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 연의에 나오는 얘기에 의하면
조조가 동탁을 죽이려다 실패하여
도망치던 도중
자기를 잡지 않고 함께 도망친 현령이 있다.
둘이 조조의 친구 여백사의 집에
머물렀는데
친구 여백사는 없고
여백사는 없고 그의 자녀들과 식객들만 있었다.
밤중에 들려오는 칼 가는 소리와 함께
들려오는 소리.
묶어서 잡아야지
그 소리에 놀란 조조와 그 현령이
뛰쳐나가 여백사 일가족 식객까지
여덟 명을 모두 죽여 버렸다.
죽이고 난 후에야
그들이 한 얘기는 돼지를 잡아 대접하려고
했던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도망치는 도중에 여백사를
만났는데 조조와 현령이 의견이
어긋난다.
현령은 살려주자고 하고 조조는
단 칼에 죽이고는 이런 말을 했다 한다.
내가 타인에게 빚질언정
타인이 내게 빚지게는 못하겠다.
삼국지에는 여백사의 아들과 식객이
조조를 죽이려다가 오히려 죽임 당했다는
기록도 있다.
어떤 것이 사실일지는 2천 년이
지난 오늘 정확히 알 수는 없는 일이다.
다만 얻게 되는 교훈은
영웅호걸일지라도
천하의 황제일지라도
그 목숨이 일반인에 비해서 더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 어떤 인간과도 가까이해서는
특히 칼을 품고 다니는 위험한 인물들과
가까이 해서는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버지가 계시지 않으니
담에 오시지요. 하고 돈을 꺼내서 주면서
보냈더라면
돼지를 잡아 극진히 대접할 생각 까지는
하지 않았더라면
역사에는 만약이 존재하지 않고
우리의 인생 역시 그러한 것 같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거리 감이 필요하다.
안전거리가 필요하다.
그때 그 선택을 하지 않았더라면
그때 그 인간과 거리를 두었더라면
조조 입장에선 역시 억울할 수도 있다.
정사에서는 조조가 죽임을 당할 뻔 한걸
정당방위로 해서 목숨을 부지하고
내가 다른 이에게 빚질지언정
다른 이가 내게 빚지게 하지는 않겠다는
말이
삼국연의에서는 내가 천하사람들을 욕볼지언정 천하사람들이 나를 욕보게 하지 않으리라로 와전되어
개인에 대한 괴실치사가 후 읊조린 독백이
천하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걸로
와전되어 간웅이라고 욕먹는 제일 큰
이유가 이 사건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된다.
조조 하면 영웅보다는
간웅 나쁜 인간이라는 인식이 여기에서부터 비롯되었다고 생각한다.
수백 수천 년이 지나면
진실은 다시는 바로잡아지지 않는다.
사람들은 믿고 싶은대로 믿고
소위 주류의견에 동조하기 마련이다.
거짓말도 백번하면 진실이 된다는 말이 생긴 이유가
아닐까.
수십 년을 길어서 백 년밖에 살지
못하는 우리가
스스로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스스로가 그 누구의 희생양이 되는 일이 없도록
방심하지 않고 사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
역사는 계속 반복되어 발생하고 있다.
역사에서 얻은 교훈은
각자 자기 상황에 맞게
인용하는 게 현명한 선택이라 생각한다.
우리는 그 누구의 희생양이 되어서도 안되고 그 누구도 희생양으로 삼아서는 안된다.
삶에서 하는 수백 수천 가지의 선택이
위법이 아니면
맞다 그르다가 없다.
자신이게 이로운 선택이 최선의 선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