혼신을 다해 배우고지 하는 사람이 있다면 내 모든 것을 알려주겠다.” 그런데 사람들이 돈이 잘 벌리는 것 같으니 한번 배워볼까 해서 찾아오는 사람들이 더러 있는데 단호히 거절한다는 것이다.


그래. 딱 그거다.

적어도 무언가를 배워 얻고자 한다면 그 주인공이 좋아 보여 서나 또는 돈이 잘 벌릴 것 같은 사적인 욕망을 앞세우면 절대 안 된다. 그런 사심은 혼신의 힘을 다 끌어낼 내적인 동력을 미리 차단해 버리기 때문이다. 적어도 배움을 받고자 하는 사람의 일거수일투족까지 다 배움의 대상으로 삼을 정도의 열정과 믿음이 있어야만 얻어낼 수 있다. 나는 내게 배우러 오는 사람들로부터 내가 이루어 낸 결실만 딱 따먹겠다? 는 사람들을 자주 본다. 불손한 욕망에 가득 찬 그들을 나 또한 너무 잘 알아낸다. 그 제과점 사장의 말을 나는 100프로 공감한다. 그가 그 일에 가진 자긍심은 결코 그 무엇으로도 계산이 안되기 때문이다. 다만 배우고자 하는 사람의 열정과 믿음 그리고 노력 이면 충분하다. 그 열정에는 배움을 받고자 하는 대상에 대한 존경과 헌신이 함께 가득해야 한다. 마치 <중증 외상센터>의 ‘항문’에서 ‘1호’로 그리고 드디어 본명으로 불린 양재원처럼 말이다. 스승 백광현이 제자 양재원에게 그 능력을 인정하는 감격의 순간처럼. 배움의 결실은, 어떤 영역의 일인자는, 그렇게 탄생하는 것이다.


아무것도 계산하지 말고, 아니 잔머리 굴리지 말고 혼신을 다해 좋아하는 한 가지 일에 몰입한다면 누구나 1호 양재원처럼 되지 않겠는가.


한 번의 인생인데 뭐 그리 따질 것이 많은지....

이것저것 계산하는 것보다 더 소중한 것이 자신이 가진 무한 능력 일진대, 그걸 생각하지 못하니 모든 게 어그러지는 것이 아닐까......


날씨가 따스해지면 나는 그 제과점을 찾아갈 계획이 이미 서 있다. 그냥 그분을 마주하고 싶어서다. 그리고 그의 깊은 손맛에서 나온 그런 제품들을 맛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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