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달 전에 날 힘들게 했던 감정도
두려움도 모두 허상인 것을
확실히 깨달았다.
죽을 고비도 두세 번 넘겼는데
더 두려울 것이 뭐가 있으랴.
내가 갖고 있는 모든 게 내 것이 아닐 수도
있는데 그런 것들을 잃을까 두려워한 것이다. 내란 육신도 영혼도 한순간
사라질 수도 있는 것인데 말이다.
그리고 그 허상들 때문에 힘들어한 것이 아니라
내가 인간을 잘못 본데
대한 한탄이 더 컸을 것이다.
나 자신에 대한 실망이 더 컸던 것이다.
주위에 오래 사귀어온
현명한 친구들이 많은데 그들 조언을
구하지 않고
거의 접촉도 없었던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도 잘 모르는 과대망상과
주술에 빠진 인간을
믿고 그 조언을 듣고 따르고
그에 따른 물질 정신적 손해를 입고
깜도 안 되는 인간한테
휘둘린 것이 한탄스럽다.
마귀는 단순한 일을 복잡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
그래야 소위 자신의 신통을 보여줄 수
있으니까.
그래야 자신한테 세뇌되어
영혼마저 저당 잡아
평생 노예로 부려먹을 수 있으니까.
탐욕을 버리고 신통이란 환상이라는 것을
깨달으면
미신 주술로 사람을 미혹하는
인간마귀들에게 현혹당하지 않을 수
있다. 인연을 맺는데 신중하자.
친구든 지인이든 최소 일 년 이상
거리 두고 교제해 본 후
어느 정도까지 맘을 털어놓을 수
있는지 판단하자.
웬만하면 맘은 털어놓지 말자.
맘 털어놓을 친구는 한두 명이면 충분하다.
다만 하나님을 믿고
지켜야 할 선은 지킨 것이
날 구해주고 살려주시는구나 하는
감회가 든다.
십계를 배우고 외우고 쓰게를 수백 수천번
한 것이 날 살린 것 같다.
신앙에 대해 의심하지 않게 된 계기다.
말씀에서 멀어질 때에 고난과
시련이 찾아왔다.
덕분에 금강경 반야심경도 배우게 되고
외우게 되었으니
그리고 명상의 효과를 확실히 알게 되었으니 시련은 고통과 불행만 가져다주는 것은
아닌 것 같기도 하다.
가끔 진리는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깨우칠 수도 있고
부자지간에도 동일한 문제에 대한
견해가 극렬히
갈라질 수도 있다.
의견은 갈라져도
부자지간은 칼로 물 베듯이
흔적도 없이 또 원상태로
돌아갈 수 있다.
이게 다른 그 어떤 인간관계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느낌이다.
마치 전생의 내가 이번생의 나한테
진리를 전수해 주는 관계랑 닮았다.
살면서 만나는 문제는 맞고 그르다가
없을 수도 있다.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꾸며진 가면 쓴 모습이 아닌
본모습으로 친절하게 지낼 수 있는
인연인지가 더욱 중요하다.
그런 인연들이 있으면 하늘의 축복이고
없어도 그만이다.
스스로 만족하며 충실히
건강하게 유유자적하게
살다 보면
자연스레 선한 영향을
미치고 덕을 쌓게 된다.
건강하고
고통 없이 사는 모습보다
더 큰 선은 없으니까.